데이빗 핀처는 이제 거장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요?
영화 전반에서 감독의 노련함이 느껴집니다. 특별히 힘을 주고 찍은 장면도 없고, 클라이막스를 위해 감정을 응축한 것도 아니며, 액션은 아예 없습니다. 소리 없이 화면만 본다면 일반인들의 일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장면이 대부분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습니다. 마치 대어가 낚인 낚싯대를 쥐고 줄을 감았다 놓았다 하는 낚시꾼의 손놀림처럼, 관객들의 감정을 당겼다 풀었다 합니다. 영화가 묵직하면서도 전혀 거북하지 않은 이 감정 컨트롤은 역시 데이빗 핀처구나 싶었습니다. 반전. 액션. 클라이막스에 기대서 네러티브를 전개하는 애송이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는 클리셰가 전혀 없습니다. 클리셰는 아직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지 못한 사람들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사용하거나, 잘나보이고 싶을때 사용하는 겉멋 같은 것입니다. 데이빗 핀처에게 이런게 필요할리가 없지요.
복싱 선수로 치자면, 190에 105kg정도 나가는, 묵직하면서도 탄력있는 흑형 같습니다. 상대가 들어올때는 아슬아슬아게 빠졌다가, 이내 짧게 들어와서 잽-스트레이트를 툭툭 박아넣고, 화려한 콤비네이션이나 필살기도 없습니다. 간단한 기본기들이 원숙함을 더해 예술의 경지에 이른 그런 모습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언제든 거대한 한방을 박아넣을 수 있는 거대한 체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벼운 스텝에 단순한 기술의 조합으로 상대합니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탈을 뒤집어 쓰고 있지만, 실상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가 아닐까요? 아내를 살해한 했다는 누명을 쓴 무능한 남편과 아 모든 사건을 조작한 요부의 이야기라면 스릴러가 맞습니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의 수위를 낮추고 현실에 대입하면 결혼 그 자체입니다. 자극적인 소재를 덧씌워 결혼 생활의 일상을 지옥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영화의 가장 앞에 나온 시퀀스가 영화의 가장 마지막에 다시 나옵니다. 두개골을 깨고 뇌를 꺼내서 물어보고 싶다고. 첨엔 뭔가 싶었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그 질문은 정말 묵직했습니다. 스릴러로 위장하고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렸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블랙코미디의 본성을 드러내고 강력한 바디블로를 날립니다. 세 문장이 한방 한방 늑골을 후려쳤습니다. 역시 핀처형이다라는 생각과 함께 완진히 뻗어버렸습니다. 2시간 25분간 긴장감으로 코너에 몰리고 예상치 못한 한방을 맞으니 다리에 힘이 쭉빠진겁니다. 느리게 슬로우로 로자먼드 파이크가 스크린에서 관객을 응시하는데, 이는 마치 판처 형님이 "봤냐. 이게 형이야."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핀처형 최고.
Ps : 후기를 빙자한 핀처 찬양이 되었네요ㅎㅎ 이 글은 저의 페북을 인용하였습니다.
첫댓글 블랙코미디라는 말에 꽤 동의합니다. 영화가 결코 떳떳하지 못하는 남자가 스스로 자초한 지옥처럼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거라면 남자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는 막판에 여자의 멱살을 치는 것 밖에 없었을까 싶네요. 후반부 여자의 주도면밀함에 고통받는 것과 거기서 벗어나려는 고민과 행동을 기대했었는데, 셰헤라자드 님과는 조금다르게 한방을 맞아서 힘이 풀렸네요. ㅋㅋ 저는 왠지 있지도 않을 다음 편이 기대되는 엔딩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댓글이 달릴거라 생각을 못해서 확인을 제대로 못했네요.ㅎㅎ 데이비드 핀쳐 영화 중에 Fight Club에서는 정말 화끈했지요. 마지막에 신용카드 회사를 모조리 날려버리는데, 영화에서지만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보통 사회정의랍시고 결국 좋은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걍 시원하게 날려버리는거 보고 '이 형 좀 하는데...'싶었죠. 이번 영화에도 밴 애플렉이 탈출하는 반전이 있을거란 기대를 하면서 봤는데, 결국 철창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으로.ㅠㅠ 이게 결혼인가 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