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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엔 파스 두 장, ‘코로나 중환자’ 병상으로 무전기 들고 뛴다
© 제공: 한겨레 간호사가 중증환자에게 연결한 튜브를 살펴보고 있다.
은 2020년 12월25일 아침 7시부터 12월27일 아침 7시까지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 머물면서 코로나19와 관련된 48시간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코로나19 중환자가 가장 많이 입원 중(50~60명)인 병원이다. 병상 배정을 하는 ‘수도권 코로나19 공동대응상황실’도 여기에 있다. 취재는 국립중앙의료원의 도움을 받아 방역지침을 지키며 진행했다.
“(2층으로) 올라가시는 분도 상태가 좋으신 분은 아닌데….” 종종걸음을 치던 간호사가 말끝을 흐린다. 그러나 병상이 없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241명이나 쏟아져 나온 2020년 12월25일 아침, 국립중앙의료원 주차장 한편에 자리잡은 음압격리병동.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총 4개의 문을 통과해야 들어가는 병실 안에는 생명이 위독한 코로나 환자 26명이 누워 있다. 1층에는 에크모(ECMO·체외막산소화장치) 등을 달아야 할 정도로 최중증인 환자 12명이, 2층에는 산소마스크를 쓰거나 고유량 산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증환자 14명이 입원 중이다. 병동은 3층짜리 모듈형 조립 건물이다. 중환자 병상을 급히 확충하기 위해 2020년 10월 지어졌다.
병상 배분 고민하는 의료진
1층 병상 12개, 2층 병상 14개. 한 자리 한 자리 의미는 각별하다. 전국 코로나19 위중증환자 311명(12월25일 0시 기준) 가운데서도 가장 상태가 위중한 환자들이 1층에 누워 있다. 에크모, 투석치료기인 CRRT 같은 기기를 주렁주렁 달았다. 대개 의식이 없다. 이보다 덜하다지만 2층에 머무는 환자의 상태 역시 만만치 않다. “다른 병원이라면 중환자실 가고도 남을 분들, 언제든 인공호흡기 달아도 이상하지 않은 분들”(전재현 음압격리병동 운영실장·감염내과 전문의)이다. 정신질환, 치매 등 추가 돌봄이 필요한 환자도 있다.
이렇게 정말 ‘힘든’ 중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은 많지 않다. ‘병상이 있다’고 신고해놓고도, 치매·정신질환 환자 등 돌보기 힘든 중환자 치료를 거부하는 병원도 있다. 중앙감염병병원이자 공공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은 그럴 수 없다. 벼랑 끝이다. 의료진은 매일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이를테면, 1층 최중증 병상 열두 자리에 누구를 눕힐 것인가.
이날 저녁 2층에서 위중한 환자가 생겼다. 아침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급격히 악화했다. 1층 병상은 이미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그를 위해 1층 누군가 자리를 비워야 한다. 그나마 증상이 나은 환자를 2층으로 올려 보낸다. 국립중앙의료원은 환자 상태 변화에 따라 음압격리병동 1층과 2층, 본관 사이를 수시로 이동시킨다. 집중치료는 빠르고 짧게. 병상 회전율을 높여 조금이라도 더 많은 환자를 살려보려는 발버둥이다. 그 결과, 중환자 재원 일수가 20~24일(8월)에서 7~10일(12월)로 크게 줄었다. 전국 병원의 코로나19 중환자 평균 재원 기간은 21~28일이다. 증상이 생긴 뒤 열흘이 지나 감염력이 사라진 환자는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이 나오지 않더라도 퇴원시킨다. 감염력이 없는데도 몇달씩 병상을 차지하는 환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크리스마스 밤 11시, 이 순간 이 자리가 가장 절박했던 환자가 1층 열두 자리 가운데 한 자리로 실려 들어온다. 환자복 사이로 보이는 배가 가늘고 빠르게 떨린다. 인공호흡기를 다는 동안 뱃가죽은 크게 부풀고 크게 수축한다. 숨 쉬기 위해 환자도 필사적이다. 1시간가량 처치가 끝난 뒤에야 호흡은 안정을 찾았다.
