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되어준 사람 (1)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사람 사는 일이라고 했던가.
24년 전, 전혀 예기치 않는 일로 남편이 실직을 했다. 한 땀 한 땀 구슬땀 흘려 쌓은 공든 탑이 순식간에 내려앉아 허사가 됐다. 순풍에 돛단 듯 유유한 삶에 제동이 걸렸다.
설상가상, 뇌출혈로 1년여 혼수상태였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심신의 피로가 겹친 난 생물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그레이브스병에 걸렸다. 그레이스병의 뚜렷한 병징이 눈과 온몸에 나타나 드러눕고야 말았다. 병이 깊고 합병증까지 수반되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실직은 단지 일자리만을 잃는 게 아니었다. 남편은 방향 잃은 돛이 되어 우두커니가 되었다.
숨이 멎은 듯 고요하기만한 집안의 정적은 중 1년 딸, 초 6년 아들에게서도 활기를 거둬갔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중압감은 해결의 실마리 없는 그를 더 표류하게 했다.
우린 모두가 앓고 있었다.
누구보다 사춘기에 있는 딸이 걸렸다.
표면적으로 딸은 평소와 다름없이 제 시간에 등하교를 하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나갔다.
몇 달 사이에 철이 부쩍 들게 느껴졌다.
그날도 딸은 여느 날처럼 학교에 갔다.
배웅을 한 후 딸 방문을 열었다. 늘 하던 대로 환기하고 정리 정돈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항상 심란을 일으켰던 방이 아주 깨끗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었다. 평소 잔소리깨나 들었던 방 정리 정돈이었다. 울컥했다. 엄마의 빈자리를 용케도 잘 채워가고 있는 게 대견하기보다 아팠다. 책상 위도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언뜻 책상 위에
“아빠! 힘내세요”
라고 쓰인 분홍색 봉투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빠를 염려하는 중1 딸의 깨알 같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편지였다. 누구의 위로도 격려에도 마음 젖지 못한 남편이었다. 고작 14살 어린 딸은 생의 고갯길에서 웅크리고 있는 아빠의 외로움을 알았던 것이었다.
딸은 제 몫으로도 충분치 않은 사랑을 풀어 아빠의 허허로운 마음을 쓰다듬어 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아빠의 특별한 사랑에 대한 갚음이었을까~
그 후로 딸은 100통의 편지를 쉼 없이 썼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아직도 차마 물어보지 못한 채 뭉클한 가슴만 안고 있다. 때론 아빠 머리맡에 때론 우체통에 때론 서재에 일곱 색깔 무지개로 아빠를 응원했다.
아빠에게 햇빛이 되어 아빠를 햇빛 같은 사람이 되게 한 딸이다. 이 100통의 편지는 아직도 가슴에 따뜻한 햇빛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남편은 고백한 바 있다.
딸이 아빠에게 그랬듯이 남편 또한 외롭고 아프고 춥고 힘든 사람들에게 따스한 햇빛으로 살기를 다짐하며 주위를 살피며 살아가고 있다.
해는 만고에 지는 법이 없으리니.
누구에게나 누구든지 해는 뜨고 해가 될 수 있는 일.
서로에게 해가 되는 사람으로 살기를 소원한다.
첫댓글 참으로 훌륭한 따님을 두셨네요.
눈물 떨구며 읽었습니다.
실직은 단순히 매달 들어오는 수입만 잃은것이 아닌줄 압니다.
네가족 모두가 실의에 잠겨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눈시울이 더워지고 절로 한숨을 내쉽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이겨내고 오늘날 굳건히 일어선 교수님이 자랑스럽습니다.
하하의 나침반뿐만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영향력을 주시는 교수님을 비롯 가족 모두에게도 고개숙여 예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