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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과 함께 읽는 소설 여행 14
10. 잠시 눕는 풀
김 원 일
“시우야, 속력을 더 내봐. 쏜살같이, 지구 끝까지, 어디든 좀 더 살맛나는 곳까지 가보자꾸나.”
뒤에 앉은 김 여사가 빨던 담배를 바닥에다 비벼 끄며 말했다. 혀가 잘 놀지를 않는지 발음이 탁 풀어졌다. 서울을 출발하여 신갈 인터체인지를 지날 동안 김 여사는 이미 샴페인 반병을 마셔 버린 셈이었다. 잔도 없이 병째 꼬르락꼬르락 들이켜더니 어느새 정신이 해롱해롱하는 모양이었다.
“사모님, 무립니다. 여기서 더 속력을 내면 바퀴가 지면에서 떠요, 더더구나 지금이 석양 무렵인데.”
“글쎄 이 녀석아, 뛰든 날든 내 시키는 대로만 해보라니깐 그래. 고속도로란 게 스피드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냐.”
“허 참, 사모님도 스피드도 정도 문제 아니겠어요. 거기다 아직 제 운전 경험이 쥐꼬리만 한데 비행기처럼 날쌔게만 달리라니. 그럼 교통사고 나기가 십상인걸요.”
“네놈도 이제 목구멍에 기름기가 돌게 되니 말꼬리에 이유 달길 좋아하는구나. 그래 시우 네놈까지도 날 무시하겠다 이거냐?”
김 여사는 담배 한 개비를 다시 입술에 끼우며 쏘아붙였다. 이미 눈동자가 탁 풀어져 있었고 퍼런 눈 화장 자국이 땀 때문인지 눈 꼬리 아래까지 흘러내려와 있었다.
“무시하다니요. 사모님, 정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사모님 덕분에 그저 이렇게 출세를 했는데 어찌 감히 은혜도 모르고 제가…….”
시우의 목소리가 금세 떨려 나왔다. 그리고 표정이 경직해 버린다. 김 여사 쪽에서는 별 부담 없이 내뱉은 말이지만 시우 쪽으로는 두렵게 받아들여지는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구월 초순, 늦더위가 아직 기승을 부리고 있는 황혼 무렵, 놀이 아름다웠다.
도로 주위의 풍경도 신선하고 한가로웠다. 올망졸망한 야산 아래 담이며 지붕을 개량한 단정한 마을이 해거름녘 놀빛 아래 그림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시골도 많이 달라졌군. 특히 고속도로 주변은 말야.”
김 여사가 하품을 하며 느슨하게 말했다.
“정말 그래요, 사모님. 고속도로 주변만 달라진 게 아냐요. 이젠 농촌도 살만큼 됐대요.”
시우도 창밖을 힐끔 보았다. 마을에는 파르스름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창 저녁 준비가 분망한 모양이었다. 시우는 고향인 용인군 백암리를 떠나던 7년 전이 생각났다. 그때 시우는 고향에서 일 년에 벼 열 두 섬을 받기로 하고 어느 큰 농가에서 꼴머슴을 살고 있었다. 쇠죽도 쑤고 거름도 져 나르고 힘겨운 쟁기질까지 했다. 새벽별이 스러질 때부터 밤이 이슥하도록 쉬지 않고 일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은 동네방네 가위를 짤랑거리고 다니며 엿장수를 하던 아버지를 신장염으로 잃고 난 뒤부터였다. 그 시절, 어머님은 과수원 품삯을 팔아 나이어린 두 여동생과 근근이 입을 살고 있었다. 그럴 때 가을, 군에 간 형이 제대를 하고 돌아오자, 막벌이를 해서 먹고 살더라도 지금 처지보다는 나을 테니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하자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가진 것 없고 오직 노동력만이 생활 밑천인 사람들에게는 그래도 서울이 훨씬 일터가 많다는 것이었다.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시우네 가족은 보퉁이 몇 개로 등짐을 지고 고향을 떠났다. 그래서 다섯 식구가 처음 짐을 푼 곳이 천호동 밖 거여동의 바라크촌이었다. 월 1천원의 사글세 단칸방에 생활의 짐을 풀고 형은 공사판으로, 어머니는 가발 공장으로, 그리고 시우는 우동집 배달원으로 각각 일터를 마련했다. 형이 월 1만1천원, 시우가 먹고 자고 2천원, 그리고 어머니가 3천원, 이렇게 하여 한 달 총수입이 2만원이 채 못 되는 돈으로 다섯 식구가 세 끼니를 겨우 해결했고, 시우의 두 누이는 초등학교에 다닐 수가 있었다.
지금쯤 백암리도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시우는 생각했다. 농촌의 재건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열을 올리는 이즈음, 도내 제일의 축산군(畜産郡)으로 알려진 용인이 7년 전과 같을 리는 없으리라. 가가호호 가축 기르기에 열을 올리고, 소득 높은 비닐 온상 재배와 유실수(有實樹) 가꾸기에도 분망하겠다.
시우는 조심스럽게 먼저 말문을 열었다.
“사모님, 오늘 매우 언짢은 일이 계신 모양이군요?”
그러자 김 여사는 담배 연기를 날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상이 어디 사람 나고 돈 났나. 누군 그만한 재산쯤 못 되는 줄 알고 고따위 입방아를 찧어. 그래, 십 캐럿 다이어목걸이를 누군 못 구해 안 차는 줄 알구 입이 몸살 나도록 나발통을 불구 있어. 한 달만 기다려라. 홍콩서 박상무가 오면 내 본때를 보여주고 말 테니.”
시우는 백미러를 통해 김 여사를 슬쩍 곁눈질했다. 술기운과 흥분이 얼굴을 촘촘히 적시고 있었다. 오십을 갓 넘긴 나이라 뺨이며 턱에 군살이 붙기 시작했으나 공들이는 화장 덕분인지 살결은 윤이 나게 매끄러웠다. 그런 김 여사는 눈을 거슴츠레 뜨고 시야가 툭 트인 앞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있는 품이 낮에 있었던 기분을 잡친 기억을 자꾸 반추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 앞쪽, 고속버스 한 대가 회색의 어둠 속에 선명히 드러났다. 깜박깜박, 아무 추월해 버리고 싶은 차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김 여사는 시우가 들으란 듯 행복한 한탄을 또 늘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은 돈 잘 벌고, 외아들은 효자구, 그래도 그래도 만사가 시원칠 않구나. 멀리, 멀리 떠나버렸음. 아주 먼 곳으로 떠나버렸음. 달 정복 소식이 벌써 언젠데 왜 아직 달나라엔 갈 수가 없을까.”
“사모님, 부사장님은 미국서 공부를 하고 오셨다면서요?”
시우가 사모님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그녀의 외야들을 두고 뻔히 알고 있는 대답을 다시 물었다. 이제 서른 전후의 사모님의 아들을 그도 두어 번 본적이 있었다.
“그래. 5년 동안 경영학 공부를 했단다. 내년쯤 박사학위를 받게 될 거야. 대학교에서들 교수로 나와 달라고 서로 당기지만 이제 곧 회사를 혼자 운영해야 되는데, 어디 그까짓 교수가 문제냐.”
“네, 네. 그 말씀이 옳습니다. 회장님이 은퇴하시면 곧 사장님이 되실 텐데 그까짓 꾀죄죄한 교수보다야 사장이 훨씬 낫지요.”
시우는 사모님의 말에 장단을 맞추었다. 그러며, 부사장님은 부모를 잘 만나 정말 행복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앞으로 만약 부사장님 자가용의 운전수가 될 수만 있다면 그 이상 출세는 바랄 필요가 없다고, 아울러 생각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선 사모님한테 잘 보여야 하는데, 사모님이 발을 씻어 달라면 씻어 드리고, 발바닥을 핥아 달라면 핥아 드리는 충성스런 종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굳게 다짐했다.
