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14
9. 엄마의 멀뚝3(박완서) 줄거리
「엄마의 말뚝-1부」는 고향인 박적골에서 남편을 여읜 어머니가 어린 오누이와 함께 서울로 옮겨와서부터 억척과 의지로 마침내 집 한 채를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시골에서 자란 여덟 살짜리 계집애인 ‘나’가 서울 생활에 길들여지기까지의 과정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기술해 간 다. 애초에 고향을 떠날 때의 거창한 포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대문 밖 현저동 산꼭대기에 여섯 칸짜리 누옥을 장만한 어머니는 드디어 서울에 말뚝을 박았다고 감개무량해 한다. 일제하의 식민지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주로 서대문 밖의 현저동 산꼭대기의 가난한 동네에 사는 ‘쌍것’들의 생활상을 자상하고 리얼한 필치로 생동감 있게 재현시킨 일종의 풍속적 생활사이다. 그리고 ‘문밖’ 인생에서 벗어나 ‘문안’에 말뚝을 박으려는 질경이 같은 집념과 의지로 식민지적 상황을 헤쳐 나가는 한국 여성의 한 전형을 만나게 된다.
「엄마의 말뚝-2부」는 전쟁과 오빠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5남매의 어머니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나’는 86세의 노령인 친정어머니가 낙상 사고로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행히 뼈를 접합시키는 수술은 성공적이었으나 한밤중에 어머니는 마취의 영향 탓인지 6.25 전쟁 중에 비극적으로 죽어간 아들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 오빠는 해방 후 좌익운동에 가담했다가 전향했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있는 동안 이웃의 고발로 전향자로 지목 받은 오빠는 의용군으로 끌려간다. 그러다 1.4후퇴가 시작될 즈음 오빠는 탈출하여 집으로 다시 돌아온다. 오빠는 사람만 보면 두려워 피하는 피해망상으로 정신이 이미 망가져 있었다. 상황이 또 바뀌어 피난을 가야 했으나 시민증을 제시할 수 없는 오빠 때문에 우리는 서울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도망갈 구멍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머니는 불현듯, 자신이 서울에 최초의 말뚝을 박았던 현저동을 생각해 내었다. 우리가 그렇게 저주했던 현저동을 그때 나는 처음으로 고향처럼 느꼈다. 그러나 평소 젊은 오빠를 수상하게 여겨왔던 인민군 군관은 오빠에게 총을 쏴댔던 것이다. 우리는 무참히 살해된 오빠를 가매장했다가 나중에 화장하여 고향 개풍군 땅이 보이는 강화도 바닷가에서 ‘지척으로 보이되 갈 수 없는 땅’을 향하여 한 줌 재로 날렸다. 마취에서 깨어난 다음날 어머니는 나에게 유언이라며, “내가 죽거든 느이 오래비한테 해준 것처럼 해다오”라고 말한다.
「엄마의 말뚝-3부」는 어머니가 아들과 마찬가지로 화장되어 강물에 뿌려지길 바랐던 당신의 소망과는 달리 서울 근교의 공원묘지에 묻히기까지다. 수술 후 엄마는 7년을 더 살다 돌아가셨다. 나는 엄마의 유언대로 엄마의 시신을 화장하여 고향이 바라다 보이는 강화도 바닷가에 오빠의 경우처럼 장례 지내고자 하지만 장성한 조카는 주위의 이목과 자신의 사회적 체면을 이유로 매장할 것을 고집하여 뜻대로 장례를 치른다.
핵심 정리
·갈래 : 중편소설, 연작소설
·구성 : 시간의 역전적 구성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배경 : 시간-1950∼1980년. 공간-서울
·제재 : 6·25 때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삶
·주제 : 6·25가 남긴 한과 슬픔.
등장 인물
·나 : 가정에서 자신의 삶과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는 주부. 어머니의 끈기 있는 삶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인물로, 6.25와 분단으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려는 의지적 인물.
