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피는 사월, 제니스 가족편지 ✾
3월 가족편지 봉투가 마르기도 전에(?) 벌써 새로 받은 한 달을 살았네요.
길고도 짧고, 짧고도 긴 것이 하루요, 천일이요, 일생인 것 같습니다.
4월 한 달, 우리 가족들 모두 안평태(安平泰)하셨기를!
어떤 말을 전해드릴까, 아이들 이야기가 궁금 하실텐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얽힙니다.
그러다 문득, 4월 노자이야기 때 배운 동학의 ‘심고(心告)’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지금 잠을 잡니다’, ‘제가 지금 밥을 먹습니다’ 이렇게 일상생활을 늘 하늘에 아뢴다는 것인데요,
저는 이것을 ‘모든 일을 하기 전에 하늘에 여쭈어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쭈었지요! 답이 어떻게 들렸냐구요?
“아이들 이야기 시시콜콜 쓰려하지 말고 (어! 어떻게 아셨지?) 제니스 네 이야기를 쓰거라.”
“네에...”
✐ 아이들과의 하루하루
아침산책. 아침열기. 오전 배움. 밥모심. 오후 배움. 청소. 하루닫기.
달날 오래걷기. 빛칠하기/ 불날과 물날 생활지혜배움/ 나무날 찾는배/ 쇠날 작은가족모임. 공동체놀이.
단어로 열거하면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지만 매일매일 새롭게 다가오는 아이들과의 하루하루는 ‘맑은 유쾌함’이랄까요? 한마디로 ‘재밌는 인생’입니다. 아팠던 몸도 떼거지(!)로 발산하는 아이들 에너지 덕분에 절로 치유가 되기도!
✐ 걷기와 신발
4월엔 오래걷기를 달날로 바꿔 와온해변, 앵무산, 소코봉 등산을 했는데요, 월요병엔 걷기만큼 명약이 없다 싶습니다. 아이들도 저도. 부끄럽지만 10분 거리도 습관적으로 차를 타던 제가 고무신을 신고도 몇 시간을 즐겁게 걸을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합니다. ‘너, 이멜다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하이힐로 꽉 차 있던 제 신발장이 이제는 고무신. 운동화. 장화로 헐렁~~합니다. 아이들이 제 삶의 바탕을 변화시키고 있나봅니다. (중등 싼티아고 순례 할 때 마음으로 걸으며 우리는 한국땅에서 ‘싼티걷기’ 해 볼까요? 싼 고무신 신고서~ ㅎㅎ)
✐ 밥을 모신다는 것
제가 걷기만큼 자신 없었던 게 바로 ‘밥’이었는데요, 지난 주 살림위 수련에서 한옥현 선생님(‘서로살림’이란 건강한 농부모임을 이끄시는 분인데 작년 구랑실 가족이 달마순례를 다녀오기도 했던)을 다시 뵙고, 좋은 질문거리 하나 받아왔습니다. 먹거리는 무조건 OO드림이고, 제 손으로 무엇 하나 지어먹을 줄 모르던 무지렁이에게 ‘농부님들과 나를 서로 살리는 먹거리 살림’에 대해 사유하고 실천할 기회를 주신 것 같아요. 아직 잘 모르니,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께 잘 배워야겠습니다. 가르쳐 주세요.
밥모심 할 때는 제가 정말 엄마가 된 듯해요. 구빈이가 묻대요. “제니스는 다른 때는 많이 먹으면서 오늘은 반찬이 맛있다며 왜 더 안 먹어?” “야, 너희들이 잘 안 먹는 건 아까우니까 먹는 거고, 맛있는 건 너희들이 더 먹을 것 같으니 참는 거지.” 끄덕끄덕.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야이야이야~♫) 그런데 진짜 엄마들은 이런 말도 안 하시지요?