“시우야, 저기 저 고속버스 보이지? 저걸 따라잡아 봐. 홱 앞질러보란 말이야. 그럼 좀 속이 시원하겠구나.”
김 여사의 말에 시우는 시원스럽게 대답을 하곤, 액셀러레이터를 서서히 눌러 밟았다. 속도계의 바늘이 백 이십으로 기울어졌다. 김 여사는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는 쿨러가 있어 시원한데도 창문을 조금 내렸다. 그러자 차체에 가벼운 진동이 왔다. 고속도로에선 창을 열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치우는 그냥 차를 몰았다. 김 여사의 귀걸이가 차체의 진동과 더불어 풍경(風磬)처럼 흔들렸다. 그와 더불어 김 여사의 화장 냄새가 시우의 코에 간지럽게 넘쳐왔다. 김 여사는 눈을 감았다. 스피드가 주는 잔잔한 쾌락이 김 여사의 붉은 입술에 떠돌기 시작했다. 그것이 홍조 띤 뺨으로, 눈 가장자리로 물감처럼 번졌다. 사모님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시는 걸까. 시우는 공연히 기분이 좋아졌다. 갑자기 자신도 지구의 끝이 있다면 그곳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면 차는 무한대의 공간으로 마치 유영(遊泳)을 하듯 떠 있을 것만 같았다. 왜 그런 마음이 생기게 되었는지 몰랐다. 차 속에 사모님이 있든 없든, 아니 없는 상태에서 그렇게 떠나고 싶었다. 그때 김 여사가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블루스나 한 곡 틀어보렴, 왠지 쓸쓸하구나. 왜 이렇게 허전하고 외로울까. 꼭 소녀처럼 마음이 들뜨고 서글퍼질까.”
시우는 카스테레오의 테이프를 넣었다. 누가 불렀는가, 곧 여가수의 이름이 떠오를 것 같은 블루스 한 곡이 경음악으로 차 안을 잔잔히 채웠다. 김 여사는 샴페인 뚜껑을 열고 다시 한 모금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넌지시 물었다.
“시우야, 너 몇 살이니?”
“네, 이제 스물 하납니다.”
“그럼 애인이 있니?”
“그런 건 아직 몰라요.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시우는 뺨이 확 붉어졌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연히, 정말 공연히 사모님은 날 당황하게 하네. 흥분과 더불어 투정 같은 짜증이 가슴을 흔들었다. 사실 시우가 애인이니 사랑이니 하는 나부랭이를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우동집 배달원에서 맥주홀 화장실 보이로 거기서 신발 정돈 당번으로 있다가, 계군들과 함께 그곳에 들른 김 여사의 눈에 시우의 소녀처럼 귀여운 얼굴이 호감을 사 김 여사댁 대저택의 청소부로 발탁된 지가 2년 전이었다. 그래서 청소부에서 값비싼 개 세 마리의 운동 및 목욕 당번으로 승격되었을 때 김 여사의 호의로 운전 기술을 배우게 된 것이 일 년 전, 그러다 6개월 전 김 여사의 운전수로 전격적인 예우를 받게 되기까지, 시우는 7년 전 꼴머슴에 비추어 파격적인 출세 가도를 밟아온 셈이었다. 그동안 시우에게는 연애니 사랑이니 하는 따위가 비집고 들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상당히 달려왔는데 평택은 지났겠지?”
김 여사가 물었다.
“네, 이제 곧 천안 인터체인지가 나옵니다.”
“그럼 그곳으로. 한 시간만 쉬었다 갈 테니깐.”
시우는 차의 속력을 늦추었다. 그는 김 여사를 모시고 천안에 한 번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두 달 전으로 회장님이 사업 관계 차 일본에 갔을 때였다. 그리고 온양은 두 번이나 가본 적이 있었다. 김 여사는 오늘처럼 마음이 울적할 때나, 아니면 사장님이 서울을 떠나 지방이나 외국으로 출장 중일 때 이런 식의 드라이브를 즐겼던 것이다. 천안, 온양, 조치원, 이 세 곳을 기점으로 김 여사는 한 시간정도 춤을 추다간 서울로 돌아오곤 했다. 낯선 남자와 손을 맞잡고 은밀하게 얼마간을 즐긴 후 젊고 발랄한 모습으로 서울로 돌아오곤 하는 비밀을 시우는 잘 보장해 주는 것이었다.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것이 운전 기술보다 더욱 중요함을 시우는 잠자지 않는 시간 동안 잠시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집안의 비밀이든, 사모님 개인의 비밀이든 그것은 자기만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바로 앞날의 성공과 직결된다고 그는 철저히 믿고 있었던 것이다.
천안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오자 휘얼미터가 제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우는 주유소로 차를 몰아넣었다. 김 여사도 차에서 내렸다.
급유를 마치고 시우가 차에 오르려 하자 김 여사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손뼉을 탁 치곤,
“시우야, 나와 자리를 좀 바꿔 앉자.” 하고 말했다. 자기가 운전을 해서 천안 시내로 들어가겠다는 거였다.
김 여사는 여름이 들고부터 아침나절을 이용하여 여의도 광장에서 한 달 정도 시우의 지도 아래 운전 연습을 익혀 왔었다. 모임에 나들이를 할 때야, 체면도 있고 하여 손수 운전석에 앉아 차를 몰지 않겠지만, 때때로 홀가분히 혼자 차를 몰고 떠나고 싶은 심정이 될 때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이 김 여사의 대저택 관리사무장이며 김 여사의 비서격인 이 선생이 뒤꽁무니로 교섭하여 운전면허증까지 타내게 되자 연습에 부쩍 열이 붙어 근간에는 꽤나 기술의 진전을 보여 온 터였다. 그래서 이른 새벽의 조용한 가로는 김 여사가 손수 운전하여 여의도 광장까지 지나곤 했었다. 한적한 강변도로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모는 것을 숙련된 운전기술이라고 말할 수야 없었으나 차를 김 여사 자신이 직접 운전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 만으로서도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된 초등학교 생도처럼 기분이 들뜨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다른 때 같으면 시우가 운전석을 김 여사에게 넘겨줄 수 있겠지만, 오늘 저녁만은 경우가 달랐다. 왜냐하면 김 여사가 꽤나 취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우는 그것을 핑계 삼아,
“사모님, 오늘은 그만 두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하고 어물어물 거절했다. 그러자 김 여사는 버럭 역정을 내었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깐 넌 걱정 마. 천안 시내로 접어들면 운전대를 다시 네게 넘겨주면 될 거 아냐.”
김 여사는 부득부득 우겨가며 운전석 도어를 열더니 굵은 몸을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취하신 것 같은데 위험합니다. 아무리 능숙하다 하더라도 취중에 운전하시면 실수하기가 십상인걸요.”
그러자 김 여사는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며 소리쳤다.
“너 그렇게 버티고 서서 따지기냐. 지난번 운전수 녀석 꼴이 돼야 비로소 후회를 하겠어? 그땐 반성을 하여도 이미 때가 늦다는 걸 몰라?”
