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루돌프 슈타이너)는 오늘날 사람들이 완전히 뿌리뽑혔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그 상태로 세상에 돌아다닙니다(7-14세를 위한 교육예술, 2022, 97)."
슈타이너의 책을 읽으면서 언제나 느끼는 것이 정신은 반드시 체험해야 이해한다는 것이다. 책은 읽었지만 생활 속에서 체험하지 않으면 읽은 내용은 전혀 읽지 않은 것과도 같다는 말인데, 체험이 현실에서 이어지기가 어려운 것이 문제이긴 하다. 비약하면 체험함과 동시에 정신이 비로소 한 단계 진화한다. 따라서 정신이 배제된 채 교육을 받는 현재의 아이들의 상황이 위 문장과 같을 것이다. 슈타이너가 한 말은 어른도 그렇다는 의미이지만, 이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교육을 통하여 그렇게 된다는 것이 가슴이 아픈 것이다. 이것을 느끼게 된 것 역시 필자가 실제로 체험을 한 때문이다.
슈타이너는 식물을 가르칠 때 반드시 땅에서 자라는 식물을 관찰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머릿카락에서 머리를 배제한 머릿카락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특히 실물교육을 한다고 식물을 뿌리채 뽑아와서 교실에서 관찰을 하는데, 그것이 잘못된 실물교육이라는 것이다. 통상 학교에서는 거의 대부분 뿌리채 뽑아온 식물을 가르친다. 사실 교과서에 그렇게 나와 있는 부분은 과학 관찰부분이다. 이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가르치는데, 이는 과학적인 사고방식 교육을 인류가 선택한 결과이다. 특히 7-14세 사이 아이들은 태어나 지구에 정착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렇게 접근해서는 안된다. 이 시기에는 식물을 지구와 같은 존재로 그리하여 인간인 자신도 지구와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결론은 인간의 발달에 따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문제인가가 질문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식물은 반드시 땅과 함께 있어야 온전한 식물이고, 땅이 배제된 식물은 식물이 아니다. 필자 역시 슈타이너 책에서 그렇게 읽었지만, 현장에서 가르칠 때에는 식물을 뿌리채 뽑아다 가르쳤다. 바로 말하면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정신은 모든 존재가 하나이다'가 근간이다. 즉 지구에서 나고 자라는 모든 존재가 자신과 같은 존재이다를 가르쳐야 아이들의 정신이 올바르게 자란다.
여담으로 필자의 체험이다. 필자 역시 과학적인 교육을 받은 세대로 쓰레기를 버리면 안된다고 지식으로는 배웠다. 약간 주제와 어긋나지만 그래도 말하면, 평소 쓰레기를 버리지는 않았는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 이유가 필자의 무의식에 사랑이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사랑은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서 받은 사랑이다. 결과 과학적인 사고방식의 교육을 받았지만, 정신이 온전하게 배제되지 않은 것이다. 이렇듯 무의식에 내재된 사랑이 중요하다. 이는 법륜스님이 늘 강조하는 말씀으로, 아이가 3세까지 받은 사랑이 무의식에 내재되어 평생을 걸쳐 영향을 미치므로 양육하는 사람은 늘 유념해야 한다는 이야기와 같은 이야기이다.
식물이 땅과 하나인 존재, 식물과 땅을 분리해서 가르쳐서는 안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 정신의 근간인 모든 존재를 -아이들이- 하나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식물이 땅이 없어도 사는 존재가 아니라, 반드시 땅이 있어야 자라는 존재라면 아이 자신도 그렇게 지구와 하나인 존재로 받아들인다. 자신과 식물이 땅과 분리된 존재가 아닌데서 자신도 모든 존재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7-14세 사이 아이들은 자아가 탄생하지 않은 상태이다. 즉 내것과 네것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때 모든 존재가 하나이다란 사실을 가르쳐야 아이들의 정신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이 시기 아이들은 모든 존재와 자신을 똑같이 생각한다. 식물이 땅과 분리되지 않으면, 자신도 땅과 분리되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식물과 내가 같은 존재이므로 그렇다. 나아가 지구와도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실 지식으로 보면 별 것이 아닌듯 보이지만, 이 사실은 굉장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식물처럼 인간의 뿌리가 뽑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아스트랄체가 탄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혼이 사고를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식으로 가르쳐봐야 아이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이 말은 양육하는 사람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먼저 양육자가 모든 존재를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
요컨대 아이들이 지구와 자신이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쓰레기를 그렇게 함부로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모든 존재들과 자신이 다른 존재이므로 친구들을 괴롭히는 학교폭력도 생기게 된다. 이는 아주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식물과 땅이 분리되어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은 결과이다. 그래서 필자가 그렇게 형성된 자아의 아이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자아는 한 번 형성되면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 자신도 모른 채 그렇게 행동한다. 이번에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학교폭력사건에서도 가해자의 자아가 반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자아-정신이 그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필자가 직접 체험해서 꺠달은 것이다. 여기에서 두 번째 깨달음이 나온다.
