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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선생님들이 일 냈네요
그 스승들의 모임 이름은 이덕무에서 유래된 ‘간서치(看書痴)’다.
시성 두보가 평생 슬프고 곤궁했듯이 이덕무도 종실(宗室)의 아들이었지만 (서자였기에) 가난 속에서 책만 읽을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다. 그는, 간서치전에서 ‘집안사람들은 그의 웃음을 보며 그가 양서를 구한 줄 알았다고 했다. ‘치인’은 매니아를 뜻하니 간서치는 ‘독서광’이나 ‘책벌레’를 뜻한다. 이덕무 역시 스스로를 간서치라 표현하기도 했으니, 용어의 유래가 본인을 칭함인지 책속의 인물인지 정확한 것은 아니다.
아무튼 신열이 잉잉 달아올라 충혈된 눈으로도 책을 놓지 않았고 칼바람의 겨울에는 손가락에 동상이 걸릴 정도로 책을 읽었다. 동시에, 공복일 때 읽으면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고 추울 때는 혹한을 잊은 채 독서에 빠지게 되며 괴로울 때는 근심조차 사라지니 결국 책은 만병통치약인 것이다. 그러나 어찌 그들만이 책벌레가 되는가. 연암이 그렇고 서포와 매월당과 퇴계가 책벌레였으며 근대사의 채만식과 홍명희뿐만 아니라 마땅한 여흥을 모르는 이 땅의 우수마발이 죄다 그 부류에 포함된다.
청양독서회 선생님들은 그 습한 질곡의 문장으로 모임을 명명했으니.
아마도 충남의 알프스 수목림의 기를 받았나 싶다. 간서치는 맨 처음 일곱 명으로 출발했는데 알음알음으로 소맷자락을 끌고 오면서 열 명이 넘는가 싶더니 어느 새 스무 명이 채워졌다. 내가 보기에는 이 정도가 맥시멈이지만 구성원이 줄어들 가능성은 아예 없다. 청양에서 타시·군으로 발령이 나서 송별회를 벌이며 분명히 석별의 아쉬움을 나누었는데 다음 모임 때 다시 꾸역꾸역 참석한다.
아닌 게 아니라 월 1회 독서회 모임을 위해 비바람 눈보라 헤치고 산을 엄고 다리 건너 모여드니 무언가 조짐이 수상하다. 게다가 이 모임에 어깨 너머 넘실대는 아랫녘 윗녘 스승들이 도처에 산재하니 자칫 여기서 더 비대해지면 지금의 시스템이 아닌 새로운 형태로의 전환이 필요할지 모른다.
마침내 지난한 세월 동안 소화한 책 100권을 재해석하여 출간을 했으니.
그게 「선생님의 책꽂이」(작은숲 刊)이다. 맨 처음엔 그냥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나누고 카페에 올리는 식이었고 그 다음엔 청양신문에 돌려가며 발표를 하다가, 세월이 흘러 마침내 100권을 채우면서 출간을 한 것이다.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충남교육연구소의 가을은 참으로 아름다웠으니.
은행나무 노란 빛깔이 하늘 깊이 번지는 가을의 여정 탓도 있었을 것이다. 왠지 여기서 읽는 책들은 모두 재생용지일 것 같고 유기농 상추로 싸서 밥을 넘겨야 할 것 같다. 별이 쏟아지는 평상 위에 옹기종기 모여 함께 이맛살 맞대고 녹차를 마시며 ‘민주주의와 빵과 통일과 사랑’을 논해야 할 것 같은 지성적 공간이다. 아이들을 더욱 사랑하고 참다운 꿈나무를 키어야겠다는 결의도 새삼 솟는다.
그리고 함께 모인 그들 모두는 운동장의 은행나무가 나목이 되었다가 다시 새순이 커서 노란 잎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피고지기를 수십 번 바뀌어도 그 ‘선생님의 책꽂이’ 출간의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나는 그 출판기념회에서 (격에 어울리지 않게) 격려사를 해서 칭찬을 받기도 했다. 조재훈 교수님과 이정로 회장님의 격려사에 이은 세 번째 순서였다. 심장이 떨려 말을 이을 자신이 없어 아예 유인물 두 장을 적어서 쪼르르 배포한 다음 또박또박 읽어버렸는데, 어럽쇼, 그게 좋은 반응으로 먹힌 것이다. 부끄럽다.