김 여사의 고함에 시우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해고당한 전임자의 얼굴이 후딱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운전사 윤 기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해고되기 전날 밤 차고에서 경비원으로부터 무수한 손찌검을 당하던 윤 기사의 으깨진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오직 그따위 아가릴 다시 놀렸다간 혀가 끊기는 줄 알아라, 감히 이 집이 어떤 집이라고 함부로 그런 말을 흘리고 다녀, 너 같은 목숨 하난 감쪽같이 매장시킬 수 있단 말이야 하고 소리치던 관리 사무장 이 선생의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나이 서른 대여섯쯤 된 이 선생이란 사람은 명실 공히 김 여사의 오른팔 역할을 맡은 자로 모든 고용인의 인사권을 쥐고 있었다. 스물여덟 총각인 윤 기사는 정원사 할아버지와 경비원 두 명과 자기와 함께 문간 아래채에서 같이 거처를 하고 있었는데, 퉁퉁 부은 얼굴로 그 이튿날 아침에 해고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윤 기사는 트렁크 하나를 들고 홀홀히 떠나갔다. 정원사 할아버지는, 그래도 살 길 터준다고 한밑천은 줬을 거야, 하고 시우에게 소곤소곤 말해 주는 것으로써 윤 기사에 대한 이야기는 김 여사의 집에서 누구 하나 입에 담지 않게 되었다.
시우는 하는 수 없이 운전사 옆 좌석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김 여사의 억지 고집을 자기가 한 번도 만류시킨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는 천천히 주유소를 떠났다. 시우가 김 여사와 승강이를 할 동안 멀찌감치 서서 지켜보고 있던 급유를 마친 청년이 떠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김 여사는 차츰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이제 어둠은 대기를 완전히 흡수해 버려 라이트가 비추는 길의 양쪽 들판은 깜깜했다. 시우가 보니 속도계의 바늘이 육십에 머물러 있었다. 통행인도 차량도 뜸한 넓은 길을 코티나 뉴 슈퍼 디럭스는 잘 달려 나갔다. 핸들도 고정된 상태에 있었고 김 여사의 얼굴도 엄숙하게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시우는 차츰 안심하기 시작했다. 저 정도라면 사고야 없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얼핏 시우의 눈에 김 여사의 얼굴이 화가 난 듯 비쳤다.
“사모님, 죄송합니다. 이렇게 잘 운전하실 줄 미처 모르고……제 말이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김 여사의 미소 띤 얼굴이 시우 쪽을 보더니 찡긋 윙크를 했다.
“어때, 이쯤이면 나도 일류지?”
“네, 네. 저보다도 훨씬 나은뎁쇼. 운전하시는 게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천안 시내의 불빛이 차츰 가까이 보이고 양 곁을 주택들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우는, 이제 그만 하시죠 하고 말하려 할 때, 김 여사가 무엇 때문인지 쿡쿡 안으로 웃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기름진 목소리로 시우에게 물었다.
“너 보자 하니 아직 순진한 데가 있구나. 가난뱅이로 자란 애들을 보면 닳아빠진 차돌처럼 손톱 들어갈 데가 없는데, 시우 넌 그렇지 않아.”
“……”
“내가 너 춤 배워 줄까?”
그때였다. 김 여사가 시우를 돌아보며 눈동자 속에 담뿍 웃음을 띠울 그때였다.
오십 미터쯤 앞쪽, 왼쪽 골목에서 누군가가 달려 나와 한길을 건너려했다. 아기를 업고 큰 함지박을 머리에 인 아낙네였다. 그렇게 되자 김 여사의 얼굴이 노랗게 질리고 차체가 걷잡을 수 없게 질서를 잃었다. 순간, 아낙네의 옆모습이 차 앞으로 급속히 확대되어 왔다. 시우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김 여사의 발등을 밟으며 브레이크를 눌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아낙네의 비명이 날카롭게 찢어졌다. 김 여사가 엉겁결에 핸들을 꺾었다. 그러자 차는 오른쪽 가로수를 박고 말았다. 그것은 실로 순간적이었다. 시우의 눈앞에 번쩍 불이 보였다. 김 여사가 신음을 쏟으며 운전대에 머리를 떨어뜨렸다. 시우는 정신없이 운전수 쪽 도어를 열고 김 여사를 차 밖으로 밀어 내었다. 가물가물 흐려지는 정신으로 그는 중얼거렸다. 병원으로, 병원으로 사모님을 모셔야 할 텐데, 병원이 어디 있나. 그러나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김 여사 위에 시우도 겹쳐 떨어지고 말았다. 옆구리 께에 힘찬 통증이 숨길을 콱 막자 시우도 그만 정신을 잃었다.
아슴아슴 의식이 깨어나고 깜깜하던 눈앞이 희부염히 살아나자, 시우는 비로소 자기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았음을 알았다. 그와 더불어 코끝에 비린내 같기도 하고 소독내 같기도 한 역한 냄새가 흠씬 묻어 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여기가 어딜까 하고 단절된 토막토막의 생각을 연결시키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음, 이제 정신이 드나보군, 나야 이 선생이야, 내 얼굴이 보이나?”
시우는 가늘게 눈을 뜨고 초점을 맞추었다. 물속처럼 어릿어릿하게 갈색 알의 금테안경을 낀 이 선생의 근심 띤 표정이 들어왔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흰 벽면과 흰 천장도, 그리고 좀 높게 떠 누워 있는 듯한 자신도 느껴졌다. 머리는 온통 붕대에 감겨 있고 왼쪽 옆구리에 뜨끔뜨끔 간헐적인 통증이 왔다. 링거 병이 높다랗게 달려 있고 거기서 흘러내린 줄이 자기의 한쪽 팔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제야 시우는 지금 이곳이 병원이라고 직감했다. 그는 다시 눈을 감으며 달싹달싹 입술을 놀려 물었다.
“사모님은 무사하신지요, 어떻게 되었어요?”
그러자 이 선생이, 시우의 눈뜨기만을 기다렸고 눈을 뜨면 그 말을 뱉기 위해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조심스럽게, 그러나 단호히 말했다.
“자네 운전 실수로 문제가 크게 되었어. 사모님이 다치신 것은 물론, 행인 한 명이 죽고, 한 명이 중태에 빠졌단 말야.”
시우는 그 말에 입술을 부르르 떨며,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이 선생을 쳐다보며 힘들여 말했다.
“사모님이 취중에 무리하게 차를 모셔서……모든 게 운전수인 제 불찰이긴 하지만요.”
시우는 말을 끊었다. 눈앞을 가로막던 아낙네의 얼굴이 떠올랐다. 밑바닥 생활만 두더지처럼 후비고 다녀 검게 찌든 살색, 그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지더니 일순에 쏟아놓던 경악의 단말마. 시우는 괴롭게 얼굴을 찡그리며 금세 울먹이기 시작했다. 아낙네의 가슴 위로, 그네의 등에 업힌 아기의 연한 두개골 위를 그대로 타넘는 육중한 바퀴 뒤로 분수처럼 터지는 피 뿌림이 그의 감은 눈앞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두려움 때문에 시우가 푸들푸들 입술을 떨고 있을 때, 이 선생의 노기 띤 목소리가 그의 귀를 후벼 팠다.
“야, 넌 뭐 혓바닥을 그렇게 놀리고 있어. 병석에 있다고 내가 무리하게 자극을 주잖으려 해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구나. 그래, 네놈이 운전을 하잖았담 귀신이 차를 몰았단 말인가? 바퀴가 저절로 굴러가 사람을 치었어?”
이 선생의 말에 시우는 드디어 번쩍 정신이 들었다. 이 선생의 조금 전 말은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어, 자기가 운전사니 으레 차를 몰지 않았겠느냐는 정도로 넘겨서 흘려듣고 말았는데, 이 선생이 다시 한 번 운전의 책임을 따지고 들자 시우는 목울대를 들먹여 가며 강하게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이 선생님이 잘못 아신 겁니다. 주유소에서 급유를 한 후부터 제가 운전을 하잖았어요. 이건 정말입니다. 사모님이 직접 운전을 해보시겠다고 하시며……”
“시끄러! 이 자식, 보자 하니 아주 맹랑한 놈이구나. 네 말대로라면 사모님이 범인인 셈이구나. 네놈을 운전수로 고용을 했는데 사모님이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스스로 차를 몰게 됐어? 운전이 서툴러 실수를 했다고 사과를 하면 좋게 봐주려 했더니 안 되겠어. 몇 년 감옥을 살려야겠어!”