·어머니 : 일제 강점기에 남편을 잃고 아들과 딸을 교육시키며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의지적인 인물로, 6.25 때 아들마저 잃은 아픈 과거를 가진 인물
·오빠 : 어머니에게 효성스러운 착한 아들이었으나, 해방 후 좌익 운동을 한 후 전향함. 6.25 전쟁 중에 인민군 의용군으로 끌려나갔다가 탈출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나 결국에는 인민군 군관의 총에 맞아 불행한 죽음을 당한 인물
이해와 감상
1980년 9월 『문학사상』에 1부가, 그 이듬해에 2부를 발표하여 제5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전3부작으로 완성되었다. 격동의 세월을 이겨 온 엄마의 집념을 주제로 한 자전적인 내용을, 서술자인 ‘나’의 나이와 시대적 관점의 변화에 따라 어머니에 대한 인상을 회고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박완서의 이 소설은 그의 소설 속에 자주 소재가 되고 있는 한국 전쟁이 배경이 된 작품이다. 한국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한국 현대 문학사의 큰 흐름을 지배하고 있음을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작품이 남성 작가에 의해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여류 작가는 그것만으로 돋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의 참혹성, 이데올로기에 의한 인간성의 파멸 등 대부분의 주제와 익히 만나 왔다. 이 작품도 그런 큰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성 특유의 생활감으로 포착한 한국 전쟁의 폐해는 잔잔하면서도 강한 설득력을 지닌 채 전쟁의 실상에 접근하게 한다.
많은 한국 전쟁 소설이 지나친 이념 대립이 강조되거나, 이 이념 대결의 연장선에서 계속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다음 세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박완서의 작품은 조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그의 소설에서는 이념 대결의 갈등이 그렇게 첨예하게 부각되어 있지도 않고, 아픔의 책임을 전쟁으로 돌리는 구호적인 외침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생활 속에서 여전히 배어 있는 그 아픔의 깊숙한 체험을 잔잔히 그려내고 있다.
어머니는 이 소설의 중심인물이다. 어머니는 그 날을 잊지 못한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종교’와 같은 대상이었다. 그 종교가 자신이 목격하는 가운데 무너지는 아픔을 맛보았기에 천추의 한으로 남아 있다. 죽음에 당도한 아들을 부여잡고 처절하게 악귀들과 맞서던 그 날의 한은 이제 자신의 죽음에 당도해 되살아난다. 어머니는 그 날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날의 한은 어머니의 삶 전체를 지배하는 무서운 기억으로 30년 넘게 붙잡아 온 것이다. "내 어머니의 오지에 감춰진 게 선과 평화와 사랑이 아니라 원한과 저주와 미움이었다는 건 정말 너무했다."고 화자는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이 점에서 화자와 어머니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각된다. 여기서 ‘나’는 일상에 매몰되어 버린, 그래서 자신의 세계에만 침잠해 있는 소아적 자아로 그려진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는 여전히 아들의 시대를 한으로 안고 살아온 반면, 화자는 자기 핏줄의 비극을 일상의 평화에 묻어 놓고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것이다. 화자는 결국 어머니의 낙상을 계기로 어머니와 같은 삶의 세계로 회귀하게 된다.
이 소설의 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 생활의 안주로 역사의식이 매몰되는 일상을 비판하고, 역사적 물음과 사회의식에로의 전화를 작가는 기도하는 것이다. 이 소설의 ‘나’와 같은 우리는 바로 30년 전의 아픔을 아득히 잊고 현재의 평화와 풍요 속에 빠져 있다. 그러나 역사적 아픔은 여전히 우리의 삶을 제약하고 있는 깊은 뿌리이며, 우리의 삶의 ‘오지’에 드리우고 있는 한과 같은 것이다. 일상의 평화에서 자칫 잊어버리기 쉬운 역사적 비극을 이제 우리는 되살려야 한다. 세계 유일의 국토 분단국가, 아직도 동족을 적으로 간주해야 하는 우리는 아직도 이 아픔을 말끔히 씻어내지 못하고 ‘투병 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