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지향(文獻之鄕) 좋은 책이 많은 고을
文 : 글월 문. 獻 : 바칠 헌. 어질 헌. 之 : 의 지. 鄕 : 고을 향.
‘문헌(文獻)’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데, 사람들은 흔히 ‘서적(書籍)’이나 ‘책(冊)’과 같은 뜻인 줄 알지만, 뜻이 상당히 다르다.
‘문헌(文獻)’이라 할 때 쓰인 ‘바칠 헌(獻)’자의 뜻은 ‘어질다’라는 것이다.
문헌의 본래 뜻은, 옛날의 ‘문물(文物)이나 전장 제도(典章制度)를 담은 글로 된 자료[文]와 옛날 일을 많이 아는 어진 이[獻]’라는 뜻이었다.
그 뒤 ‘옛날 일을 많이 아는 어진 이가 남긴 말을 담은 책’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고, 나중에는 ‘옛날의 문물이나 전장제도를 담은 좋은 책’의 뜻으로 주로 쓰였다.
경남에서 보면 함안(咸安)은 서원 숫자가 가장 많고, 선비가 많이 배출된 고을이고, 남아 있는 문헌도 많다.
우리나라 문헌의 대부분이 선비들의 문집이지만, 함안에는 다른 고을에서 볼 수 없는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 문헌이 세 가지 있다.
첫째는 함안의 역사와 지리를 담은 인문 지리서인 <함주지(咸州誌)>다.
이 <함주지>는 현재 남아 있는 우리 나라 최초의 군지(郡誌)이고, 임진 왜란 이전에 편찬된 유일한 군지이다.
1589년 한강(寒岡) 정구(鄭逑) 선생께서 함안 군수로 부임하여 <함주지>를 편찬하였는데, 그 책이 오늘날 남아 있다. 정말 문헌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책이다.
한강 선생은 퇴계(退溪) 이 황(李滉) 선생과 남명(南冥) 조식(曹植) 선생의 제자로, 그 학문을 계승한 뛰어난 학자였다.
한강 선생이 창녕(昌寧) 통천(通川) 등 부임하는 곳마다 군지를 만들었지만 다 없어졌고 <함주지>만 지금 남아 있다.
둘째는 <함안 총쇄록(咸安叢錄)>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조선 말기 함안 군수로 부임한 오 횡묵(吳宖默)이라는 분이 개인적으로 기록한 일지(日誌)이다.
1894년부터 1897년까지 3년에 걸쳐서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함안 사람들의 생활 양식, 사고 방식 등등을 알 수 있으니 연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지만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이 분은 고을원으로 부임하는 곳마다 총쇄록을 남겼는데, 고성(固城), 경북의 자인(慈仁), 강원도 정선(旌善) 등의 고을원으로 있으면서 총쇄록을 남겼다.
<함주지>가 정확한 기록 사진이라면, <함안총쇄록>은 비디오 촬영같이 자세하면서도 생동적인 기록이다.
세 번째는 <금라전신록(金羅傳信錄)>이다.
인조조(仁祖朝)의 학자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 선생이 편찬한 것이다.
상하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상권은 함안의 주요 인물들의 전기 자료를 모은 것이고, 하권은 함안 출신 인물들이 지은 시문을 선집한 것이다.
상권이 17세기까지의 함안 인물사(咸安人物史)라면, 하권은 17세기까지의 함안의 한문 학사(漢文學史)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편찬하면서 많은 자료들을 인용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원자료는 없어져 버리고, <전신록>에만 남아 있는 내용도 많다.
그래서 이 책은 더욱 가치 있는 것이다.
<금라 전신록>은 함안 문화원에서 주관하여 창원 대학교의 이 명성(李明星) 장 성진(張成鎭) 두 교수에게 의뢰하여 번역을 끝마쳐, 지난 6월 24일 함안 문화원에서 출판 기념식을 가졌다.
함안의 세 가지 문헌이 귀중하기도 하지만, 이런 문헌들이 모두 번역되어 관심 있는 분들에게 보급된 것은 우리 전통 문화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다.
21세기 문화 전쟁의 시대에는 우리 것이 더욱 필요하고 소중하다.
이런 세 종류의 책은 한 고을의 문헌의 아니고 국가의 귀중한 문헌으로 우리 문화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읽어 활용하기 바란다.
~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
= 받은 글 편집 =
漢陽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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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요소리와 & 한자공부 문헌지향 좋은글을 잘 읽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선조들의 훌륭한 업적을 오늘에 되살려 길이 길이 보전하련만, 우리는 후대에 물려 줄 유산이라곤 끊임없는 정쟁, 이전투구, 시기와 반목, 투기와 탐욕 뿐 같은 것은 내 혼자만의 생각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