이 선생은 마치 취조관처럼 위협적으로 말했다. 시우는 너무나 엄청난 이 선생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갑자기 빠개질 듯 아파오고 무언가가 목구멍을 막아 말문을 봉했다. 그와 더불어 사지에 힘이 쭉 바지고 정신이 흐려왔다. 이 상태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무덤 속의 깜깜한 세계로 가라앉는 게 아닌가 하고 시우는 뇌아렸다. 이래선 안 된다. 이렇게 침묵하며 가만있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시우의 의식은 혼미하게 흐려만 왔다.
그때,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리고 이 선생이 채 대답도 하기 전에 벌컥 문이 열렸다. 젊은 카메라맨 한 명이 성큼 입원실로 들어섰다.
“무례하게, 당신은 뭐요?”
이 선생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상대방에게 말했다. 이 선생은 사진을 못 찍게 하겠다는 듯 시우의 침대 앞을 막아섰다.
“아, 이거 죄송합니다. ○○신문사 천안 지국의 박 기잡니다. 사진을 한 장 찍을까 해서요.”
“엿장수 마음대로?”
이 선생의 시비조의 이 말에 박 기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참 상대를 뻔히 쳐다보더니,
“엿장수 마음대로라니요? 물론 제 마음대로지요. 교통사고를 보도하려는 기자로서의 책임감……”
하고 말을 꺼내자, 이 선생은 그 말을 냉정하게 문질러 버리며 쏘아붙였다.
“기자의 책임감이고 나발이고 안 되오. 이 시우 군은 보시다시피 아직 인사불성입니다. 이마를 일곱 바늘이나 꿰매고, 갈비뼈 두 개가 골절이 됐단 말이오. 의사를 제외하고는 누구를 막론하고 출입금집니다. 팻말이 문 앞에 붙어 있는 걸 못 봤소? 사건 조사차 나와 있는 경찰관도 아직 면회를 못하고 있는 상태란 걸 모르오?”
이 선생의 등등한 기세에 박 기자는 좀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그렇겠지요. 그러나 저는 사건 전말을 규명하러 온 게 아니라 그저 사진 한 장을 찍어 갈려는 겁니다. 운전사 사진을 신문에 내는 게 낫지, 죽은 아기 시체나 중상을 입은 피의자 사진을 신문에 낸다는 게 너무 상식적이잖아요?”
“상식? 상식을 무시하는 걸보니 아직 병아리 기자로군 그래. 그럼 잘 됐구려. 뭐 사진 따위를 찍을 게 아니라 자, 나하고 상식적인 얘기나 좀 합시다. 목구멍에 기름기가 도는 얘기니깐.”
이 선생은 긴장을 풀어 껄껄 웃으며 박 기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같이 문 밖으로 나갔다.
시우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밤 열 시경이었다. 의사가 주사를 놓기 위해 그의 한 쪽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시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굴이 가무잡잡한 키가 작은 간호원이 무심한 얼굴로 그의 팔에 약솜을 문지르고 있었고, 그 곁에 의사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언제 왔는지 어머니와 형의 얼굴이 보였다. 헐렁한 싸구려 블라우스를 입은 어머니는 손등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고, 공사판에서 자갈 짐을 져 나르다 그대로 달려왔는지 흙투성이 작업복 차림의 종우 형은 목을 길게 뽑아, 주사바늘이 꽂히려는 아우의 팔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시우는 젖은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그래, 그래, 시우야. 크게 다치지는 않아 다행이다만 이 일을 어쩔꼬. 어쩌다 이런 큰 변을 저질렀을꼬…….”
어머니도 울음을 터뜨리려 했다. 그러자 의사가 뒤돌아보며 찬찬한 목소리로, 환자는 지금 안정이 필요하다고 어머니의 부푼 감정을 억제시켰다.
간호원이 시우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고 겨드랑이에서 체온계를 뽑아보더니 의사에게 정상이라고 말한 후 진료카드에 37도 1분을 기록했다. 내일 아침엔 가벼운 식사를 들여보내도록 하라고 의사는 간호원에게 말한 후 입원실을 떠났다. 그 뒤를 따라 간호원도 나가 버렸다.
“형, 정말 어떻게 된 겁니까? 차 앞을 건너가던 아주머니가 죽었단 말예요, 등에 업혔던 애가 죽었단 말예요?”
시우는 상체를 일으킬 듯 머리를 번쩍 들며 그 말부터 물었다. 그러나 옆구리의 통증 때문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베개에 털썩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의 형 종우는 아우의 가슴에 손을 얹어 흥분을 진정시키며 침통하게 대답했다.
“가만 가만, 무리하면 안 돼. 그 이 선생이란 사람한테 여러 말을 들었다. 문제가 크게 되었더군. 애가 즉사를 하고 채소장수 아주머니는 물론 사모님도 중상이야.”
종우는 이 선생의 말만 듣고 아우의 운전 부주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형까지 제가 사람을 죽였다고 믿는 모양인데, 형, 그게 아녜요. 정말 제가 운전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사모님이 술에 취해 차를 몰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제가 핸들을 사모님께 넘겨준 건 잘못인지 모르지만, 사모님이 우겨서 그런 사고가 난 겁니다. 정말 제 말을 믿어 주셔요!”
시우는 소리쳤다. 그러자 바닥에 무릎을 꾼 채 침대 모서리를 잡고 울고 있던 어머니가 시트를 움켜쥐며 시우에게 다잡아 물었다.
“시우야, 그럼 어떻게 된 거냐. 그 이 선생이란 분은 네가 운전을 했다고 딱 자르던데?”
“아닙니다. 사모님한테 물어보셔도 그건 분명합니다. 주유소에서 급유한 녀석도 사모님이 차를 모는 걸 본걸요.”
시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종우는, 네 말이 틀림없지? 하고 같은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해서 되물었다. 시우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하나님한테 맹세를 해도 사고가 날 때 자기가 운전을 하고 있지 않았다고 확언했다.
“그 새끼, 아무리 운전수로 매인 몸이지만 어디 그렇게 덮어씌울 수가 있나. 촌놈 취급해도 분수가 있지, 어느 놈은 냉수만 먹고 살아온 줄 아나!”
종우는 씹어뱉듯 한 마디를 남기곤 입원실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복도를 나서자 종우는 잽싸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김 여사가 입원하고 있는 특실이 아래층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특실을 채 못 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던 이 선생을 만났다. 종우는 그를 보자 대뜸 외쳤다.
“당신 잘 만났소. 뭐 내 동생이 차를 몰았다고? 아무리 우리 인생이 하루살이 같은 목숨이라도, 그래 생사람을 살인자로 몰아?”
종우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살기등등한 종우의 서슬에 이 선생은 찔끔 놀라더니, 이렇게 기가 죽어서야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헛기침을 하고는 맞대들었다.
“누구 앞에서 이게 무슨 버릇이야. 이 자식, 꼭지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정말 호랑이 무서운 줄 모르는 고양이로구먼. 네놈까지 영창에다 넣어야겠어.”
이 선생은 안경을 벗어 상의 위호주머니에 꽂더니 종우의 멱살을 잡아 쥐었다. 그러자 종우는 바락바락 악을 쓰며 멱살 쥔 이 선생의 손을 틀어쥐었다.