© 제공: 한겨레 2020년 12월26일 밤 10시, 국립중앙의료원 음압격리병동 1층에서 간호사들이 상태가 다소 호전된 코로나19 환자를 2층으로 옮기려고 부축하고 있다. 가장 상태가 중한 환자들이 있는 1층 병상은 다른 위중한 환자로 곧 채워졌다.
죽음의 고비에서 가능한 면회
“이제 가자, 엄마.” “5분 끝났겠다.”
엄마라고 불린 여성은 멈칫하더니 발걸음을 되돌려 병실 유리창 너머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면회 종료되셨어요.” 간호사 목소리가 등을 억지로 밀어냈다. 가족에게 허락된 단 5분의 면회가 끝났다.
앞서 12월26일 오전 음압격리병동 1층에선 전재현 실장과 간호사 3∼4명이 한 환자의 상태를 심각하게 살펴보고 있다. 지난밤 2층에서 1층으로 자리를 옮긴 그 환자다. 결국 환자 몸엔 투석기가 연결된다. 그는 다른 병원에 있다가 증세가 악화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숨 쉬는 것이 어려워 혈액이 산성화된 상태로 시간이 흘러 콩팥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 조기에 투석을 결정했다.” 병실을 나온 전 실장이 설명했다.
환자가 죽음의 고비에 서면, 의료진은 가족에게 연락한다. 면회는 환자가 ‘사망에 준하는 상태’일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가능하다. 다행히 이 환자의 상태는 조금 나아졌지만, 이미 병원에 도착한 가족을 차마 그냥 되돌려보내지는 못했다. ‘제한구역’이라고 쓰인 철문 안으로 들어온 가족은 유리창 너머에 누워 있는 환자를 보며 간절하게, 울먹거리며 말했다. “아빠, 힘내.” “여보, 사랑해요.”
병실 바깥의 간호사가 무전기로 병동 안의 간호사에게 말한다. “환자 귀에 무전기 가져다 대주세요.” 이어 무전기를 가족에게 건넨다. “여기다 말씀해보세요. 아마 듣고 계실 거예요.” 무전기 너머 환자의 미세한 떨림이라도 놓치지 않는다. “아빠가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봐
.” 가족은 희망을 잃고 싶지 않다.
이날 밤 9시 음압격리병동 1층. 병실에서 막 나와 땀에 젖은 모습으로, 이승연 간호사는 동료 걱정부터 한다. “준형 쌤은 동기인 저한테도 힘든 티를 별로 내지 않아요. 근데 보셨죠? 오늘 목에 파스 두장을 붙이고 왔더라고요.” 몇분 앞서 병실에서 나온 조준형 간호사는 다시 무전기를 쥐고 복도로 뛰어나갔다. 또 다른 2층 환자 상태가 급격히 악화했다. 다시 1층 환자와 자리를 맞바꾸기로 했다.
두 간호사는 2017년 국립중앙의료원에 들어왔다. 원래 내과 중환자실에서 일했다. 중환자실 경력이 있는 간호사는 귀하다.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귀해서 더 혹독하게 일한다. “준형 쌤은 8시간 근무 중에 7시간을 병실에 들어간 적이 있어요. 보통 2시간씩 근무하고 나오는데, 다시 응급상황이 벌어진 거예요. 자기밖에 들어갈 사람이 없으니까 서너번을 들어갔다 나온 거예요.”(이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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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없는 병상은 침대
정부가 코로나19 중증환자용이라고 못박아두는 수도권 지역 ‘중증환자 전담병상’은 159개(12월17일)에서 239개(12월25일)까지 늘었다. 최근 상급종합병원과 국립대병원에 허가 병상의 1% 이상을 전담병상으로 내놓으라고 정부가 명령을 내린 덕분이다. 감염병예방법에 따른 자원 동원이다. 병원도 크게 손해 보진 않는다. 정부가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전담병상에 대해서는 병상당 평균 하루 수입을 10배 가산해 보상해준다. 당근(보상)과 채찍(동원명령)을 동시에 쓰는 셈이다.
