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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여 이른바 운동권으로 활동하던 전력을 알고 있었다. 이후 1980년대 초반 평론가로서 문단에 등장했고, 나 역시 문학을 공부하던 때에 날카로운 시각을 지닌 그의 평론을 종종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시인으로 활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그의 시를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도 문예지에 실렸던 그의 작품을 읽었던 적도 있었을 것이나, 당시에는 그의 작품 세계가 특별히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제 시간이 흐르면서 시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도 조금은 달라진 것일까? 여전히 거친 표현들에서 어쩔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으나, 전반적인 시인의 시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문득 발문을 쓴 최원식의 글을 통해서, 오랫동안 함께 세월을 견뎌왔던 지인으로서의 따뜻한 애정의 시각을 읽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독자로서 내가 바라보는 시인의 시 세계는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시인이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이기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겠으나,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통해서 시인과 함께 나 역시 과거의 추억을 떠올렸다.
내 살던 영당은 어디에 있나
내 동무 원대가 토끼풀 뜯으며 강의록 외우던
이발소집 새끼 돼지들 예쁘기도 하던
하늘만 빠끔한 면 소재지
사자울 강 건너 대전 오거리
피발령 고개 넘어 청주 칠십리
점점 고갯마루 굽이굽이 여울들(‘미루나무 길’ 3연)
시인에게 고향에서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형상들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이 작품만이 아닌, 여러 편의 시에서 시인이 떠올린 고향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한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 역시 이제는 사라져버린 고향의 풍경을 떠올려보기도 했던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기에, 그만큼 그리움이 더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먼저 세상을 떠난 동료 시인들의 사람을 위로하는 ‘진혼곡’을 남기기도 했다. 해남 출신의 시인으로 고단한 삶을 살다 세상을 떠난 김태정 시인을 추억하는 시(‘김태정’)를 남겼으며, 부안 출신의 박영근 시인을 위한 진혼곡(‘박영근’)을 짓어 위로하기도 하였다. 또한 지난 2009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신현정 시인의 시집 제목(‘바보사막’)을 표제로 삼아, 또 다른 진혼시를 남기고 있다. 비록 나에게는 낯선 이름들이지만, 시인의 작품을 통해서 그들을 생각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시인의 시선은 여전히 부조리한 현실에 닿아 있다는 것을 ‘내곡동 블루스’라는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정원은 내곡동에 있고 / 뭐랄 수도 없는 국정원은 내곡동에나 있고 / 모두 무서워만 하는 국정원은 알 사람이나 아는 내곡동에 박혀 있’다는 것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서슬퍼렇던 독재 정권 시절에 정보기관에 끌려갔던 시인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바뀌어 ‘국정원의 정문에는’ 과거와 달리, ‘어깨에 뽕을 넣은 깍둑머리 젊은 병사가 / 충성을 외칠 뿐이’다. 아마도 지난 정권 시절에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인해서 국정원이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던 시대의 분위기를 묘사한 것이리라.
아마도 이 시집의 제목은 말미에 수록된 ‘시인의 말’에서 따온 듯하다. ‘시인의 말’은 “어린 당나귀가 있고 나는 그 곁에 있습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된다. 시인이 말하는 ‘당나귀’는 그가 지은 ‘시’가 아닐까? 그래서 ‘언젠가 그를 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예감에 몹시도 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곁에 있다는 것에 오늘 나는 이토록 사무쳐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자신의 작품들이 ‘어린’ 상태임을 자각하고 언젠가 헤어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시인이 먼저 ‘어린 당나귀’를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 (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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