밥 안 먹는 아이들 땜에 속상하고, 새참으로 나온 찐 감자 보고 김치 찾는 아이들을 보면 엔돌핀이 팍팍 솟고! 아침산책 때 동네 어르신이 심으라고 주신 봄콩이 남아 밥에 얹었는데 불리질 않아 거의 생콩이었어요. 그런데 “으~~ 딱딱해.” 하면서도 가려내지 않고 잘 먹어주는 이쁜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배웁니다. (저는 편식이 심한 아이였거든요)
✐ 밭일에서 배우다
3월 중순경 씨감자를 심었는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싹이 어느 날, 흙을 밀어 올리며 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배추처럼(?) 잎이 무성해 졌습니다. 함께 자라는 잔풀들을 호미로 긁어내며 “와, 나 같은 사람이 심어도 이렇게 나는구나!” 하도 감사해 혼잣말이 절로 나옵니다. 하지감자 대풍예감~! 나눠드시게요. (한편, 아욱, 적상추, 치커리, 쑥갓, 열무, 고구마 등은 제 눈엔 아직 안 보입니다. 풀과 구별이 안 되어 아직 김매기도 못하고 있어요)
밭일을 즐겁게 할 친구들만 호미 들고 따라오게 합니다. 어제는 비 오기 전 서둘러 모종을 심었습니다. 파프리카, 오이고추, 매운고추, 가지, 토마토를 심고서 아이들은 먼저 가고 저만 남았는데 너구리가 부릅니다. “(제 이상형이 농사짓는 간디라고 했더니) 간디댁~ 이렇게 심으면 안 돼! (너무 간격이 좁단 말을 심한 사투리로 했는데 기억이 안 남) 나중에 이놈들이 엄~청 벌어.” 말로 하다 갑갑했는지 급기야 호미로 순식간에 이랑 하나 뚝딱 만들고, 가운데 고랑을 파서 시현아빠가 보내주신 EM효소랑 어진아빠가 보내주신 돼지똥거름 쫙쫙 뿌려주고 흙으로 쓰윽 덮어주며 “저거 다 뽑아서 여기 심어요.” “넵!” 결국 혼자 죄다 옮겨 심었습니다. 그러다 밥모심이 늦어져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니 (한심스럽다는 듯 쳐다보다가) 다음에 우리가 너구리밭 도와주자고 하대요. (감사의 뜻으로 남은 달걀 후라이 하나 상납했습니다)
적어도 배움터에서 사용하는 부식만큼은 우리 스스로 길러보자고 합니다. 지금은 경험과 실력이 없으니 진정성과 정성 하나로 밭일에 임하려고 합니다. 하늘이 도와주시겠지요. 아이들과 밭에서 뽑아 온 농작물로 반찬이나 새참을 손수 만들어 먹는 꿈, 허황된 꿈은 아니겠지요?
✐ 작은가족모임
매주 쇠날 아침은 가족 자치회의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엔 일부러 제가 빠지고 아이들끼리 이끌어 보라고 했어요.
“자, 마음 모읍시다.” (제 흉내 내는 걸 보고 혼자 웃음) ‘말하는 나무’를 돌리며 노래를 부릅니다.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노래가 끝나는 순간 나무를 받은 친구가 그 날의 ‘이끔이’와 ‘적는이’가 됩니다. 안건은 다음 주 청소구역 정하기인데 사다리를 탑니다. 사다리 하나 그리는데도 말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래도 결과엔 두 말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그게 사다리나 제비뽑기의 매력 아니겠어요? 다음 안건은 희망하는 배움이야기인데 주환이의 제안, “한 주에 하루는 요리수업을 합시다.” 못들은 척하고 있으니 어진이가 대표로 저에게 와서 말하더군요. “그래? 만장일치가 되면 그렇게 하자.” “와! 난 찬성. 나도나도!” 다들 환호성을 지르는데 용훈이가 “난 안 해!” (속으로 ‘어? 도대체 왜?’ 하면서도 못들은척) “용훈아 제에~~발” 손발 닳도록 사정을 하는데도 꿈쩍을 안하더군요. “나는 요리할 때 기다리는 거 지루해.” 결국 주환이가 매듭을 짓습니다. “만장일치가 안 돼서 요리수업은 실격!” 다 마치고 어땠느냐고 물으니 애들이 말을 너무 안 듣는다고, 안 끝났는데 일어나 가버린다고 입이 댓발이나 나왔습니다. 속으로 고소하게 웃으며 ‘거 봐, 내 맘 알겠지?’
