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 박성민
문자와 사랑 / 박성민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소양강 돌다리까지 달렸다
강변에 먼저 와 있던 문자는 조용히 앉아
막 피어난 안개로 손을 씻고 있었다
나는 물풀처럼 흔들리며
흐르는 물살이 입은 햇살이 부러웠다
강 건너 우두동의 저녁을 향해
문자는 어른처럼 익숙한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게 잠긴 목소리로
처음 `그대'라고 불러 보았다
저녁 강이 비치는 하늘은 깊은 분지를 향해 흘러갔다
나는 역 광장에서 서성이며 미군부대 헬기가 뜨기를 기다렸다
담 밖 꽃 진 나무들이 어떻게 바람소리를 내는지 궁금했지만
서울로 가는 길이어서인지, 기적소리 길게 레일을 벗어날 때
검은 안개 본 적 있니? 미군부대 녹슨 철조망에 기대어
헝클어진 머리 문자는 짓궂게 웃기만 했다
[당선소감] “가슴속 녹슨 이정표 안고 시인의 길 걸어갈 것”
추수가 끝난 논 위로 덤불이 삶처럼 얽혀 굴러간다. 아카시아나무 질긴 뿌리 끝에 바람의 생장점을 가지고 있는 곳. 남대천 옆 소금창고에는 나이 든 제설공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덜그럭거리는 창을 고치며 몇 번째 안간힘인가 셈해본다. 해풍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인제 쯤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창밖 빈 가지들이 어떻게 겨울을 버티는지 바라보며 나는 시를 쓴다.
당선 소식을 듣고 어린 내가 봤던, 오랫동안 의심했던 녹슨 이정표가 맞았음을 알게 됐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지만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오규원, 김혜순 교수님, 가족들, 친구 연호와 주현, 그리고 같이 겨울을 보내는 동료들이 떠오른다. 말 없는 내게 말 걸어 준 그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심사평] “오늘 날 생활양식 서정적으로 반영 인상 깊어”
80여편이 예선을 거쳐 올라왔다. 대체적으로 해석되고 존재하는 세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이할 만한 것은 응모자 연령대가 상당히 낮아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다' 할 만큼 눈에 띄는 작품은 없었다.
박여원의 `등대와 함께한 밤', 김겸의 `귀로', 권소영의 `물기', 박성민의 `문자와의 사랑'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등대와 함께한 밤'은 산문시로 시상 전개의 역량이 돋보였으나 시적 장치가 단조로웠다. `귀로'는 전개 방식은 특이했으나 특정 언어 체험의 일반화에 무리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물기'와 `문자와의 사랑'이 당선을 겨뤘다. `물기'는 시적 전개와 상상력의 완성도가 높았으나 볼륨이 약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최종으로 오늘날 생활양식을 잘 반영한 `문자와의 사랑'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의견을 모았다. 모든 분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이영춘, 이상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