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
방랑시인김삿갓- 53화
[내불왕 내불왕(來不往 來不往)의 감춰진 속뜻]
제천과 원주 사이의 산길을 진종일 걸은 김삿갓, 힘도 들고 허기도 지는데, 석양 노을조차 붉게 물들고 있었다. 정처 없는 나그네의 심사가 가장 고된 시간은 지금처럼 저녁노을이 짙게 깔리는 시간이다.
유람을 떠난 바가 아니라면 수중에 돈이 넉넉히 있을 리 없고, 그러다 보니 먹고 잘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삿갓이 이런 마음 급한 해걸음에 어떤 마을에 당도하니, 마을 한복판 고래등 같은 기와집 마당에는 큰 잔치를 벌이는지,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며 한편에서는 떡을 치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전을 부치는 등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벌어지고 있었다. 김삿갓은 전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더욱 허기가 느껴져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았다.
“이 댁에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죠?”
“아따, 이 양반이 내일이 이 집 주인이신 오진사님 진갑날이라는 것을 모르시오? 게다가 이번 진갑 잔치에는 본관 사또님까지 오시기로 하여, 돼지도 잡고 큰 암소도 잡았다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이 힐책하듯 한 마디 하는데,
“이 사람아! 사또께서 내일 오실지 안 오실지 몰라, 진사 어른이 사랑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골머리를 앓고 계시는데, 당신은 무슨 연유로 오신다는 장담이야?”
“허긴... 허헛!” 두 사람의 주고 받는 말의 의미가 야릇했던 김삿갓이 물었다.
“사또님을 초청했으면 오신다 안 오신다 대답을 하셨을 것이오.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면 모르겠거니와, 도대체 어떤 까닭에 오신다, 안 오신다를 모른다 하시오?”
그러자 나중에 말을 한 사람이 말을 하는데,
“진사 어른께서 며칠 전에 사또님께 사람을 보내, ‘저의 집 진갑 잔치에 꼭 왕림해 주십시오’하고 서한을 보냈더니, 사또께서 즉석에서 답장을 써 주셨는데 그 답장의 내용이 얼마나 어려운지 오시겠다는 것인지, 안 오시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사또께서 어떤 답장을 보내셨기에 설왕설래하고 있단 말이오? 혹시 암호(暗號)로 당신 의사를 보낸 것 아니오?” 김삿갓이 이렇게 묻자,
“천만에요! 명명백백(明明白白) 알아볼 글자로 쓰셨다는데,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어, 진사님과 사랑에 든 선비님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허, 그것참 우습구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또의 답장을 나한테 한번 보여주면 어떻겠소? 내가 한번 풀어 보아 드릴 터이니...”
김삿갓이 이렇게 말을 하자,
“여보시오, 유명한 선비들조차 알아보지 못한다는 편지를 당신 따위가 무슨 재주로 알아보겠소?”
하며 김삿갓을 싹 무시하는 태도로 말을 한다. 그러자 김삿갓...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편지라면 나에게도 한 번쯤 보여주기로 손해가 날 것은 없지 않소? 개똥도 때로는 약이 된다 하였으니, 속는 셈 치고 사랑에 진사님께 내 말을 전해 주시오.” 김삿갓은 저녁을 얻어먹을 속셈으로 일단 큰소리를 치고 나왔다.
그러자 마을 사람은 김삿갓의 허술한 차림새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하는데,
“당신은 낫 놓고 ‘ㄱ’ 자도 알아볼 것 같지 못하구먼... 과연 무슨 배짱으로 흰소릴 하는가?”
김삿갓은 너털 웃음을 터트리며,
“길고 짧은 것은 맞대 보아야 알 수 있다 안 합디까? 아무 소리 말고 사랑에 내 뜻을 전하시오.”
이렇듯 김삿갓이 당당하게 나오자 사내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저희끼리 말하는데,
“여보게 최서방, 이 양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사롭지 않구먼. 자네가 사랑에 올라가 진사 어른께 이 양반 얘기를 전해 올리게.”
“그랬다가 진사 어른께서 야단을 치시면 어쩌지...?”
“야단은 무슨...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으로, 이 양반을 보자 하실 것이 틀림 없네!”
“그럴까?... 그렇다면 내 다녀옴세.”
그리하여 최 서방이란 자가 부랴부랴 사랑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잠시 후 최 서방을 앞세운 오 진사가 나타났는데, 얼마나 똥이 탔던지 손님을 불러올리지도 못한 채, 몸소 달려 나왔던 것이다.
“사또의 답장을 읽어보아 주시겠다는 어른이 어느 분이시오?”
하며 김삿갓을 찾는 것이었다.