하지만 의료진 없는 병상은 침대에 불과하다. 특히 중환자 병상에는 숙련된 간호인력 확보가 필수다. 코로나19 중증환자 병상 1개당 필요한 간호사 수는 일반 병상보다 10배가량 많다. 정부가 매일 발표하는 ‘병상 현황’ 자료에서 병상 수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한다. 병상이 있어도 환자를 돌볼 의료진이나 장비가 부족한 탓이다.
“힘든 얘기 시작하면 울 것 같다”고 말하는 이 간호사 눈에 눈물이 벌써 가득 찼다. “원래 눈물도 많고 웃음도 많은데 요즘은 집에 가서도 많이 울어요.” 울음에 담긴 게 고단함 같기도, 억울함 같기도, 미안함 같기도 하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아수라장 속에 1년을 버텼다. 아직 더 가야 한다.
고단하다. 116명 간호사가 음압격리병동에서 일한다. 본관 코로나 병동까지 합치면 총 249명이다. 감염내과 의사도 겨우 4명뿐이다.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위해 10월에 간호사 118명(경력직 64명 포함)을 새로 뽑았다. 경력직이라도 새 병원 시스템에 적응하려면 시간과 교육이 필요하다. 원래 있던 간호사들은 환자뿐 아니라 동료 교육까지 맡아야 한다. 그나마 “경력직 간호사들이 점점 적응하고 있어 사정이 좀 나아질 것 같다.”(이 간호사) 견뎌만 준다면. 새로 뽑은 간호사 가운데 벌써 9명이 그만뒀다.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전에도 고된 환경과 처우 탓에 초반에 많이 떠났다.
© 제공: 한겨레 2020년 12월26일, 코로나19 최중증환자를 치료하는 국립중앙의료원 음압격리병동에서 병실 안의 간호사가 필요한 물품을 적은 메모를 병실 밖 간호사에게 보여주고 있다. 격리된 병실 안과 밖의 소통은 무전기, 메신저, 유리창 메모 등을 통해 이뤄진다.
수당 없는 공공병원 간호사
억울하기도 하다.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서 파견직 간호사를 보낸다. 잠깐 파견된 거라 병원 전산을 열어줄 수도 없고, 업무 지시도 조심스럽다. 12월25일 청와대 국민청원 누리집에 코로나19 전담병원 간호사의 글이 올라왔다. 중수본 파견 간호사에게만 월 700만~900만원을 지급하는 불공평을 호소했다. 1년 가까이 일한 이 간호사가 받은 ‘코로나19 수당’은 전부 합쳐봐도 250만원 남짓이다. 다른 공공병원에는 수당조차 받지 못한 간호사들도 있다.
고단하고 억울해도 음압격리병동을 떠날 수 없다. “그만둘 거라고 매일 밤 얘긴 하는데 저도, 동료들도 알아요. 어쨌든 지금까지 버텨온 사람들은 결국 계속할 거라는 걸.”(이 간호사) 책임감 때문이다. 내가 흔들리면 살릴 수 있던 환자를 눈앞에서 놓친다. 동료들은 두배로 힘들어진다.
또한 죄책감 때문이다. 중환자실에서 적잖게 죽음을 봤지만, 지금의 죽음은 다르다. 갑작스럽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계신 분들이 힘들어하시면 ‘지금 잘하고 계세요. 괜찮아요’ 이야기해요. 그랬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면…. 나이팅게일 선서가 ‘헌신하겠다’는 말로 끝나요. 내가 좀 지쳤다고 헌신을 하지 못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만 같아요.”(조 간호사)
12월1~23일 국립중앙의료원에서는 모두 14명의 코로나19 환자가 숨졌다. 앞서 1~10월 숨진 환자는 통틀어 18명뿐이었다. 11월에는 사망자가 없었다. 분명 의료진 탓은 아닐 텐데, 간호사들은 괴로워한다. 때론 자책한다.
