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 이전에는 불교 문화가 꽃을 피웟고, 이조 시대에는 유교 사상이 극성을 부리다, 해방과 더불어 기독교 문명과 이백년 역사의 미국의 양키즘 문화가 홍수처럼 밀려와 한많은 반도 강산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과 쏘련에 의하여 절반의 해방이 되자, 일제 식민지하에서 도일하여 신문학을 이수한 친일 개화파와 미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교육받은 친미파의 개신교들이 만주 벌판에서 자주 독립을 위하여 활약했던 독립군 출신들과 상해 임시 정부 요인들을 제치고 해방 후에 양키 군정하에서 정부의 요직을 점령하였다.
절반의 해방을 맞아 좌우익이 좌충우돌하는 와중에, 이승만은 용호상박이던 백범 김구 선생과 몽양과 고하의 삼 거물을 암살하고, 양키에 빌붙어 친미 허수아비 정권을 세워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자유당 정권은 반민 특의법을 제정하고도, 칠천명의 친일파들을 처단하기는 커녕 적반하장으로 지도층으로 군림하며 민족 정신을 훼손시켰다.
총의 나라 아메리카를 일본은 쌀의 나라 미[米]국이라 부른 것을 아름다운 미[美]국으로 미화시켜 친미 사대주의를 조성했다.
1950(경인)년에 북한의 금(金) 일성이 목 십팔자 이(李)통을 극하여 남침하였다.
몽진의 도사 이통과 오랄 섹스의 申 성모는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여 국민을 적지에 가둔채 양반들만 피난가는 바람에 사백만명의 동포들이 죽는 동족상쟁이었다.
이통은 몽진의 피난중에도 사사오입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재취임하고, 양키의 잉여 농산물과 구호품으로 국민의 호구지책을 연명했다.
이 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친일파 군경과 조폭 청년단의 야인시대로 권력을 보수하고, 친일 언론으로 선동하며, 개신 엘리트들로 교육과 문화를 창달시켰다.
이 승만은 60년 삼일오 부정 선거를 자행하고, 4월 학생 의거로 권좌에서 하야해, 화와이로 망명하며 자유당 독재 정권을 마감했다.
61년 군사혁명을 일으킨 박통은 친일파답게 정오를 일본과 통일시켜 12시 반으로 변경하고, 파월용사 봉급의 90퍼센트를 챙겨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수출 지상주의를 앞장세워 일본 폐기물 처리산업 중화학공업을 한반도에 육성하는 대기업 위주인 재벌 공화국의 성장을 주도했다. 72년 남북 공동선언으로 각기 독재의 철옹성을 구축하고, 8월에 사채를 동결하고, 시월 유신 선포로 철권통치를 감행했다.
유신 정권은 저임금 장시간 근로와 고금리 고인플레로 고도 성장을 도모하고, 파월 용사의 피와 구로 공단 여공들의 눈물과 중동 사막의 노무자들의 땀을 희생양을 삼아 한강의 기적을 이룬 장미빛 공화국을 건설했다.
79(기미)년 핵이 무궁화 꽃을 피운 김재규와 안하무인 차지철의 이전투구에 휘말린 시비육사태로 십팔년간의 유신 군사 독재는 종지부를 찍었다.
79년 전통 일당은 시비시비사태로 무소불위의 보안사와 정보부를 장악하고, 경신년 5월에 총과 군화로 피보라치는 광주사태를 유발시키고, 오리무중의 미궁으로 삼김을 박살내며 정권을 장악했다.
백주에 설치는 백설공주와 영자의 큰 손이딱지 어음으로 개판을 치고, 명성 부동산 투기와 영동 사채파동의 장명동 3대 대형 금융사태로 누란지세를 초래하였다.
세계 2차 오일 쇼크로 폭등했던 유가가 급락하며,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의 삼저현상으로 국가의 풍전등화는 모면했으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이십년 이상 후퇴시킨 깡통 땡전이었다. 87년에 유월 시민 항쟁으로 일해궁의 수렴첨정이 일장춘몽이 되고, 청남대의 남가일몽도 백담사의 도로무공이엇다.
87년 6월 시민 항쟁에 굴복한 노통은 육이구 선언과 정보 공작과 견원지간 양김의 이전투구로 전통의 바톤을 이어받아 옥좌에 앉아 군사정권을 계승하였다.
보통 아구통으로 수서게이트와 페놀 낙동강 파문을 일으키며, 재벌들과 겹사돈으로 황금성을 구축헸고, 해외 여행과 부동산 취득 자유화로 외화가 해외로 물 새기 시작했다.
