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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사를 전공하는 저자가 현대사에 대해 주제별로 펼쳐내는 역사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저자의 이름을 따서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역사 서술이나 사료는 대개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해 관계에서 어느 한쪽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서술이나 기록’아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결국 기록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한데, 이를 일컬어 역사 연구자의 관점 즉 ‘사관(史觀)’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예로, 그 유명한 조선시대 정승인 황희의 일화를 제시하고 있다. 서로 다투는 이들에게 각자의 입장이 옳다고 주장하며, 이에 항의하는 이의 입장조차 옳다고 하던 황희의 고사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서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교훈’이 내포되어 있다고 강조한다.
실상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동양에서는 그것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느냐 혹은 인물 혹은 주제별로 서술하느냐의 차이로 크게 구분하고 있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시간 순서로 기록하는 것을 ‘편년체(編年體)’라고 하며, 특정 인물의 일생을 중심으로 기록하는 것을 ‘기전체(紀傳體)’라고 일컫는다.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에서도 확인되듯이 대개의 역사 기록은 시간 순서대로 기록하면서, 필요에 따라 사관(史官)이라 칭하는 기록자의 입장을 첨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에서 시작된 ‘기전체’는 한 인물을 중심에 두고 그와 얽힌 다양한 사건들에 관해 서술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책은 전래의 ‘기전체’와는 다르지만,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한국사의 주요 사건들과 그에 관한 저자의 해석을 제시하는 빙식을 취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록들이 결국 ‘자기의 입장을 정당화할 뿐’이라는 주장은 역사 기록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고 하겠다. 그렇기에 저자 역시 ‘역사를 보는 자신의 눈’을 강조하면서, 이 책을 통해 역사 전공자로서 한국사의 몇몇 주제들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한국사의 주요 쟁점들을 2권에 걸쳐 제시하고 있는데, 1권에서는 모두 5개의 항목으로 근대사와 현대사의 ‘사건’들이 다뤄지고 있다. 각각의 항목들은 또한 몇 개의 하위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예컨대 ‘승리의 짜릿한 기억은 없었다’라는 제목의 1장에서는 일제의 패망으로 갑자기 맞은 해방과 그 이후의 역사적 흐름을 ‘미완의 민주혁명’이라는 주제로부터 시작된다. 이와 함께 대한제국 시기의 ‘입헌군주제 논의와 군주제의 도입’과 함께 ‘다시 생각하는 임시정부 정통성 계승론’, ‘외세의 의한 탄생과 파란만장한 역사’ 등 당당한 주체로 서지 못했던 우리의 과거 역사에 대해 진지한 탐색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무덤 위에 서 있다’는 제목의 2부에서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이 되지 못한 상황과 그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의 탄생, 그리고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는 갈등을 ‘또 다른 생존방식, 편가르기’(3부)에서 논의하고 있으며, ‘반미감정 좀 가지면 어때?’(4부)라는 주제로 해방 이후 ‘외세’의 하나로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과 미국에 대한 저자의 탐색과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마지막 5부에서는 ‘신성한 국방의무’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징병제’가 독재정권의 필요에 의해 실시되어 ‘병영국가 대한민국’에 이르게 되었음을 강조하면서, ‘이제 모병제를 준비하자’는 저자의 주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1권의 부제를 ‘단군에서 김두한까지’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상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역사는 현재 우리의 상황으로 이어진 근대사와 현대사에 집중되어 있다. 다만 ‘단일민족의 허상’을 다룬 글에서 ‘우리 모두는 단군의 자손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단군’이 소환되고 있으며, ‘장군의 아들’로 미화된 김두환의 실체에 대해 논하면서 ‘황당한, 그러나 미워하기 힘든...’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밖에도 때로는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이 소환되기도 하고,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상황들이 저자의 관점에서 적절히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되고 20여년이 지났지만, 저자가 제기되고 있는 역사적 현실 혹은 주제들이 여전히 진지한 탐색의 대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역사 연구의 시각이자 역사를 다루는 중요한 의미라고 이해할 수 있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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