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가수 / 문혜진 시창고
벙어리 가수 / 문혜진
주사기를 꽂고
침대에 누워
벙어리 여가수가 운다
해져서 얼룩진 에메랄드 빛 벨벳 드레스를 입고
긴 모조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움푹 꺼진 눈꺼풀에 푸른 새도를 덮어쓴
광대뼈
번진 마스카라의 깊은 골
무거운 영혼을 이고 살아준
앙상한 몸에 경배하듯
한껏 부풀린 닭털 숄로 몸을 휘감고
혀를 뽑은 앵무새의 깃털 같은
코사주의 벌어진 꽃술
오븐에 들어가기 직전의 밀가루 반죽처럼
흐물흐물한 가슴을
자꾸만 쓸어내린다
한때 사내들을 모조리 집어살킬 듯
붉게 이글거린던
구설수의 체리빛 입술
달콤한 타액이
꿀처럼 흘러내리던 입에는
열기 없는 마지막 불길이 일고
늙은 사내의 덜렁거리는 고환처럼
더 이상 아무도 감동시킬 수 없는
카바레 퇴물 여가수의
고독한 성대
시원찮은 벌이로 연명하던
싸구려 목구멍으로
목소리 없는 한 생애가
복화술처럼
스스
생이 마지막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질 나쁜 연애』 민음사, 2004.
문혜진 시인
1976년 경북 김천 출생
추계애대 문창과,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199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질 나쁜 연애> 2004년 민음사
[출처] 벙어리 가수 / 문혜진|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