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 정선희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 / 정선희
눈동자를 자주 쳐다보는 사람은 언젠가 떠나게 되어있지
눈동자는 또 다른 눈동자를 부추기지 검은 눈동자 흰 눈동자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
하늘에 있는 구름이 눈동자 속으로 흘러들면
그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게 되지
구름이 풀린 사람을 본 적 있니? 흰구름이
검은 구름을 침범한 걸 본 적 있니?
그는 눈동자에 발목을 잡힌 사람,
그의 눈동자는 지금 여기를 보지 않고
언제나 저 멀리 허공을 보고 있지
오래 전 김시습이 그랬고 임제와 김삿갓이 그랬던 것처럼 그는 세상에 없는 길을 찾고 있지
구름처럼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고 있지
만약 저들 중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당신도 벌써 구름이 선택한 사람,
만약 스튜어디어스나 등반가를 꿈꾼다면
당신은 벌써 구름에 중독된 사람
사람 마음이 열두 번도 더 바뀌는 것도
구름 때문이야
마음을 붙잡고 싶다면
눈동자를 매달아 두는 게 좋을 거야
쉿! 저기 저 구름
조심해!
[당선소감] 이젠 마음껏 하늘을 쳐다볼 수 있을 것
시는 내게 순간의 진실을 포착한 스냅사진 같은 것. 나는 늘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시는 내 삶을 맑히는 거름망이고 어지러운 내 삶의 발자국이다.
그동안 참 바보같이 살았다. 남들이 다 가는 길 두고 혼자서 멀리 돌아서 가곤 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들고 더러 손가락을 세우기도 했다. 시인이 되었다고 하면 이제 좀 이해해 줄까? 당선 소식을 듣고 무슨 면책특권을 얻은 것 같다.
이제 좀 엉뚱한 행동을 해도 시인이니까 능히 그럴 수도 있겠지…
너그럽게 봐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안도감. 제일 먼저 남편에게 당선 소식을 전한다.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은 나를 가장 많이 참고 기다려준 고마운 사람이다. 다음에는 시 때려치우라고 구박한 시인 유홍준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자존심 상해서라도 좋은 시 써서 복수하고 싶었다. 그리고 함께 공부한 로모 친구들한테도 참 고맙다. 끝으로 이렇게 당선소감을 쓸 기회를 주신 강원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세상에 자꾸 두들겨 맞다 보니 눈은 가자미눈이 되고 목은 자라목이 되는 중이었는데 “옴매, 기 살아!” 이젠 짧은 목 길게 뽑아 하늘도 맘껏 쳐다볼 수 있을 것 같다.
[심사평] 참신한 상상력과 현대적 언어감각 놀라워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은 20명 100여편이었다. 그중 최종 논의의 대상이 된 작품은 이주상의 `풍금소리'와 박명삼의 `두타연', 정선희의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이었다.
`풍금소리'는 전통적인 삶을 소재로 묘사는 뛰어났으나 신선한 현대적 감각이 뒤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두타연'은 주제가 선명하고 묘사는 뛰어났으나 참신함과 현대성이 약했고, 추상적 어휘들이 장애 요소가 됐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눈동자에 살고 있는 구름'은 흔한 소재인 `구름'을 참신한 상상력과 현대적인 언어 감각으로 새로운 시의 가능성이 돋보였다. 시의 생명인 리듬감도 잘 살려낸 것은 물론 개성적 발상이 놀랍고, 아이러니와 위트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다만 시의 마무리가 다소 가벼운 느낌을 준다.
- 심사위원 : 이승훈 한양대명예교수·이영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