✐ 절명상
‘하늘친구 천인클럽’ 아시지요? 우리 배움터가 진리를 실험하며 학교 철학에 따라 살아가는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천일기도입니다. 천일동안 그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마침내 천명의 하늘사람을 만나기를 염원하는 것이지요. 오늘(4/25)은 [하늘기도 1000-88일째]입니다. 5월 7일 첫 백일을 맞아 도법스님을 모시고 정성스런 마음을 함께 모으려고 하는데요, 제니스 가족은 백일이 될 때까지 매일 아침 열배의 절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늘사람으로 아름답고 당당하게 서고, 땅을 향해 나를 낮추어 만물을 섬기는 몸짓.
“안 하면 안 돼?” “오늘은 잘 할 테니 삼배만 해요.” 꿈쩍도 안하고 죽비를 드는 냉정한 제니스. (실은 ‘절운동’이라는 게 있을 만큼 어른이나 아이들에게 좋은 습관이랍니다. 백배절명상 후 발은 따뜻해져서 순환이 잘 되고, 머리는 차가워져 맑아진다는 임상실험 결과도 밝혀졌다지요.) 특정한 종교행위로서의 절이 아니라, 나를 낮추어 남과 나를 섬기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이기에 꾸준히 해 보려고 합니다. (혹시 ‘생명평화 백배서원절명상 CD’ 필요한 가정은 아이들 편에 알려주세요. 구해 드릴게요.)
✐ 입하방학 (5월 14일 ~ 20일)
여름방학·겨울방학 말고 ‘입하방학’? 저에게도 생소한 단어입니다. 아시다시피 적어도 6개월은 정해진 시간표 없이, 바깥 선생님의 지원도 없이 배움지기들 각자의 삶의 방식대로 아이들과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뭘 하려고 모여있나?”를 끊임없이 물으며.
잠시 들숨의 시간을 가지며 지난날을 돌아보고, 남은 날을 그려보는 시간으로 삼고자 합니다. 5월 5일 입하(立夏)가 지나면 자연도 푸르른 여름옷을 갈아입습니다. 아이들에게도 이즈음 일주간의 쉼은 자연의 놀라운 변화를 눈으로 가슴으로 느껴보는 좋은 선물이 된다고 먼저 경험한 분들이 말씀하십니다. 저희 배움지기들은 길 위의 수련을 떠날 예정입니다. 서로에게 소중한 쉼과 수련의 시간이 되길 마음 모아주시길.
✐ 어린이날
이날은 비싼 선물 받고 놀이공원 가는 날이 아니라, 하늘에 가까운 어린이들의 존귀함을 다시금 깨닫고 온몸으로 사랑을 주는 날. 배움터 가족들은 이런 의미를 잘 새기며, 선물과 북적대는 공원 나들이처럼 서로에게 피곤한(!) 행사가 아닌, 참된 어린이날을 보내시면 좋겠다고 배움지기들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플라스틱 장난감, 폭력을 알게 모르게 조장하는 장난감이나 게임기, 돈으로 치장된 고가의 선물은 하지 않는 것으로 아이들과도 약속 해 주시면 좋겠어요. 선물은 오천원 이하로 정해보면 좋겠구요.
‘돈을 우선하는 자본주의적 삶’을 거꾸로 살아보는 연습을 하기 좋은 날인 것 같아요. 물질(資)를 우선(本)하지 않는다고 하면 정말 우선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요. 가족 아이들과도 미리 충분히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서로에게 감사하고 축하하는 어린이날, 아이들과 흠뻑 사랑으로 지내보는 하루, 생각만 해도 흐뭇하지요? (그런데 그날, 저는 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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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려던 편지가 늘 길어져 송구합니다. 단순해지고 싶은데 연습이 더 필요한가 봐요.
창밖으로 밤바람에 세차게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흔들릴지언정 쓰러지지는 않겠지요.
내일 아침엔 밭에 우선하여 나가봐야겠습니다. 어린 모종들 밤새 안녕하신지.
‘5월 1일 부모배움’에서 반갑게 만나 뵈어요!
우리는 한몸 한마음, 나는 하늘사람!
2012년 4월 25일 봄밤, 제니스 두 손 모아
첫댓글 고맙습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