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를 닮은 시 허 혜 정 (1966~ ) 어디 옛 미인만 그렇겠는가 당신들은 내 문턱을 호기로 밟았다고 하지만 한 서린 소리를 즐기던 가야금이 그대들을 위함이라 믿지만 복건을 쓴 유학자든 각대를 띤 벼슬아치든 내로라하는 호걸이든 나의 궁상각치우를 고르고자 함이 아니었던가 죽어도 당신들은 한 푼 얹어주었기에 내 살림이 목화솜마냥 확 피어올랐다고 믿지만 풀 같은 데 엮어놓은 가볍고 얇은 거미집은 왕후장상을 부러워하는 법이 없다 당신들은 대대손손 선연한 낙관을 자랑하지만 붉은 공단치마를 활짝 벗어 화초도를 치고 흠뻑 먹물을 적셔 제 흥만 따라가던 족제비털 붓은 당신들의 필법을 배우려 한 적이 없다 모든 나들이를 취소하고 빗장을 걸어잠그는 시간 학이든 호랑이든 아닌 건 아닌 게지 되돌려보낸 서찰 혈통과 내력을 캐묻던 그대들이 나는 궁금하지 않다 천생 귀머거리 각시처럼 고개 갸웃거리다 아는 체하는 순간 기가 막히는 듯 웃는 나는 길섶에서 눈맞춤한 눈부신 하늘, 코끝을 스치는 바람보다 당신들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곰방대를 물고 대청마루에 누워 바라보면 옥졸의 방망이도 능라의 방석도 소매 넓은 장삼도 구천 하늘 온통 희게 떠도는 춤사위일 뿐인데 팔도유람이 어찌 그대들만의 것인가 서늘한 흙무덤이 두 눈을 덮기 전에 죽음에 시치미를 떼고 멀리 나가 노는 아이처럼 곰팡이가 퍼렇게 슨 족자 속에 표구되어서도 나는 누구의 계집이었던 적이 없다 ─ 시집 《적들을 위한 서정시》(문학세계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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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미인도를 보면서 그 미인을 그저 바라만 보는 각도에서 그냥 그림이라고 보는것이
아마도 편할지도 모릅니다 그림의 풍경속에서 시인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