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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에서 정착해 생활하다가, 한옥을 구입하여 살았던 외국인의 이야기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이미 한국을 떠나 다시 고국인 미국으로 돌아가 살고 있지만, 한국에 있을 때 살았던 한옥에 대한 추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되새길수록 좋은 서울의 한옥 이야기'라는 부제를 통해서, 저자가 생각하는 한옥의 긍정적인 측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은 지금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도 그 변화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가야만 한다. 저자 역시 1980년대 처음 서울을 경험한 이래, 그 변화의 속도를 절실하게 체험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나 역시 오랫동안 살았던 서울을 떠난 지가 20년이 넘었는데, 최근에도 가끔 들르는 서울의 풍경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반복적인 논문 생산을 권하는 시스템에 회의감에 지쳐갈 무렵 서울의 서촌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한옥들이 보존되고 있는 서촌을 방문했다가, 급기야 한옥을 구입하여 수리하면서 '어락당'이라는 택호를 붙여서 살아보기도 했다. 언젠가 저자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한옥에 대한 애정을 담아 소개하는 내용을 봤던 기억도 떠올랐다.
'서촌'은 경복궁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경복궁 북쪽에 위치한 '북촌'과 더불어 전통 가옥이 많이 남아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근처에 청와대가 자리를 잡고 있어 건축을 하는데 고도 제한이 있는 등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개발이 더딘 탓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서촌에 한옥을 구입하여 정착하는 과정이 소개되어 있지만, 단지 한옥 생활만을 그리고 잇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저자의 고향인 미국 미시간주의 앤아버에서의 생활과 오랜 동안 생활했던 일본의 경험들도 자연스럽게 풀어내고 있다.
저자 자신도 말하고 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경험했던 여러 모습의 한국 생활에 대한 기록이라고 하겠다. 일견 자신의 한국에 정착하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한국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 느낌들이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특히 아파트 위주의 한국 주거문화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상을 곁들이기도 하지만, 전통과 문화 그리고 삶의 방식 등에 관해 저자의 생각들이 녹아들어 있다고 여겨진다. 최근 저자의 책들을 읽으면서 비슷한 내용들이 여기에도 소개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또한 자신의 삶과 생각을 풀어내는 내용이기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언어학자로서의 한국만의 존대법과 지역 방언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도 흥미로운 부분이 적지 않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 교수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을 때, 저자는 자신의 손길이 묻어있는 한옥을 팔았던 때를 가장 아쉬워하기도 한다.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기에, 한국에 살면서도 '한옥 지킴이'로 활동하기도 했다. 물론 보존할만한 가치와 그곳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일 수가 있다. 하지만 한옥을 포함한 현재 우리의 주거문화에 대해 각자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여겨진다. '집'이 많은 이들에게 경제적 가치를 지닌 하나의 재산목록으로 치부되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을 보존하는 것보다 개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서촌과 북촌 그리고 최근에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있는 익선동 등이 그나마 서울에서 한옥들이 많이 남아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아마도 언젠가는 이 지역들에서 개발과 보존이라는 입장이 충돌할 수도 있을 것이라 예견된다. 이러한 문제들이 날카로운 갈등으로 전개되기보다 대화를 통해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아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서울의 작은 섬, 한옥마을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갑니다." 표지에 잇는 이 글귀가 나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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