“너 정말 사람 웃기는구나. 내 비록 노동판에서 일당 받는 신세지만, 나도 산전수전 다 겪었다. 아무리 네가 금테안경에 넥타이는 맸지만 공갈에 떨어질 내가 아냐. 이 새끼, 사람 아주 잘못 봤구나!”
여기저기 입원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다보기 시작했다. 간호원이 달려오고 의사들도 싸우는 두 사람 쪽으로 모여들었다. 그러자 이 선생은 상황이 불리한 자기 입장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종우에게 말했다.
“병원에서 이럴 게 아니라 나가, 나가서 얘길 해. 경위는 경위대로 분명히 밝혀얄 게 아니냔 말야.”
이 선생은 종우의 작업복 자락을 잡고 현관 쪽으로 끌었다.
“그래, 나가자. 나가서 따지자. 그런데 이놈의 손모가지를 분질러 버릴까보다. 이거 놓지 못해!”
종우는 이 선생의 손을 홱 뿌리치고 현관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어느 입원실에선가 악을 쓰는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살려내, 내 자식을 살려내란 말이야, 불쌍한 내 새끼……부모 잘못 만나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꼬치꼬치 말라 가랑거리다가, 차에 치여 제 명대로 못 살고 죽다니, 원통하고 가련한 내 자식을 살려내!”
김 여사의 자가용에 치인 채소장수 아낙네의 목소리였다.
병원 현관을 빠져나오자 이 선생의 목소리는 아주 다른 사람같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안경을 다시 쓰고 미소까지 띠어가며 친절하게 말했다.
“형씨,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얘기나 좀 합시다. 조금 전에 제가 흥분을 하는 바람에 결례가 많았습니다.”
“시시한 소린 치워요. 우선 그것부터 밝힙시다. 정말 내 동생이 운전을 했나 안했나를 밝히잔 말예요. 되잖은 얘긴지는 모르지만, 내 동생이 그런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고 거짓말로 둘러댈 배짱이 있는 놈도, 능청스러운 놈도 아니란 말요.”
“허허, 형씨두. 좀 진정해 보슈. 사모님께서 아직 혼수상태에 있기 때문에 내가 그만 운전수 실수려니 지레짐작했던 거요. 그 점은 분명히 사과를 드립니다. 그건 그렇고, 한 사람이 죽고 세 명이 중상까지 입은 큰 사고다 보니 문제가 보통 복잡한 게 아니잖소? 그러니 서로 그 대책이나 좀 강구해 봅시다. 형씨 아우도 어차피 그 차에 운전수 자격으로 동승을 했으니 책임의 일부가 있는 거니깐요.”
이 선생은 지나가는 택시를 세웠다. 그리곤 엉거주춤 서 있는 종우를 먼저 타게 하고 자기도 종우의 옆 좌석에 올랐다.
“조용한 호텔로 좀 모셔 주구려.”
이 선생이 운전수에게 말했다.
“왜 이러셔요?”
종우가 놀란 표정으로 이 선생에게 물었다. 이 선생의 입을 통해 동생의 과실치사 혐의가 벗겨진 이상 핏대를 세워 싸울 필요까지야 없다고 생각했지만, 차를 호텔로 모는 것이 미심쩍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내 그랬잖소. 누구든 어차피 구속은 될 건데 사후 대책을 좀 의논하자구. 시우 군은 열흘쯤 후면 퇴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사 말인데, 사모님은 한 달은 병원 신세를 져야 하고, 또 한 사람 피해잔 다리 하나가 박살이 났으니 몇 달은 치료 받아얄 것 같단 말입니다. 그렇담 이 사태를 그대로 팽개쳐 둘 수야 없잖소.”
이 선생은 말을 마치자 종우에게 담배 한 개비를 권했다. 자기도 한 개비를 물더니, 라이터로 불을 댕겨 주고 자기 담배에도 불을 붙였다.
호텔 살롱의 구석 자리를 잡고 앉아 이 선생은 맥주를 주문하곤 낮은 목소리로 본격적인 용건을 꺼내었다.
“과실치사란 게 구속이 돼 봐야 집행유예 정도 아닙니까. 그런데, 사모님이 구속이 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죄야 둘째 치고라도 그게 어디 사모님 같은 분으로서 체면이 서는 이야깁니까. 사회적 신분도 신분이지만, 명사의 부인으로서 무슨 망신이겠습니까. 그러니 내 딱 잘라 말하겠는데, 한 장으로 해결을 봅시다. 형씨가 시우네 집안의 가장이니, 형씨 결정에 달렸으니깐요.”
“아니, 무슨 말씀입니까, 해결을 보다니요? 무슨 해결을 보자는 겁니까?”
“말뜻을 잘 못 알아듣는 모양인데 다름이 아니라, 시우 군은 우리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집행유예로 빼내 줄 테니깐 그 대가로 백만 원을 드리죠.”
“백만 원? 그럼 백만 원에 시우를 과실치사 혐의로 몰겠다 이 말씀입니까?”
“언성을 낮추슈. 백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닙니다. 판결이 날 달 반 정도 구치소에서 고생이 좀 되긴 하겠지만, 돈은 굴러 들어오는 떡이 아니겠어요? 물론 피의자 쪽의 보상금, 치료비, 시우 군의 치료비도 전적으로 사모님 쪽에서 부담을 하겠고, 사모님이 차를 모는 것을 본 증인이 있다면 증인도 다 매수를 할 테고.”
“그건 안 돼요. 또한 제가 결정할 성질도 아닙니다. 어머님도 계시고, 동생의 생각도 자기대로 있을 테니깐요. 그러나 분명히 말해 두지만 저는 돈에 동생을 희생시키고 싶진 않소.”
“이건 살짝 말해 두는 건데, 천안 경찰서 보안과에서도 시우 군의 과실치사를 그대로 인정하고 있으니깐요. 벌써 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건, 당신이 그렇게 보고를 해버린 게로군요? 흥, 어림없소.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질 테니깐요.”
“허허, 젊은 양반이 꽤나 고지식하군. 물론 양심도 소중한 거요. 그러나 보시오, 양심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잖소? 또한 양심도 때에 따라선 잠시 딴전도 피워 보는 게 세상을 사는 현명한 방법일 수가 있는 거요. 내 이걸 묻고 싶소. 형씨에게 일 년 동안 중노동으로 흘린 비지땀의 대가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백만 원 돈이면 어떤 장사로도 한밑천은 충분히 될 만한 금액이오.”
“……”
종우는 대답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는 앞에 놓인 맥주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의 눈앞에는 여태껏 만져 보기는커녕 본 적조차 없는 백만 원 현금 다발이 어른거렸다. 그 돈이면 고향으로 돌아간대도 2천 평이 넘는 개간지를 구입할 수가 있다. 그 개간지를 내 땀의 대가로 옥토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머리를 빠뜨린 채 한참을 침묵하던 종우는 잠시 후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안 돼요. 저로서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시우가 설령 감옥살이를 하지 않게 된다 해도 그렇게 돈에 애새끼를 넘겨 버리고 싶진 않소.” 하고 단호히 거절했다.
“그럼 좋습니다. 50을 더 붙여 드리지요. 자, 여기 있수다. 이건 50만 원 권 자기앞이요. 내일 아침이라도 당장 은행에서 현찰로 바꾸어 쓸 수가 있소. 그리고 나머지 일백은 시우 군이 경찰에, 자기의 운전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라고 한마디 말만 떨어지면 즉시 지불하겠소. 내 다시 말합니다만 이건 순전히 사모님의 실수로 시우 군에게는 굴러들어온 횡재요. 형씨도 곰곰이 생각해 봄 알 수 있을 거요. 시우 군이 그렇게 청렴결백을 주장한 후 실직하여 집에 들어앉는 것과, 미결수로 한 달 고생을 하고 1백 50을 벌게 되는 것과는 엄청난 결과란 걸 말이요.”