이제 그들의 끈끈함은 찰떡이 아니라 아예 강철 쇳덩이로 굳어버릴 것 같다.
그동안 이 모임의 주류 역할을 했든 한 발만 걸친 구성원이었든 그들은 이제 간서치라는 패거리를 넘어 ‘선생님의 책꽂이’ 집필 동인으로까지 꽁꽁 묶이는 바람에 이탈자가 생기면 당장에 배신자가 될 판이다. 특히 이 자리가 처음 등단 작품인 스승들을 위해서 (평소 이런 말을 전혀 사용하지 않지만) 첫 키스보다 더 설레는 첫 출간의 감성이리라.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옷차림 그리고 창 밖의 풍경과 먹는 음식까지 새롭고 두근거리리라. ‘어린 왕자’의 장미가 다른 장미들과 왜 차이가 나는지도 느껴을 것이다. 더러는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우리 책 나왔다구요. 제목 좀 물어보세요.’
자랑하고 싶었던 스승도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나도 이 한 권의 책 「선생님의 책꽂이」를 만드는 정성의 과정을 어깨 너머에서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레이더망이 점차 진해지면서 처음과 달라지는 숙성의 과정을 (본의 아니게)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가속도의 변화였다.
대략 7-8년 전쯤 되었던가?
그 초창기와 4,5년 전이 달랐고, 1년 전의 기대치가 새롭게 변신했고 반년 전의 기대가 또 달랐다. 다시 2,3개월 전의 기대와 또 달랐고 지금은 보름 전의 기대 아니 일주일, 사흘 전까지 아득한 과거가 되는 ……우일신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지난 시간과 현재의 차이를 느끼는 것, 그것은 변화였고 깨어있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생명의 의미를 변화에 두는 단순우직형이다.) 그리하여 선생님들의 흔적들이 이 땅의 수두룩한 독자들의 책꽂이에 필요한 자양분으로 남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장의 판에 입(入)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나 역시 긴 세월 글판에 끼어들면서 ……글을 통한 인물들을 수도 없이 조우하면서 기쁘고 설레었고 또 아프게 절망했다. 물론 존경스러운 대상도 있었지만 동시에 기대에서 어긋났던 그 신산고초를 수긍해야 했다. 그것은 활자와 실체의 간극이었고, 이를 체험한 후 벗들과의 논쟁이 두려워졌다.
‘글과 삶은 일치해야 한다.’
그런 경구가, 때로는 감동으로 심장을 꿰뚫었고 때로는 진부한 문장으로 변신한 채 요강뚜껑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더러는 직수입한 문장을 암기한 벗들이 논쟁을 하자고 정의의 칼을 뽑으면 아주 난감했다. ‘옳은 문장’의 플랜카드를 들고 달려드는 벗과 ‘고뇌와 질곡의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대상과는 처음부터 논의의 초점이 다른 것이다.
무릇 언어의 속성 자체가 그렇다. 말이란 것이 혓바닥을 통과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거짓을 내포하는데, 하물며 문장으로 만들어질 때는 기획의 뜻이 숨어있기 마련이다. 언행일치 따위의 장황한 설법을 꺼내지 말자고 설법해도, 상대방은 이미 귀를 막아놓는다. 책임감과 별론으로 ……옳은 말을 했다고 주장하는 암기형 인간과 논쟁하는 게 얼마나 소모적인 행태인가. 혹자는 거짓된 글을 옹호하느냐고 노기를 띠우기도 했는데 ……그건 방향이 다른 해석이다. 옳은 말을 하는 것과 올바르게 사는 것은 실체가 다르니까. (그 정도로 하고.)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의 책꽂이’는.