간호사는 숨진 환자를 씻기고, 가족이 원하는 물품을 주검 담는 비닐백에 넣는 일도 한다. 음압격리병실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의료진뿐이니까. 코로나19 유행 초반에는 감염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입에 넣은 관(호스)을 뽑지도 못한 채 환자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 잔상은 오래 남았다.
© 제공: 한겨레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병원에 설치된 수도권 상황실
12월27일 새벽. 시곗바늘이 3시30분을 막 지나고 있다. 병원 연구동 2층 ‘수도권 코로나19 공동대응상황실’ 문틈으로 환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손성민 보건복지부 사무관은 각 지방자치단체가 배정한 환자 통계를 엑셀표에 정리 중이다. 전날 오전 9시에 출근했는데, 아직도 퇴근하지 못해 19시간 가까이 일하고 있다. ‘1% 병상 동원’ 명령과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을 자청하고 나선 평택박애병원 등 덕분에, 부족한 수도권 병상 상황에 잠시 숨통이 트였다. 아직 안심할 수준은 아니다. 중증 난치병이 있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환자, 와상·투석 환자는 여전히 병상을 배정받기 어렵다.
정부가 확보한 코로나19 중증환자 전담병상은 총 562개(12월30일 기준). “중환자 병상 400개는 일일 신규 확진자 1천명 발생까지만 감당 가능”(주영수 공동대응상황실장)한 수준이다. 전담병상으로 지정하지 않은 병상을 모두 합쳐도, 아직 우리나라 중환자 병상(약 1만개)의 7% 남짓만 코로나19 중환자 치료에 쓰인다(12월29일 중수본 발표).
1년 동안 코로나19 환자 진료의 80% 이상은 공공병원이 책임졌다. 공공병원이란, 국립중앙의료원과 시·도에서 설립한 지방의료원 등을 말한다. 공공병상은 전체 병상의 10% 남짓에 불과하다. 나머지 90%는 민간병상이다. 한국의 인구 1천명당 병상 수(12.4개)가 세계 2위인데도, 코로나19 병상이 부족하다는 아우성이 나오는 모순은 여기서 시작된다. 병상의 10%(공공병상)는 대부분 가동 중인데, 90%(민간병상)는 일부만 내주고 있어서다. 더구나 대부분의 공공병원은 심뇌혈관 질환 등이 있는 코로나19 최중증 환자를 볼 의료 자원이 부족하다.
© 제공: 한겨레 2020년 12월26일 오후 서울시 북부병원에 입원한 코로나19 환자가 구급차를 타고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됐다. 이동형 컴퓨터단층촬영(CT) 기기를 이용하기 위해 무려 1시간 가까이 달려왔다. 북부병원 등 대부분의 공공병원은 코로나19 환자 치료를 거의 전담하다시피 하지만, 심뇌혈관 질환 등 코로나19 중증환자를 볼 만큼 의료자원을 갖추지는 못했다.
공공의료 소홀히 여긴 대가
올겨울 중환자 병상 부족, 의료진 소진 등의 위기는 평소 공공의료를 소홀히 여긴 우리 사회가 자초한 벌이다. “2015년 메르스 때도 병원을 통째로 (42일간) 비웠는데, 그 뒤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공공병원을 내팽개쳐놨다. 공공병원에 투자한다면 오히려 눈을 부라리고.”(김영환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
2021년도 예산안에 공공병원 신축 관련 예산을 빼놓아 비판받던 정부는, 최근 뒤늦게야 2025년까지 공공병상 5천여개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제라도 현장의 목소리에 정부는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루살이 정책으로는 힘들다. 더는 공공의료를 쪼그라들게 해서는 안 된다.”(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지금이라도 공공의료 투자를 늘려서 3년 뒤, 5년 뒤 또 다른 감염병 위기가 닥칠 때를 대비해야 한다.”(방지환 중앙감염병병원 운영센터장)
글 방준호 박다해 황예랑 기자 whorun@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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