말을 마치자 이 선생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종우 곁을 떠났다.
변소에 갔거니 하고 기다린다는 게 종우가 맥주 두 병을 비워낼 때까지 이 선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동안 이십 분은 좋게 시간이 흐른 후였다. 종우는 앞에 놓인 수표를 내려다보며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수표 액면의 숫자는 마치 이 선생의 분신처럼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수표는 살아 있는 또 하나의 생명 같았다. 이 선생의 언질에도 불구하고 종우에게는 그 종잇조각이 돈으로 생각되어 지지가 않았고, 더욱 그것을 자기가 쓸 수 있는 돈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공사판에서 종일 자갈이며 모래를 져서 나른 해질녘, 십장이 건네주는 전표를 들고 현장사무소로 가서 현찰과 바꾸어 쥐게 되는 돈만이 자기의 소유라고 생각되어, 지금 그는 때 묻고 구겨진 백 원짜리 예닐곱 장으로 떠오를 뿐이었다.
열 한 시가 가까워오는 마당에 종우는 무작정 이 선생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수표를 집어 들어 마치 거머리나 만지듯 그것을 고이 접어 상의 주머니에 깊이 넣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우는 끄윽 트림을 했다. 그가 맥주를 마셔보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군에 있을 때 외출을 나가 쏘맥이라 해서 동료들과 소주에 맥주를 타서 마셔본 적이 있을 따름이었다.
종우가 카운터로 가서 금테 안경을 낀 이 선생에 대해서 물어보니, 계산을 끝내고 벌써 나갔다는 것이었다. 종우는 털레털레 호텔을 빠져나와 행인에게 병원 쪽 길을 물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러며 그는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수표를 이 선생에게 돌려줄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이 선생의 말대로 백 50만 원으로 사건을 해결할 것인가. 그것은 물론 생각할 여지도 없이 병원에 들어서는 길로 이 선생을 찾아 수표에다 침을 발라 그의 면상에다 철썩 붙여 주어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한적한 가로를 걸을수록, 시간이 흐름에 다라 종우의 마음은 차츰 그와 반대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그 막대한 금액이 주는 매력을 떠나서라도, 인간적인 도리에 마음이 걸려 그렇게 박정하게 김 여사를 몰아세울 수만은 없을 것 같았다. 돈을 딱 잘라 거절한 그런 청렴한 의협심을 도대체 어느 누가 알아줄 것이며, 그렇게 해서 돈을 깨끗이 거절한 후 아우가 떳떳이 퇴원을 하고 사모님이 구속된다면, 운전수인 아우의 입장으로서도 하나 후련할 게 없을 것이다. 사모님의 사회적 체면을 여지없이 으깨어 버린 통쾌감보다도, 시우가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잘 보필하지 못해 일어난 인간적 책임에 따른 죄책감을 실직당한 상태에서 쓰라리게 겪지 않으면 안 되리라.
이럴 것이냐, 저럴 것이냐. 저지르지 않은 죄를 뒤집어써선 눈 딱 감고 백 50만 원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사모님이 구속되든 말든 결백을 밝히고 집에 들어앉을 것이냐. 종우는 시우의 문제를 마치 자기 문제나 되는 듯 괴롭게 생각하며 고속도로 진입로 쪽 병원으로 걷고 또 걸었다. 걷던 중 마침 가설 포장 대폿집이 있어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소주 한 병을 시켜선 오뎅 국물과 채나물로 그 한 병을 다 마셔버렸다. 그동안도 그에게는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결론이 서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다시 걷기 시작했을 때 그의 취한 눈앞에 홀연히 아담한 식품점 하나가 그림처럼 떠올랐다. 그것은 그가 노동판을 떠나는 날 언젠가, 사실 그 언젠가를 기약할 수는 없었지만, 돈이 얼마라도 모이면 가족의 생계 수단으로 갖고 싶었던 꿈이었다. 나는 못 배웠지만 시우에게는 야간 공업기술학교라도, 그리고 여동생들은 상업학교에 진학시키는 꿈이 식품점을 자기가 직접 경영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대였다. 백 50만 원, 그 돈이면 지금이라도 공사판에서 손을 털고 변두리 어디에 월세로 가게를 얻어 자그마한 식품점은 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호텔에서 나온 길로 곧장 병원으로 돌아온 이 선생은 김 여사의 입원실로 들어갔다. 입원실에는 절대 출입 엄금이란 푯말이 붙어 있고, 김 여사의 외동아들인 부사장이 홀로 병실을 지키고 있던 중이었다. 남편은 허 전무를 대동하고 공장부지 물색 차 경남 창원으로 내려가, 교통사고의 전갈은 그쪽까지 가긴 갔으나 미처 천안에 도착되지 못하고 있었다.
김 여사는 최면주사를 맞고 잠이 들어 있었다. 부사장은 한쪽 팔과 어깨가 붕대로 친친 감긴 어머니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 여사는 얼굴만은 크게 다치지를 않았으나 찰과상으로 심히 부어있었다. 김 여사는 오른쪽 견장뼈와 위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던 것이다.
보통 키에 몸피가 호리한 젊은 부사장은 이 선생을 보자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먼저 문께로 걸어가며 이 선생에게 따라 나오라고 조용히 손짓을 했다. 휑뎅그렁한 복도에는 사람이 없었고 조용했다.
“마침 시우 군의 형을 복도에서 만났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불러내었지요. 좀 다투긴 했지만 백 50으로 일이 잘 될 것 같습니다.”
이 선생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쥐고 자기보다 손아래인 부사장에게 우선 결과부터 보고했다. 부사장은 복도에 놓인 긴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나이답잖게 점잖은 목소리로 이 선생을 훈계하기 시작했다.
“글쎄, 제 말이 그랬잖아요. 이 선생은 운전수에게 무조건 책임전가를 시키겠다고 고집을 했지만 그게 순리가 아니라고 제가 말했잖습니까. 물론 조작을 한담 완전범죄란 게 없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의 도리란 게 어디 그렇게까지 철저히 약해질 수야 있겠어요. 어쨌든 긴 말 할 것 없이 돈으로 해결을 보게 되었다니 웃불은 끈 셈입니다.”
“네, 지당한 말씀이지요. 제가 좀 경솔했나 봅니다. 제 생각으로선 그게 쉬울 것 같아서요. 범인으로 몰아세워 놓고 흥정을 벌이면 주는 돈 액수도 훨씬 낮아질 뿐 아니라 상대편도 감지덕지할 것 같아서……그러나 부사장님 생각이 훨씬 사려가 깊고 정확했습니다.”
“어디 지금 돈 액수가 문제요? 매사의 일이란 게 너무 무리를 하다 보면 더 큰 곤욕을 치르게 되는 경우기 비일비재합니다. 물론 이건 자식 된 도리로서 제가 할 말은 아닙니다만, 어머님이 나이답잖게 직접 차를 몰겠다는 무리에서 이런 사고가 빚어진 게 아니겠어요? 잠드시기 전도 어머님이 저를 두고, 스스로의 잘못을 후회하시며 아버님이 돌아오시기 전에 사건을 잘 마무리해 달라고 부탁은 하셨지만, 그건 다 사후약방문 아닙니까.”
부사장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물었다. 이 선생이 얼른 라이터 불을 댕겨 주며 소곤소곤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 일은 사모님, 부사장님, 그리고 저만 아는 비밀로 백 50에 사건을 무마하도록……실수가 없게끔 잘 하겠습니다. 부사장님, 사실 이걸 뭐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사모님이시다 보니 신중을 기하느라고 조심이 될 뿐, 이 정도야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거죠. 저쪽이 훨씬 약하니깐요. 그 처지에 돈보구 환장 안하게 됐습니까?”
