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불날) 입동 6일째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 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 <영성 수련의 기본> 중에서
아침 산책길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깨를 움츠리고 걷는데, 우성이는 외투를 들고 씩씩하게 바람을 가르며 가고 있다. 개울가 옆 찔레 열매가 빨갛게 물든 것이 내 볼을 꼬집는 것 같다. 그래 그렇게 여물어다오. 한 해 살림을 잘도 마무리하는구나. 나도 너를 닮았으면 좋겠다.
오늘 예원이는 두툼한 외투를 입고 와서는 덥다고 한다. 예림이는 저번 귀가 주에 겨울 옷가지를 챙겨오지 못했다며, 이번에는 모자, 목도리, 장갑, 수면양말.....을 꼭 가져오겠단다. 가져오는 김에 내복도 챙겨오라 했더니 시큰둥이다.
오전배움 열매 말과글 첫 시간이다. 5주 주기집중 수업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관옥스승님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떤 아이를 위해 들려준 것인데 그 아이는 자기와 상관없다는 표정이다. 수업시간 내내 그 아이는 힘들어했다.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배움터에 처음 왔을 때 만난 아이, 상사 원두막에서 그 아이가 한 이야기를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 밖에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오후에는 고구마를 다듬어서 짧은 편지와 함께 스승님들과 한알 식구들에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