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넘이 마을의 개(황순원) 줄거리
만주 이주의 길목인 목넘이 마을에는 한 시절 봄으로부터 늦가을까지 적잖은 서북간도 이사꾼들이 들러 지나갔다.
어느 해 봄, 목넘이 마을을 서쪽 산밑 간난이집 옆 방앗간에 개 한 마리가 나타난다. 신둥이라는 이 개가 어떻게 목넘이 마을에 흘러들어왔는지 알 수가 없으나, 그 개는 먼지뿐인 풍구 밑을 핥다가 동쪽 산기슭 동장네 전용 방앗간으로 들어간다. 신둥이는 연자맷돌을 짤짤 핥아 보았으나 거기에는 뽀얀 먼지뿐이었다. 이 후 신둥이는 큰 동장네 검둥이나 작은 동장네 바둑이가 먹다 남긴 밥알을 얻어먹으며 지낸다.
그러나 작은 동장에게 발견되고발길로 허리를 몇 번이고 걷어차인 채, 산밑 간난이네 집 옆의 방앗간으로 도망친다. 신둥이는 다시 큰 동장네 구유에서 서성거리다가 큰 동장에게 발견되어 쫓겨 나온다. 마침 저녁을 먹고 나오던 작은 동장이 신둥이를 보고 혹시 미친 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야무진 목청으로 '미친 가이 잡아라!'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신둥이를 정말 미친 개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튿날 아침 방앗간 풍구 밑에서 신둥이를 발견한 간난이 할아버지는, 미친 개면 단매에 때려 죽이려고 지게 막대기를 뒤에 감추어 다가갔다. 그러나 신둥이가 주둥이에 거품을 물었다든지, 군침을 흘리지 않는 것을 보고 감추었던 작대기 든 손을 늘어뜨리고 말았다.
큰동장네 검둥이, 작은동장네 바둑이, 간난이네 누렁이가 모두 신둥이를 따라 집을 나가 사흘 만에 돌아왔다. 이 개들이 한결 파리해진 것을 보고 동장들은 이 개들이 미친개와 어울려 미쳤다며, 마침 가까워진 초복날을 핑계로 잡아 먹어 버린다. 그러나 간난이 할아버지는 누렁이를 그냥 두었다.
이즈음 신둥이는 매일같이 간난이 할아버지보다 먼저 일어나서 방앗간을 나서서 큰동장과 작은동장네 구유를 핥고 밤이 되어 어두워진 뒤에야 방앗간으로 되돌아온다.이러한 어느 날, 동네에는 이전의 그 미친개가 서산 밑 방앗간에 와 잔다는 소문이 났다. 차손이 아버지가 보았다는 것이다. 동장들이 이 말을 듣고 새끼를 뱄다면 승냥이와 붙어 된 것일 테니 보양제로 좋다고 때려 잡아 동네에서 나눠 먹자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방앗간을 구 겹으로 에워싸고 몽둥이로 신둥이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간난이 할아버지가 '짐승이라도 새끼 밴 것을 차마?'하는 생각에 틈을 내어 살려 준다. 이후 간난이 할아버지는 산에서 신둥이의 강아지들을 발견한다.
이것은 내가 중학교 이삼 학년 시절 여름 방학 때 외가가 있는 목넘이 마을에서 들은 이야기다. 강아지가 밥을 먹게쯤 되었을 때 간난이 할아버지는 집안 사람들보고 아무 곳 아무개한테서 얻어오는 것이라 하며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내려왔다. 이런 식으로 다섯 마리를 모두 데리고 내려왔다. 이런 이야기끝에 간난이 할아버지는 지금 자기네 집에 기르는 개가 신둥이의 증손녀라는 말과 원체 종자가 좋아서 지금 목넘이 마을에서 기르는 개란 거의 다 신둥이의 증손이 아니면 고손이라고 했다. 크고 작은 동장네 집에서도 요새 자기네 개가 낳은 신둥이의 고손자를 얻더 갔다는 말도 했다. 내가, 그 신둥이 개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간난이 할아버지는 금세 미소를 거두며, 그 해 첫겨울 어느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 그 후로는 통 보지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연한 것을 물어 보았구나 했다. <개벽(1948)>
핵심정리
갈래 : 단편 소설
배경 : 식민지 시대 평안도 산간 목넘이 마을
구성 : 액자 구성
성격 : 암시적
제재 : 마을에 흘러 들어온 암캐 신둥이
주제 : 생명에 대한 외경심. 한민족의 강인한 생명력
등장 인물
나 : 내부 이야기를 전해주는 외부 액자의 화자(부수적 인물)
신둥이 : 주인을 잃고 마을에 들어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종족을 이어가는 강인한 생명력의 존재. 일제하와 해방 직후의 우리 민족의 모습을 상징.
간난이 할아버지 : 이주민이 버리고 간 신둥이를 보살펴주는 인물. 생명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지닌 인물. 한국의 전통적인 노인.
동장 형제 : 신둥이를 죽이려는 인물. 부유한 형제로 마을 사람들과 자기집의 개를 잡아먹기도 하는인물. 우리 민족을 압박하는 존재의 상징.
이해와 감상 - 이 작품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한 '신둥이' 개와 그 개를 도망치게 한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 강점기 민족의 고난과 광복 후 좌우익의 갈등 속에서도 강인하게 이어지는 끈질긴 민족의 생명력을 보여 죽고 있다. 그 노인이 들려준 이야기를 '나'가 다시 전해 주는 구성 방식을 취한다. 이 작품의 특이한 구성 방식은 내부 이야기가 허구가 아니라 실제임을 강조하는 효과를 지니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의 특징은 설화체 문장에도 있다. 묘사나 대화보다 이야기로만 서술하는 방법은 우리 고전 소설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이는 액자 속의 내용이 마치 청자를 대상으로 직접 이야기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함으로써, 이 내용이 구비 전승되고 있는 일종의 설화임을 암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작가는 작품 끝에 덧붙여 놓은 부분에서, 신둥이 이야기를 자기 외가가 있는 목넘이 마을에서 들었다고 했다. 전승되어 오던 신둥이 이야기를 소설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 점에서도 이 작품은 우리 서사 문학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 속에서 신둥이는 많은 난관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어서, 일제 강점하에서의 우리 민족의 고난과 그 극복 과정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동장 형제들은 신둥이를 미친개로 몰아서 죽이려 하는 인물로서, 우리 민족을 압박하였던 존재를 대신한다. 이 소설에서 신둥이가 미친개가 아니라고 믿고 새끼를 낳을 수 있도록 도와 준 간난이 할아버지는 '아무리 짐승이지만 새끼 밴 것을....'이라는 독백에서도 나타나듯이 생명을 중시하는 인물로서 신둥이가 자신의 생명력을 발휘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작품의 내용상 핵심은 간난이 할아버지가 신둥이에게 보이는 생명에의 외경감이다. 간난이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단순히 목넘이 마을에 살고 있는 개의 계보와 내력을 말하는 듯하지만 이 이야기의 내면에는 생명에 대한 외경감이 충만해 있다. 보잘 것 없는 개의 끈질긴 생명력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성스러움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 이 작품의 의도인 것이다. 곧, 사람들에게 쫓기는 신둥이는 원시적 생명력을 표상하며, 일제의 모진 수탈과 압박을 겪으면서도 끈질지게 삶을 지속하는 우리 민족의 강인함과 그 밑바닥에 흐르는 생명력 회복의 의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