노통은 국민주란 주식 투기를 농민과 서민에 맛보여 시비시비 부양책으로 깡통구좌를 만들어 민중을 빚쟁이로 전락시켰다. 양김과 삼당 야합으로 지역 감정의 골만 남기고,임신년 거산에 대권을 넘김으로 30년 군사문화를 종식했다.
92년 거산은 3당 야합으로 견원지간 대중을 제치고 한 발 먼저 대망의 권좌에 등극했다. 거산은 노통과 전통을 역사 바로 세우기로 구금하고, 후광은 감히 생각치도 못할 감불생심의 철통 하나회를 과감하게 박살냈다.
군사 문화의 잔재 졸속공사가 구포 열차 전복사고, 목포 비행기 추락, 격포 여객선 침몰의 육해공 대형사고와 부실공사의 유산 성수대교 붕괴, 마포 가스폭발, 반포 삼풍 백화점 붕괴의 연속 대형 사고로 얼룩진 문민정부였다.
노회한 후광은 전임 골통들의 과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현명한 대통이 못되고, 유유상종의 전통을 답습하여 두 아들을 영창에 보내고, 임기 말에 대구 지하철 방화 대참사로 마감하엿다. 서호 엠케이파가 설치며 휘호아래 후광을 발휘하던 김통이 기진맥진하여 동교동으로 회귀하며, 삼십년의 삼김시대의 막을 내리면서 유구무언의 김빠진 김통이었다.
지역 갈등의 원흉 삼김정치가 마감되며, 임오(02)년 대선시 월드컵의 붉은 악마들의 함성과 여중생 압사 추모 촛불 행렬과 노사모의 노란 물결의 신세대들이 기존 수구파 한나라당과 재계와 족벌 언론 조중동의 강력한 힘을 제치고 개혁 세력들이 120년 전의 임오군란과는 반대 현상으로 개혁 정권 창출에 승리 했다.
SK그룹이 주주 자본주의의 회계 투명화로 분식회계가 노출되며 거대한 비자금이 폭로되며 한나라당의 차떼기 비자금 파문으로 엉망진창이 된 수구파들이 갑신년 총선에서 패배가 예상되며, 보수주의 정치꾼들이 친일과 친미의 보수 언론과 유착하여 쿠데타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키는 갑신 정변을 일으켰다.
국민의 정부시 내수 위주의 경제 활성화로 인하여 카드 대란이 일어 나고, 무모한 외자 유치로 인한 투기 자본이 산업 경제를 도외시하며, 4백조 이상의 부동자금이 산업체에 투자하지 않고, 투기성 자금으로 맴돌며, 해외로 빠지며 내수 경기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반도체와 자동차와 조선의 수출 호황에도 불구하고 내수 경제가 장기 불황의 늪에서 헤매는 현상은 노동 유연성과 주주 자본주의인 신자유주의가 주도하면서 제조업을 천시하게 되고, 향락적 산업만 발달하며, 고용과 투자의 불균형이 불황을 초래하였다.
한국의 역사가 일부 소인배 역사가들의 농간에 의해 왜곡됨으로 인해 친일파들이 현재까지 득세하고, 군사 독재에 기생했던 엘리트들이 정계와 언론계와 관계를 장악하여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를 자행함으로 관료들이 모랄 헤저드에 빠져 국가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
참여 정부의 맹점은 기득권을 가진 보수의 강력한 반발도 문제지만, 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멤버들이 거의 운동권 출신이나, 대학 교수들이라 경륜이 부족한 것이 흠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무모한 외자 유치와 비능률적 행정을 담당하던 경제 관료들이 구태의연하게 투자와 투기 자본을 구별하지 않고, 무분별한 경제 정책을 주관하는데 문제가 있다.
역사란 통치자와 나라간의 전쟁과 종교의 사회적 대사건을 후세 역사학자들이 승자의 입장과 시각과 관점에서 기술한 이야기다. 역사가 신화나 설화처럼 미화되고 왜곡되면 국민의 가치관이 호도되어 시시비비의 지혜가 상실되어 정의가 사라지게 된다.
21세기는 격변하는 정보화 시대로 민생 경제 안정이 우선이며, 과거의 보수적 사고로 정치를 할 수 없고, 일부 언론의 농간에 민중들이 농락당하지 않는다. 부정과 부패와 부조리의 패거리 정치꾼들은 이제는 컴맹으로 무용지물이 되어 뒤로 은퇴하고, 새로운 세대가 도덕성을 확립하여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