두 번째, 정신을 파악할려면, 이것이 영계 입문이기도 하다. 반드시 영계에 입문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영계에 입문할려면 정신의 근간인 모든 존재가 하나다라는 사실을 자아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계에 입문하고 있는 자아는 저차자아가 아니라 고차자아이기 떄문이다. 즉 모든 존재가 하나이면 고차자아에 연결되었다. 결론은 자연의 모든 존재도 나와 같은 존재이므로 절대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말로 하지 않아도 스스로 한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면 스스로 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요약하면 자신의 자아가 다른 존재와 벽이 있으면, 영계에 입문하지 못한 것이고, 현재 자아는 저차자아이다. 따라서 정신계의 통지를 받기가 어렵다. 모든 사람이 현실 삶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원하지만, 받지 못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리고 이 근본적인 이유가 인간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은 교육이 원인이다. 특히 정신을 배제한 현 인류의 과학적인 교육에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모두 자신이 책임져야한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 인류의 과학적인 사고방식 교육이 문제인 것은 이와 같이 모든 존재를 나와 다른 존재로 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신의 근간을 배제하기 때문에 영계와의 연결을 끊는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은 영계와 연결되어서 현실의 삶을 산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본래 우주에서 존재하다가 물질육체를 입는다. 0-7세까지 물질육체가 자라고, 이갈이 무렵 에테르체가 자유로와진다. 7-14세 시기, 자유로와진 에테르체의 속성에 따라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에테르체는 끊임 없이 반짝이면서 움직이는데, 이 움직임이 리듬이다. 호흡이나 맥박이 뛰는 것이다. 그리고 에테르체는 물질육체를 만들었으므로 무엇이라도 만들고자 한다. 이 속성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게 해 주고 상을 만들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 모든 존재가 하나이다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파악하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다음 시기, 14-21세에 아스트랄체가 탄생하면 영혼이 사고를 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하나이다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비로소 사고를 할 수있는 아스트랄체가 탄생하였으므로 이 시기부터 사고교육이 가능하다. 이어서 21세 무렵 자아가 탄생한다.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 자아가 모두 우주에 연결되어서 우주 에너지와 함께 움직인다. 이러한 인간의 발달단계에 맞게 교육이 이루어져야 인간이 지구에서 온전하게 살아갈 것이며, 이 자아를 통해서 자신의 고차자아를 탄생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과학적인 요소를 파악하면 자신의 자아를 진화시킬 수가 있다. 문제는 에테르체인데, 아스트랄체는 파악할 수가 있지만, 에테르체는 의도적으로 깨우지 않으면 거의 대부분 잠을 자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가만히 바라보면 그것이 아스트랄체이다. 특히 7-14세 사이에 리코더와 같은 관악기를 불면, 아스트랄체가 구름처럼 호흡을 통해 악기로 이동하는 것을 파악할 수있다. 에테르체는 아스트랄체를 통하여 깨운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다-. 감정을 통하여 -가만히- 감정으로 들어가면 에테르체의 생명현상이 연결된다. 에테르체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아를 만나서 영계로 입문하는 것이다.
짐작하기에 슈타이너의 주장처럼, 현 인류의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뿌리를 뽑힌 채 부유한다. 이것은 인간의 발달단계에 받은 교육의 결과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발달단계에 맞게 자아를 지구에 연결시켜주어야 하는데 교육이 반대로 한 것이다. 아이들(청소년 포함)보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해도 버리는 이유가 자아가 모든 존재를 자신과 다른 존재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자아가 잠을 자는 것이지만, 이는 아이들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그런 아이들을 나무라기가 어렵다. 아이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고 창조성이 없다는 등, 작은 어려움도 극복하지 못한다는 등 하는 말을 들으면 참 어이가 없다. 얼마 전에 한 아이가 자라는데에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슬로건을 본 적이 있는데, 과연 이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쓰레기를 주우면서 든 생각이다. 누구라도 영계에 입문할려면 반드시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슈타이너가 7-14세 사이 아이들에게 요구한 교육방법이었고, 그것을 필자가 직접 체험하면서 파악한 것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자연과 내가 하나이므로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정신은 내가 체험하지 않으면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정신의 진화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