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신 추억의 선물
40년 전의 추억
20대의 꽃다운 나이의 이국생활.
누가 강요치 않았는데도 왜 그땐 집안을 돌보고자 하는 맘이 컸을까? 지금 같으면 그렇지 않았겠지만, 철이 일찍 든 탓인지 오로지 내 자신보다 어려운 부모님 생각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간호대를 졸업하자마자 해외개발공사에서 교육을 받고 서독 행 비행기를 타고 외로운 이국생활이 시작되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산부인과 병동, 독일환자로 입원한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전직교사로 남편과 두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두 딸은 바이올린과 플롯, 엄마는 피아노, 3중주 연주를 하며, 가끔씩 음악회도 동행하며 날 딸처럼 대해주셨다. 휴일이면 차로 데리러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대답하고 하면서 어색한 독일 말도 조금씩 배우게 되고,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가 되어 그 집에 초대되어 온 식구가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예쁘고 화려한 포장지에 싼 선물 꾸러미가 가족 수 대로 쌓여 있었고 서로가 준비한 선물을
풀기 시작했다. 오래전이라 내가 그 가족에게 준 선물은 유명 LP 클래식 곡이었다는 것이 기억나고, 서로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시간 이였다.
그 분이 나에게 준 선물은 예쁜 동화 속에서 공주가 입고 있을 만한 털이 보송보송한 아이보리색 모자달린 반코트 쉐터였다. 가끔씩 손뜨개질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난 그 순간 너무 놀랍고 행복했다.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손수 만든 그런 옷을 받아보지 못했기에, 나하곤 아무 관계도 아닌 전혀 남 인, 이국 부인에게서 이런 선물을 받다니 ,만드는데 꽤나 긴 시간이 걸렸을 것 같은 안감이 달린 정성이 가득한 한 벌의 옷, 기성복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하나 뿐인 옷, 값을 떠나 그 정성과 수고에 난 감동했었다.
" 영란! 넌 머리가 검으니 이런 흰색이 맞고 금발머리의 작은딸은 붉은색이 맞지? 하며 환하게 웃으며,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는 그 눈길에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딸과 난 쌍둥이처럼 똑같은 옷을 입고 서로를 바라보며 함박웃음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그 후론 우리나라보다 추위가 덜한 독일의 날씨에 딱 맞는 그 옷을 자주 입고 다녔다. 아주 낡을 때 까지...
외로움을 덜어주려고 애 쓰는 그 가족 덕분에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정이 많고 남을 위한 배려가 많음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분들과 맺은 인연으로 이국생활에 활력이 있었고 지금도 그 추억을 가슴에 품고 살면서 스쳐 지나간 많은 인연에 감사 할 수 있고 남을 위한 마음가짐을 긍정적으로 가져보는 마음의 힘을 길렀다고 생각해본다.
가슴에 그 추억의 별을 품고 살고 있으면서 난 오늘도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본다. 지금은 낡은 앨범 속의 빛바랜 사진을 보며 그 때 그 분들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고 전화로 목소리라도 들으려면 주고받았던 편지뭉치를 헤집고 전화번호를 찾아 봐야겠다.
자식에게도 무한한 사랑을 주어야함에도 때론 지치고 받기만을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는 요즘의 나!
먼 추억을 떠올리며 다시 새롭게 도약하는 생동감을 내 자신에게서 찾고 싶다.
196신 그리운 나의 어머니
어머님께서 내 곁을 떠나신지 십 삼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머니 아니 엄마하고 불러보고 싶다. 오랫동안 엄마하고 불러보지 못한 울 엄마...
보고 싶다. 문득문득 엄마가 옆에 계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고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지 못한 것 너무 맘 아프다. 그때는 일 년 섬 근무를 할 때여서 주말이면 바쁘게 육지로 섬으로 달려 다니던 때라 엄마가 그렇게 빨리 가시리라 생각 못하고 순환 근무가 끝나면 자주 찾아 뵐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런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얘길 듣고 오빠를 원망했었다. 가시기 전에 얼굴을 뵈었더라면....
왜 그랬을까?..
생전에 예수님을 믿으시고 천국 간다는 소망으로 살아가셨으니 하나님이 불러가셨구나.., 언젠가는 엄마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에 위로를 얻을 수 있지만 엄마의 자식 사랑은 어느 부모인들 다를 수 없지만 유난히 깔끔하시고 부지런한 어머니! 젊은 사람보다 더욱 깨끗하고 반듯하고 단정한 당신의 옷차림새.... 엄마 손을 거쳐 간 옷들은 새 옷처럼 색깔이 선명하게 변했다.