깨어있는 스승들이 만드는 평범한 필자의 모임이다. 이 착한 시골 훈장 필자들이 책에 대한 사연을 공유하고 물들였을 때 일단 과장과 허세가 없어서 진정성이 뚝뚝 달라붙는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감히 ‘문학의 민주화’라고 명명하고 싶다. 명망가의 가르침이 아닌 민초의 눈길이 세상을 가리키는 게 ‘문학의 민주화’이다. 그리하여 이 간서치의 첫 산물을 계기로 또 다른 동네에 사는 착한 스승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책 읽는 패거리 만들기’ 붐을 일으켰으면 하는 것이다. 기왕지사 공무원과 노동자, 직장인과 자영업자들, 버스기사나 샐러리맨 벗들도 ‘문학의 민주화’에 경합자로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독서회를 중심으로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지역신문에 기고도 하면서 생동감을 넣은 다음 숙고 끝에 출산을 결의하는 것이다. 다음은 감히 마이크를 잡았던 내 격려사의 일부분이다.
그래도 걱정입니다.
선생님들의 글은 이제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 길을 열어버렸으니 지금부터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겸양지사조차 무책임이 되므로 예전보다 더 많은 채찍질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탄생의 이유’부터 심도 있게 설명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은 날마다 그런 세상을 꿈꿉니다.
사내아이 계집아이 옆에 웅크려 앉은 늙은 스승의 어깨 그 너머로 붉은 노을이 걸려있는 풍경입니다. 수수꽃다리 영그는 대궁으로 땅거미 몰려오는데 ‘옛날이야기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보따리를 묶을 생각을 잊어버린 스크린입니다.
그래요.
그런 사연들만 몸에 달고 다니고 싶습니다.
금빛 벌판으로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뭉게구름 사이로 보이는 시퍼런 자유의 하늘, 밀짚방석 위에서 호박전 곁들여 마시는 막걸리 한 사발 그리고 바지게 위에 꽂힌 진달래 보자기, 하늘빛 자동차에서 내려 나풀나풀 뛰어오는 생머리 콩쥐 소녀. 뚱땡이 아줌마가 끓여주는 국밥 한 그릇과 후끈한 사랑.
그런데 눈을 뜨면 보이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전지가 떨어지면 영혼을 잃어버린 듯 공황에 빠지고 빨간 신호등 앞에서 클락숀 빵빵 누릅니다.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사태로 수십의 생명들이 하늘로 떠나갔는데도 21세기 공무원들은 여전히 눈앞의 공문서에만 치여 몸도 가슴도 따로따로입니다.
4대강 헤치던 포크레인의 굉음, 소문처럼 휘황한 섹스 스캔들과 끈적대는 보도 매체들, 망자의 유령을 끌어내는 분단조국의 무례한 NLL 공방전 그 끝이 없는 동굴, 그리고 오로지 디자인을 위해 벽돌을 배달하는 건설맨의 독전고까지.
신경림 시인의 ‘못난이끼리 모인 정겨운 장터’보다는 캐리어가 화려하지만.
그 정겨움의 농도는 비슷하다. 그로데스크도 있고 살살이꽃이나 진달래도 있고 카리스마 독재자, 순정파 노스텔지어의 혼재 모임이다. 가수와 시인, 참교사와 꼼꼼쟁이, 천체과학자와 큰바위얼굴, 박사와 농부와 공처가와 경(驚)처가(꼭 나 같은), 왈왈 에너지와 또순이와 참교육파가 불빛 아래에 모여 이맛살 맞대는 것이다. 그렇게 종소리 울릴 때마다 초로와 젊은 피가 혼재된 채 보따리 하나씩 들고 언덕바지로 올라오는 풍경이라니.
어쩌면 그네들은 전생에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 낙타의 목을 축여주던 유목 집단이었을지도 모른다. 동학란 때 접장의 깃발 아래 모인 흰옷 백성이었다가 총알을 피해 골짜기 어디쯤에 모여 용화세상을 도모하던 미륵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장마철 어느 날 나뭇단 위에 실려 하염없이 떠내려가던 풀벌레 무리였을 것이다. 바위에 걸려 반쪽으로 쪼개지면서 육지에 던져진 나뭇가지처럼 기사회생의 사랑을 뜨끈뜨끈하게 나누었을 것 같다.
