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융단폭격
복효근
누가 철조망을 둘러치다가
벚나무를 휘감아 지나갔습니다
철조망 한 토막이 고목 깊숙이 묻혀
제 살인 듯 아물었습니다
수천수만의 꽃잎들이 일제히
지상을 향해 융단폭격을 시작합니다
꽃잎에 맞아 아프기는 처음입니다
4월...... 꽃잎이 눈처럼 내리는 벚나무 아래서 시인은 문득 아픈 나무를 발견한 걸까요? 사람이 아니고서는 저지를 수 없는 둘러쳐진 철조망을 품은 아픈 나무를 보았던 것이겠지요. 아픈 중에도 만발히 꽃을 피우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한다는 듯 바람에 꽃잎을 날려 보내는 모습을 '지상을 향한 융단폭격'이라 표현합니다. 자동세차기에서 거품 문 융단폭격보다 백 배는 멋진 '꽃잎 융단폭격'입니다. 나무의 아픔을 고스란이 느끼는 시인은 기꺼이 폭격의 목표물이 되어 꽃잎에 맞아 함께 아프기를 자청합니다. 인간의 욕심이 쳐 놓은 철조망 때문에 아픈 나무에게 사죄하듯 함께 아파합니다.
시의 느낌과는 좀 다르지만 '꽃잎 융단폭격'이 연상되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와이 슌지라는 일본 감독의 <4월 이야기>라는 영화입니다. 4월이면 매번 찾아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시골 출신으로 도쿄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여주인공의 풋풋하고 잔잔한 사랑 이야기인데요, 처음 도쿄로 이사를 하는 시절이 요즘처럼 한참 벚꽃이 떨어지는 시기여서 함박눈처럼 떨어지는 벚꽃의 '융단폭격'이 정말 아름답게 영상에 담겨져 있답니다. 또 에니메이션 <빨강머리 앤>에서도 벚꽃잎이 날리는 멋진 장면을 볼 수 있죠. 아름드리 큰 벚꽃나무에게 '눈의 여왕'이란 멋진 이름을 붙여 주고, 고아였지만 고아 같지 않게 밝고 명랑한 앤 셜리는 아직까지도 제게 사랑스러운 친구로 남아 있습니다.
'꽃잎 융단폭격'은 아니지만 더 늦기 전에 꽃비라도 맞으러 가야겠어요. 오늘 산책에서 돌아올 때면 벚꽃잎 비에 기분 좋게 흠뻑 젖어 있을 거에요.
- 하루에 시 한 편 (55) / 정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