엄마는 손빨래를 좋아 하셨다 .거품을 많이 내어 빨아 놓은 옷은 새 옷처럼 변한다. 매년 가을이면 딸집에 오셔서 이불호청에 풀을 먹여 빳빳하게 다듬질하시고 끼워 놓으시고 흐뭇해하시면서 좋아하시던 모습...
몇 칠 전 엔 엄마를 생각하면서 면 이불 커버에 밀가루 풀을 쑤어 엄마가 하던 대로 두 손으로 박박 주물러서 풀이 천속으로 스며들게 한 후 베란다 줄에 한참 바람을 쐰 후 약간 마른상태로 개켜서 반듯하게 보자기로 싸서 다림질 하듯 발로 밟아가며 엄마를 그 순간 떠올리면서 바람에 적당히 마르면 다림질을 하면 적당히 빳빳한 이불커버가 예쁘게 변한다. 일부러 힘들어도 네 개를 그렇게 하고서 이불장에 얌전히 개켜 넣고 보니 엄마가 더욱 그리워졌다.
매년 김장철엔 배추소금간이며 양념 버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맛깔스럽게 해주시던 어머니... 매년 그렇게 난 어머니의 도움으로 가정, 직장 일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생각 없이 지내왔다. 엄마의 고마움도 모르고 당연히 친정어머니는 그렇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돌아가신 후에는 너무 엄마의 도움이 컸다는 사실에 난 엄마에 대한 죄송한 마음에 많이 울었다. 고맙다는 표시는 안하고 당연시하고 이젠 내가 딸을 키워보고 엄마의 연세만큼 나이가 들어가고 있으니 엄마의 마음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운하고 속상하던 일이 많았겠다싶고 그래도 딸 부모 자식이니 다 잘하고 이해해주셨다.
엄마가 이렇게 고맙고 그리울 수 없다.
엄마! 천국에서 잘 지내고 계시죠?
만나면 옛일 얘기하면서 엄마가 날 용서하세요.
울 엄마는 참 멋쟁이셨지요. 나이 들으셔도 젊은이 못지않게 멋에 대한 감각이 있으셔서 색깔이며 옷차림새가 세련되었지요.
엄마! 사랑해요. 철없는 딸이 엄마 눈에서 눈물 많이 흘리게 하였지요!!
나만 생각하고 홀로되신 엄마를 전혀 생각지 않고 외로움을 달래 드리지도 못했지요. 육십 조금 넘으셔서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아빠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을 텐데도 위로 한마디 못해 드린 게 너무 아픕니다.
엄마!!
지금은 계절이 여름의 끝에 와 있습니다.
무더위는 아직 남아있지만 가을이랍니다.
엄마! 하하 소설 읽기 반에서 문학수업을 듣고 있어요.
또 편지쓰기도 하고 있어요. 근데 전 너무 글쓰기에 관해
이렇게 펜 잡기가 어렵고 두려운 데요 그래도 모두 아름답고 기분 좋은 글을 올리는데 ,생각하다 엄마를 떠올리며 편지쓰기로 했어요. 어린애 같죠. 엄마 앞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죠. 엄마 앞에서 모든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고맙다 말하고 자랑도 하고 솔직하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 식구들 모두가 나보다 다 멋진 사람 들이예요 .멋진 사람들 틈에서 저는 배우고 기운을 느끼고 에너지를 받고 있어요. 나를 더 발전시키고 자극을 받으면서 영감을 얻고 나를 더
반짝이게 변화시켜야겠어요.
엄마! 우리가 자랄 때 는 하교에서 배우는 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 취미를 위해서 악기도 배울 수 없었고 지금처럼 여러 가지 운동도 할수 없었고 그러나 요즘세상은 배울 기회가 많답니다. 저도 나이가 육십이 넘어가니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깊이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 질 때가 많답니다. 단순하고 깊이 없는 그런 나이 먹은 아낙이 아닌 자주 자신을 성찰해보고 변화해가는 자신을 만들어 보고 싶답니다.
엄마! 이젠 노후라는 찬란한 때를 저 자신에서 열어보고 싶어요.
그 찬란함을 위해 부단히 갈고 닦는 자신의 길을 가고 싶어요.
엄마! 가끔 엄마에게 편지 쓸게요. 오늘도 천국에서 즐겁게 계실거라 믿고 이만 줄입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딸 영란 온 힘을 다해 누군가를 위한 수고와 노력의 땀을 흘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