“그 말솜씨, 이선생도 말 좀 골라서 뱉으시오. 같은 말이라도 환장이 뭐요? 물론 우리 집안의 명예와 어머님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이 선생, 이걸 명심하시오. 운전수네 가족에게도 최대한의 성의를 다 보인다는 점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운전수네 가족들의 생각이, ‘이번 일은 돈에 시우 군이 팔린 것이 아니라 주인아주머니의 어쩔 수 없는 입장을 운전수 된 사명감에 따른 자발적 결심으로 도와주는 것뿐이다. 그러다보니 그 성의 표시로 생각지도 않은 돈이 생기게 되어 정말 은혜를 갚는 느낌이다’ 운전수와 가족들이 이런 생각을 갖게끔 이 선생이 처신을 해야 된단 말입니다. 돈이란 쓰기 나름이어서 잘못 쓰면 오히려 돈은 돈대로 없어지고 욕설까지 먹게 되는 법을 아셔야 해요. 그러니 운전수 가족에게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하고 그들이 그 성의를 진실 그대로 받아들이게끔 행동하란 말예요. 물론 저도 그렇게 하겠지만.”
이 선생은 젊은 부사장의 설교조의 말을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요즘 사장 2세들은 새파란 나이답잖게 모든 생각이 얄밉도록 침착하다고 혀를 내두를 따름이었다. 그게 바로 경영학 공부에서 나온 합리적인 사고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이 선생에게는 별 달갑잖은 주문이었다. 쉬운 말로 자기가 종우에게 돈 얘기를 꺼낸 것을 가슴 치고 간 내어먹기라면, 부사장의 이야기는 등 쓰다듬어 주고 간 내어먹자, 라는 이야기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마침 현관 밖에서 차 닿는 소리가 나더니 김 여사의 남편인 최 회장과 허 전무가 들이닥쳤다. 그로부터 십 분 후 부사장의 처와 한 무리의 친척들이 부산하게 병원으로 밀려왔고, 곧이어 통금 예비 사이렌이 울렸다. 그러고도 회사의 간부와 친척붙이들이 서울에서 천안으로 계속 몰려들어 김 여사의 입원실 앞은 그들로 하여 곧 초만원을 이루었다.
종우가 병원에 도착한 것은 통금이 임박해서였다. 그는 가설 포장 대폿집에서 나와 다시 병원 앞 주점에 들러 한 차례 소주를 더 걸쳐 담뿍 취해 있었다. 제기랄, 뭐냔 말야, 우리 같은 따라지는 늘상 그런 놈들 밑이나 닦아 주는 휴지 같은 인생인가, 그는 이렇게 횡설수설 지껄이고 있었다.
종우는 아우의 입원실로 들어가자마자 두 다리를 뻗고 바닥에 그대로 주어앉아 신들린 사람처럼 펑펑 울기부터 먼저 했다. 심청이가 따로 있나 시우가 심청이지, 하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러자 여태껏 종우를 기다리던 어머니도 아우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채 쳐다볼 뿐이었다.
“얘야, 종우야, 너까지 웬일이냐? 누구한테 맞았냐, 아니면 시우가 사고를 냈다고 우기더냐?”
어머니가 종우의 어깻죽지를 잡고 안타깝게 물었다.
그러자 종우는 충혈 된 벌건 눈으로 “관둬요, 어머니, 어머닌 제 고민을 모른단 말예요. 씨팔 같은 고민을 모른단 말예요.” 하고 뇌까리곤 벌떡 일어나 아우의 침대 곁으로 달려갔다. 그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창백한 얼굴로 누워 있는 아우에게 술 냄새를 훅 풍기며 다짜고짜로 외쳤다. “돈이 더럽지, 돈이 원수지. 그런데 시우야, 네가 사고를 냈다고, 네가 범인이라고 자백을 해야 될 것 같아……그래야만 우리 집안이 살 것 같애. 이런 기회는 정말로 우리 같은 처지로선 바랄 수 없는 그런 기막힌 요행이란 말야. 그렇지, 복권에 당첨된 요행이란 말야.”
그러자 시우는 형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우선 누명을 뒤집어쓰라니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다는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형, 말 좀 해봐요.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거예요? 왜 내가 사고를 냈다고 말해야 하냐 말예요?”
종우는 울음 때문에 흥건히 괸 물코를 병실 바닥에다 헹 풀곤 온통 눈물에 얼룩진 얼굴로 아우를 내려다보더니, 호주머니에서 수표를 꺼내었다. 그것을 링거 주사바늘이 꽂히지 않은 아우의 손에 꼭 쥐어주었다. 그리곤 이 선생과 호텔 그릴에서 나눈 이야기를 자기의 사견(私見)을 섞어 두서없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종우가 이야기를 마치고 세 모자가 한 덩어리가 되어 팔자타령에 다른 울음을 쏟고 있을 때 부사장과 이 선생이 귤 한 광주리, 각종 통조림과 과일을 한 아름씩 싸안고 입원실로 들어왔다.
이튿날 아침, 시우는 병실의 침대에 누운 채 두 명의 경찰관으로부터 취조를 받았다. 사건의 결과가 원체 뻔한 데다 이 선생이 사전에 그 전말을 다 일러두었으므로 취조는 약식으로 대충 진행되었다.
“울지만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란 말이야!”
의자에 앉은 경찰관이 시우를 보고 짜증스럽게 말했다. 시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계속 흐느끼고만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운전 부주의라고 거짓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서러움 때문이었다. 그러자 시우의 곁에 서 있던 종우가 경찰관의 눈치를 살펴 가며 대신 대답했다.
“운전 경험이 부족한데다, 맞은편 골목에서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더욱 그 시간이 땅거미가 질 때여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모양 같아요.”
그 말에 이 선생도, 시우 군은 운전 면허증을 탄 지가 불과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신네들은 가만들 좀 있으슈. 우리는 운전사의 말을 듣기 위해서 묻고 있는 거지, 당신네들 말을 들으려고 온 게 아니란 말요!”
서 있던 경찰관은 이 선생과 종우를 번갈아보며 힐책했다. 그러자 이 선생은, 지금 몸도 성치 않는데다 졸지에 사건을 저지른 충격 때문에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점을 감안해서 간단히 끝내 달라고 경찰관에게 부탁했다.
그때 갑자기 시우가 곁에 앉아 있는 경찰관을 향해 총알같이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울음에 잠겨 있었으나 뜨거운 분노에 떨고 있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 모든 게 제 부주의로 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브레이크를 밟았는데도 그건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차바퀴 밑으로 빨려 들어오다시피 사람의 몸체가 당겨왔던 겁니다…….”
시우는 말을 마치자 시트를 끌어당겨 머리 위까지 덮어쓰고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큰 소리로, 실내의 벽면이 울릴 정도로 통곡을 쏟는 것이었다.
경찰관은 조서를 이 선생과 종우의 말을 토대로 작성하였고, 시우가 몇 곳에 손도장을 눌리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이 났다. 경찰관은 시우를 퇴원과 더불어 구속 할 방침이라고 말했고, 이 선생과 종우를 증언 차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그러고 나자 사건의 모든 마무리는 이 선생의 각본에 따라 일방통행으로 진행되었다.