김삿갓이 오 진사 앞으로 썩 나서며 정중히 머리 숙여 인사를 하는데,
“지나가던 과객이올시다. 댁에서 어떤 편지로 인해 심려 중에 계시다기로 시생이 그 내용을 풀어볼까 하여 실례를 무릅쓰고 사람을 들여보냈던 것이옵니다.”
오 진사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듯이 김삿갓을 사랑으로 정중히 모셔 올리며 말한다.
“어서 올라 가십시다. 어려운 것을 도와주시겠다니 고마운 일입니다.”
이렇게 오 진사의 안내로 사랑에 들어가니 사랑방의 크기와 규모가 가히 고대광실이었다.
그리고 넓은 사랑방 안에는 사또의 편지를 읽어보아 주려고 모여든 10여 명의 늙은 선비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술을 마시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는 편지의 해석이 뚜렷하지 못했던 탓인지 계면쩍은 표정이 면면히 보이고 있었다.
주인은 김삿갓에게 그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난 후, 손수 술을 한잔 권하며 말을 하였다.
“우선 술을 한잔 드시고, 나를 꼭 좀 도와주소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모두 이름난 학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사또의 편지를 알아보는 분이 한 분도 없으니, 나로서는 애가 탈 노릇입니다.”
김삿갓은 주인의 말을 면전에서 직접 들으니 과연 어지간히 곤란한 지경이었던 모양이다. 김삿갓은 술을 한잔 마시고 나서, 빈 술잔을 늙은 선비들에게 골고루 한 번씩 돌려 주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서 술을 여러 잔 얻어 먹을 심산이었다.
늙은 선비들은 술을 한 잔씩 받으면서도 김삿갓의 행색이 못마땅했던지 또, 자신들이 풀지 못한 사또의 편지를 풀겠다고 나타난 그를 몹시 아니꼽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김삿갓은 늙은 선비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출출하던 차였기에 술과 안주를 닥치는 대로 주워 먹었다.
이윽고 주안상을 물리자 오 진사는 문갑 속에서 사또의 편지를 꺼내 보이며 김삿갓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사또께서 나에게 보내 주신 친필 서찰올시다. 우리 집 진갑 잔치에 꼭 참석해 주십사 하는 초청장을 보냈는데, 사또께서 보내온 답장의 문장 내용이 어찌나 괴상한지, 사또께서 오시겠다는 말씀인지, 혹은 못 오시겠다는 말씀인지,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 한번 펼쳐 보시고 사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김삿갓은 방안에 선비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사또의 편지를 펼쳐 보기 시작했다.
사또의 편지는 한지로 두 겹이나 싸여있어 겹겹이 벗겨야 했고, 김삿갓은 편지의 내용이 한지의 두께로 보아, 매우 복잡하려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정작 알맹이를 꺼내 보니 사또의 편지는 한지 반절 크기의 지면에 커다란 글씨로,
來不往
來不往
단, 여섯 글자만이 쓰여져 있을 뿐이 아닌가?
김삿갓은 그 내용이 너무나 간단한데 놀랐다.
(태산명동 서일필(太山鳴動 鼠一匹)이라더니... 정작 편지의 내용은 장난기가 철철 넘쳐 흐르는구나... 그렇다면?...)
“음... 편지의 내용이 매우 기묘한 문장이군!”
김삿갓은 우선 생각할 여유를 갖기 위해 중얼거려 보였다.
방안에는 잠시 숨 막히는 긴장감과 함께 정적이 맴돌았다.
오 진사는 참고 기다리기가 초조했던지,
“선생! 어떻습니까? 사또께서 와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못 오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김삿갓은 대답 대신 다시 혼자 중얼거렸다.
“음... 사또 어른하고 주인 어른하고는 친분이 매우 두터우신가 보구. 그렇지 않으면 이런 장난스러운 편지는 보내지 않으셨을 터인데...”
김삿갓은 무척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남에 집 경사스러운 자리에 이런 장난기 어린 편지를 보낼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오 진사는 만면에 웃음을 웃으며 자랑스럽게 말을 했다.
“이 편지 속에 우리들 사이의 친분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 있소이까? 선생께서 그렇게 물어보시니 하는 말이오만, 본관 사또하고 나하고는 가깝다 뿐이겠소이까. 지금은 비록 관(官)과 민(民)으로 다르지만, 우리 두 사람은 어려서는 동문수학(同門修學)하면서 별의별 글 장난을 주고받아 온 사이랍니다.”
김삿갓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또의 편지는 진갑 잔치에 틀림없이 참석하겠다는 의사가 확실하다는 판단을 하였다.
왜냐하면 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