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철학사에서 ‘근대철학’은 이전까지 ‘신(神)’을 모든 사유의 중심에 두었던 인식에서 벗어나, 인간을 중심으로 신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주지하듯이 유럽 중세에는 기독교 중심의 신학(神學)이 종교적 권위만이 아니라 세속의 권력까지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중세의 철학은 ‘신의 작용과 신의 말씀을 이성을 통해 설득하기 위해 존재’했으며, 이로 인해 신을 중심으로 사고하던 중세의 철학을 일컬어 ‘신학의 시녀’라고 평가하였다. 이를 ‘중세 철학의 한계’로 평가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중세에는 신학이 곧 철학의 한계였고, 신학의 허용 범위 안에서만 철학이 존재할 수 있었으며, 신 안에서만 철학적 사고가 허용’되었다고 이해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던진 데카르트를 ‘근대철학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무엇보다 데카르트의 사상은 신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 스스로의 질문 즉 ‘회의’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자연주의를 내세운 스피노자와 경험주의를 주창한 로크와 흄 등의 사상을 거쳐, 칸트와 피히테로 이어지는 독일 고전철학의 성립에 이르게 된다. 나아가 ‘진리의 기준을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으로서 변증법을 제시했던 헤겔을 ‘근대철학의 정점’이자 ‘근대철학의 종말’이라고 평가하는 관점 또한 이해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로부터 유물변증법과 정신분석학, 언어학을 통한 철학적 사유, 그리고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근대철학의 해체’ 이후의 조류를 이끈 사상으로 ‘맑스의 역사유물론’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니체의 계보학’이 그 뒤를 잇고 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언어학을 철학과 접맥시킨 ‘훔볼트’와 ‘소쉬르’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등의 사상적 특징을 하나씩 탐색하면서 논의를 이끌고 있다. 여기에 특정 항을 다른 항과의 대립적 관계로 파악하여 ‘일반적이고 공통된 구조’를 찾고자 하는 구조주의가 등장하였으며, 이에 해당하는 철학자로서 ‘레비-스트로스’와 ‘라캉’, ‘알튀세르’와 ‘푸코’ 등의 이론적 특징이 소개되고 있다. 2번의 증보 과정을 거쳐, 저자는 당시 새로운 조류로 등장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을 주도했던 ‘들뢰즈와 가타리’의 사상을 맨 마지막 항목으로 새롭게 첨가했음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 ‘근대적 지식의 배치와 노마디즘’이라는 제목의 ‘보론’을 덧붙이면서, ‘인문학의 위기’로 칭해지는 주장은 인문학 자체가 아니라 인문학적 담론을 ‘생산할 능력의 부재’ 곧 연구자들의 문제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데카르트에서 들뢰즈까지-근대철학의 경계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저자는 ‘철학에선 다른 사상가들과 자신이 어떤 점에서 다르며 어떤 점에서 새롭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독자적인 사상가로 남아 있기 힘들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것을 ‘넘어서기’로 규정하면서, 그러한 면모는 ‘시대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것이 철학자들의 입을 통해 말해지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하여 기존의 지배적인 사상으로부터 넘어서고, 새로운 사상으로서 하나의 흐름을 넘어서며, 당시의 지배적인 특정한 사고방식을 넘어설 때 비로소 남과는 다른 사상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결코 만만치 않은 서양 근대철학사의 흐름을 요약하여 제시하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그것을 저자 나름의 일관된 관점에서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독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