시우가 과실치사죄로 천안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된 것은 그로부터 보름 후였다. 퇴원 수속이 끝나자마자 그는 대기하고 있던 백차에 실려 천안 경찰서로 넘어갔다. 그러나 이 선생은 종우와의 약정된 금액을 일시불로 쉽게 넘겨주지를 않았다. 50만 원을 더 건네주었을 뿐, 나머지 50만 원은 판결이 날 때까지 미룰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시우 군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게 될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것은 시우네 가족으로서도 타당성이 있는 제의로 받아들여졌으므로 이 선생의 말에 승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제 시우의 이름은 사회에서 사라져 버렸다. 천안 지방법원에서 10개월 형이 확정된 것이다.
시우가 머리칼을 빡빡 깎인 것은 12월 중순 어느 날이었다. 침엽수의 낙엽처럼 머리칼이 우수수 떨어져 내릴 때 시우는 울지 않았다. 그는 이빨을 앙다물고 타의에 의해 전과자가 되는 억울함을 참았다. 뭉떵뭉떵 떨어져 내리는 머리칼을 보며, 저것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끝내 땅속에 묻혀선 하얗게 썩어질 때쯤 나도 다시 세상 사람들 속에 섞일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시우가 천안 경찰서에서 홍성 교도소로 이송되는 날은 눈이 내렸다.
시우는 철제함으로 짜인 견고한 트럭의 바둑판만한 쇠창살 밖으로 눈이 펄펄 내리는 것을 보았다. 줄지어 선 가로수의 앙상한 가지 끝이 보이고, 그 위로 굵은 눈송이가 엉겨와 앉는 모양이 그의 눈에는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문득 고향 백암리를 떠날 때가 생각났다. 그때 시우는 열다섯의 어린 나이였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 넓고 복잡한 서울에서 우리 가족들이 어떻게 살 것이냐 란 문제를 두고 가슴 떨리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형, 정말 밥벌이가 될까? 그는 형에게 몇 번이나 이 말을 물으며 긴장을 되다지곤 했던 것이다. 지금 시우는 그때와 흡사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추위 때문만도 아닌데 가슴을 떨고 있었다.
“참말, 젠장헐 놈의 고생이 시작되는구먼.”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같이 이송되는 사람은 열두 명, 그중 시우의 나이가 가장 어렸다.
시우는 형이 확정될 동안 구치소에서 석 달 남짓을 보낸 셈이었다. 그동안 꽤나 고생을 했고, 이번 겨울은 특히 입동(立冬)을 넘기자마자 강추위가 시작되어 겨울나기에도 엔간히 숙달된 셈인데, 어쩐지 발가락 끝이 패인 듯 시려왔다. 열 달, 따지고 보면 긴 시간 같지만 사람의 평생을 두고 셈하면 눈 깜짝할 사이의 달수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견딜힘이 없어서야, 하고 그는 좀 느긋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이 선생이 누누이 들려준 말처럼 시우는 아무리 사태가 불리하다 하더라도 1년 징역에 3년 집행유예로 나갈 줄 알았었다. 그런데 이 선생이 올린 항소가 고법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자, 자기만 억울하게 함정에 빠진 듯했고, 사모님은 물론 가족마저도 돈에 눈이 어두워 자기를 속임수에 이용하는 듯하여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종우 형의 면회가 있고부터 그는 한결 새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시우야, 또 50만 원을 더 받았어. 네가 실형을 받았기 때문이야. 그래서 2백이 된 거야. 네가 우리 가족을 살린 거란 말이야. 그 돈이면 나도 공사판을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할 수 있어. 너도 야간이라도 학교엘 나갈 수 있게 됐구. 참아 줘. 이건 정말 면목이 없다만, 어떡하니. 그럴 수밖에 없잖니? 그저께 사모님을 만나 같이 네 얘길 했더랬어. 전생에 다시 갚지 못할 빚을 네게 졌다면서 말이야. 네가 출감하면 운전수든 뭐든 다시 일을 시키겠다구, 월급을 올려 주겠다고 약속하셨어. 시우야, 이 형이 양심을 팔았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그 돈으루 우리두 성공하여 옛말하구 살자꾸나. 정말 성공하여 남부럽잖게 될 때, 이 피눈물 나는 고생은 그때 가서 위로하자…….”
멀찌감치 선 간수 귀를 피해 귀엣말로 종우 형이 이렇게 말할 때, 두 형제는 함께 울었다. 시우는 검게 탄 형의 거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철창 사이로 굳게 잡은 형의 억센 손이 떨리고 끝내 꺼억 거리며 흐느낄 때, 시우는 여태껏 침묵한 채 참아 왔듯 몇 달을 참기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몇 달 감옥 생활을 이겨 내기로 결심했다.
오늘 아침, 넉 달 동안 집 안방과 다를 바 없는 안착지로 떠나게 되자 까닭 없이 마음이 설레 아침밥도 거르게 되고, 그게 공복과 더불어 한기를 가중시켰다. 시우는 연방 떨며 다시 중얼거렸다. 정말 겨울은 지금부터이고 고생도 시작인데 몸과 마음이 이렇게 약해지면 안 된다고.
“눈이 오면 날씨가 포근한 벱인디 워찌 요렇게 차다냐. 이런 날은 개 팔자가 젤이여.”
“글쎄 말이다. 동지도 그믐이모 얼매 안 있어 새해 아닌가 말이다. 그라모 햇수로 일 년 넘기는 긴데, 헤헤. 그렇게 햇수로 따져서 내보내 준다 카모 나도 출감이 가까운데 말이다.”
도란도란 입김으로 나누는 말소리가 시우 귀에 다습다. 몇 명이 같은 감방에 있게 될는지, 아니면 뿔뿔이 흩어져 수감될는지 모를 다정한 얼굴을 시우는 눈여겨보았다. 강도․절도․사기․살인, 각각 이마빡에 눈에 띄지 않는 푯말을 붙이고 그들은 겨울잠을 즐기는 두더지 꼴로 엉겨 있었다.
“젊은 친구, 이쪽으로 와. 거긴 더 추울걸.”
개 팔자를 이야기한 죄수가 떨어져 앉은 시우에게 말을 던졌다. 구레나룻 시커먼 그는 토지 사기범이었다. 토지 사기범의 하수인으로 뛰다 잡혀들어 1년 6개월 선고를 받은 것이다.
시우는 그냥 빙긋 웃어 보이고는 다시 쇠창살 밖으로 눈을 주었다. 플라타너스의 가지 끝에 달린 산타클로스 모자의 고깔 같은 열매가 한들거리고 있었고, 그 검은 열매의 머리 위로 눈은 내려앉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언제더라. 시우는 생각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가족들이 꾀나 오순도순하게 더운 쌀밥을 고기반찬과 함께 먹겠군. 그리고 형은 지금쯤 이 눈을 맞으며 저 어디 화곡동이나 봉천동의 신흥 주택 지대를 싸돌며 식품점 벌일 점포를 물색하고 다니겠지. 그렇게만 되면 을숙이도 내년이면 중학 교복을 입을 수 있게 될 거야.
시우의 마음은 그렇게 어둡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과자며 음료수, 통조림 따위가 보기 좋게 진열된 아담한 자기 집 상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여름이면 수박이나 참외도 갖춰 놓고, 채소도 팔면 될 거야. 그런데 점포 이름은 뭐라고 붙일까. 형이 근사한 이름을 붙일 거야.
자꾸만 멀리 달아나는 가로수 앞으로 마구 흩날리며 쏟아지는 눈송이를 시우는 철창을 통해 올려다보며 갑자기 새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 기묘한 웃음소리를 듣고 동료 죄수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었다. 그러자 개 팔자를 이야기한 죄수가 시우를 쳐다보며 시큰둥하게 한 마디를 뱉었다.
“저건 웃는 게 아니구먼. 웃음도 여러 질이여. 저 얼굴 좀 봐여. 꼭 포주 집에 팔려온 시골 숫처녀가 첫날밤 맞는 상이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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