최은숙, 유지남 선생 같은 교사문학회 동지도 있고 이기자, 송기영 선생 같은 명퇴교사도 있고 이훈환 황영순 선생이나 박태원 우동욱 커풀처럼 부부회원도 있고 김현식, 김흔정 선생처럼 나와 같은 학교에 근무했거나 유지남, 서미원 선생처럼 전교조 옛 동지도 있다. 나머지 이름자 공정희, 김기영, 김분희, 김성은, 김종학, 성기연, 안병연, 오은옥, 이상미, 이현주 등의 스승들은 저마다 나와 회합의 농도가 달랐던 것 같다. 새벽까지 술자리를 진하게 갖기도 했지만 더러는 낯이 설어 쓰뭉하게 바라만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게 종시 아쉽다. 어쨌든 나와 한 동네 아파트에서 살기도 하고 남편이나 아내가 친한 벗인 경우도 있지만 친소관계를 떠나 대개 그들 모두가 한 묶음으로 보이는 것이다.
행복의 척도는 제발 무엇일까?
권력자나 재벌이 되어 아침마다 마이크 잡고 부하 직원들에게 충고하는 행복으로 어깨에 힘주는 사람도 있다. 어느 날 도심지를 걷다가 옥상에서 쏟아지는 돈벼락 사태를 맞거나 우연히 구입한 로또 복권 한 장으로 주지육림에 빠지는 게 행복일 수도 있다. 올드 보이는 동굴 속에서 나가보는 게 행복의 목표가 되기도 하고, 치과 병원에서는 아픈 이빨에 진통제를 넣는 게 가장 행복할 수 있고 헬스장 아줌마들은 치렁치렁 늘어진 뱃살을 빼는 게 삶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나처럼 머리 나쁜 학구파 사춘기를 보낸 사람은 성적표에 1등 숫자판 붙이는 게 전무후무의 행복인 줄 알고 시험이 끝날 때마다 절망했었다.
또 있다. 아랍의 어느 여인은 시커먼 부르카(히잡보다 훨씬 폐쇄적인, 두 눈만 간신히 보이는 두건)를 훌훌 벗어버리고 비키니 바람으로 활보하는 게 행복이 돌지도 모른다.
빗나가는 얘기지만. ‘히잡’은 ‘가린다’는 뜻으로.
‘히잡’ ‘니카브’ ‘부르카‘ ’차도르‘ 네 종류이다. 그 중 부르카와 니카브는 눈을 제외한 전신을 가리는데 특히 아프카니스탄 여성들이 걸치는 부르카는 눈이 나오는 곳까지 그물망을 쳐서 바깥 사내들은 도저히 그 얼굴들을 볼 수가 없다. 나는 가끔 그미들이 억압의 베일을 던지고 여성 해방으로 동참하는 꿈을 꾸곤 했지만 수천 년 사슬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전직 마을 이장이었던 강수돌 교수는 ‘가르침이 아니라 가리킴을 실천하는 열아홉 스승들이 사고를 쳤다’고 감회를 풀어주었고 건축학부 서현 교수는 ‘밤하늘과 파란 계절이 뜨거운 열정을 양념으로 버무렸다’고 힘을 보탰다. 고마운 일이다. 그들은 이렇게 뜻을 함께 했던 이웃들을 하나씩 끌어들이는 중이다.
이번에는 작은숲 출판사 강봉구 사장의 제안으로.
홍대 앞 리브로 서점에서 서울 경기지역 교사들을 대상으로 ‘선생님의 책꽂이 북콘서트’를 벌인다고 모사를 꾸민단다. 청양 동네 슨상님들이 홍대입구까지 진출했으니 일을 크게 벌인 셈인데, 이것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스냅으로 소개 시킬 수 있을까. 그리하여 이 ‘책꽂이 현상’이 다른 동네 스승들에게도 새로운 붐을 일으키는 사유의 공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때로는 평행선의 이유를 따지는 ‘사랑의 날’을 벼리다가.
때로는 밀양 송전탑 시위현장의 할머니와 손자 같은 기동대 청년들이 나누어먹던 도시락 김밥으로 변신하기를 기대한다. 그렇다. 여기 ‘선생님의 책꽂이’가 21세기 까마득한 간극을 메꿔주는 점액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바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반응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