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나는 가끔 혼잣말을 한다
오늘도 사랑이랑 산을 내려오다가 혼잣말을 했다
사랑이랑 맨 처음 산에 왔을 때는 황홀했죠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녀석을 데리고 나오는데
눈물이 핑 돌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날이 며칠 지속되다가 조금 시들해지더라고요
그래도 사랑이에게 자주 갔어요
사랑이를 산책시켜주는 것이
사랑보다는 의무로 하는 일 같았지만요
사랑이든 의무든 사랑이에겐 좋은 일이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장마철이라 연일 비가 내렸는데
빗발이 조금 약해지자
우산을 쓰고 사랑이에게 가 보았어요
사랑이는 나를 보자 춤을 추기 시작했지요
간식만 먹여주고 돌아서려는데
춤이 더 격렬해지는 것이었어요
비를 맞으면 감기에 걸릴 것 같아서
개집으로 들어가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사랑이 옆에 바짝 쪼그려 앉아
우산 속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요
사랑이를 사랑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어요
그 전에 한 일도 사랑이를 위한 것이었으니
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요
매일 아침 간식을 챙겨 들고
사랑이에게 가는 길이 참 행복했어요
지금은 사랑이에게 사랑으로 가지 않아요
의무로 가는 것은 더욱 아니고요
그냥 가는 거지요
그냥요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산을 내려오는데
앞서서 잘 내려가던 사랑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것이었다
산에 올라갈 때 외진 곳에 벗어놓은 운동화가
저만치 놓여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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