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때국놈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어머님께서도 간혹 쓰시던 말인데, 때국놈이 뭐냐 하면 바로 중국인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때국놈에는 두가지 뜻이 있지요. 하나는 때가 많은 더러운 놈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인은 목욕을 자주하는데, 송나라 사람들이 목욕을 하지 않아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고려도경 23권, 잡속 2편 澣濯) 여기에서 유래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은 더럽다는 표현을 많이 합니다. 물론 70년대 중국인들이 하는 중국집에 가면 정말 지저분했습니다. 어찌되었든 때국놈에는 이런 부정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대국놈이란 뜻이지요. 중국이 크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냥 인정하기는 싫고 그래서 때국놈이라고 비꼬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일반 민중들의 중국에 대한 솔찍한 표현입니다. 임진왜란때 일본군은 가래빗, 명군은 참빗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일본군이 우리를 약탈한 것 보다 일본군을 몰아내겠다고 와준 원군인 명군이 실제로는 우리를 더 괴롭혔다는 표현이지요. 민중들은 명나라에 대한 감정이 매우 나빴습니다.
그런데, 양반들은 어떠했습니까. 자신들이 왜군에게 비록 도망다녔지만, 결국 나라를 구한 것은 자기들이 외교적 노력으로 불러온 명군때문이 아니냐고 양반들은 의병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짓밟았지요.
그래서 우리를 명나라에게 우리를 다시 살려준 은혜은 재조지은을 입었다면서 중국을 한없이 높혔습니다.
민중들의 의식과 양반들의 의식은 이처럼 다릅니다. 삼국사기에서도 마찬가지겠지요. 유학자인 김부식이 조공을 했다는 표현을 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 다시금 좀 더 강한 사대적 표현으로 수정이 가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어찌되었든 삼국사기는 중국을 높이고, 삼국을 낮추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자. 기록을 쓴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삼국시대에 고구려인들은 마치 중국을 높이고 두려워한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 고구려인들은 전혀 수, 당 등을 천하의 중심국이라고 존중하지 않았으며, 도리어 신나게 싸워서 혼을 내주었습니다.
사서를 어느 사람의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역사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사서가 어떻게 쓰였졌고, 어디까지가 유효한 자료인지에 대한 분석을 하는 사료해석학이 기본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사서를 볼 때 상대주의적 입장에 서서 사료를 집필한 사람의 입장만이 아니라, 사서에 서술의 대상체로 쓰여진 사람의 입장에 서서 다시금 사서를 해석하는 눈이 필요합니다.
조선시대 그렇게 사대주의가 판치는 시대였지만, 민중들은 여전히 중국인들을 때국놈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