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마지막에 집에계셔도...
요양원에 계셔도...
먹는것 입는것 다 챙겨주는데
무슨돈이 필요할까 생각할 수 있어도...
세상떠나는 마지막까지 돈을 갖고 있으면
행복하게 지낼 수가 있는것 같다
1) 우리 동네 사시던 할머님은
요양원에 보내졌는데.. 며느리 말에 의하면 요양원에 면회를 가면
늘 돈을 달라고 하셨다 한다
그 돈으로 할머니는 자기를 도와주는 간병인들등 한테
감사표시도 하시고 요양원에서 인심도 잘 쓰셨는지.. 요양원에서 모두 할머니를 좋아해서
오랫동안 (10년?) 요양원 에서 잘 지내시다 103세(?)에 돌아 가셨다 한다
2) 우리 외증조 할머니께서는 나 국민학교 3학년때인 1954년에 83세(?)에
돌아가셨는데 그 시절에는 장수하셨다, 했다
외증조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전 몇년간은 거동을 잘 못하셔서
방밖출입을 못하셨었다.
청진동에 있던 외갓집은 한옥이었는데 외증조 할머니께서는 그때 바깥채 사랑방에 거처하셨었다
깔고계신 요밑에는 늘 돈이 있어서
찾아온 손주들, 조카들, 친척들한테 꺼내 주시곤 했었다
(육이오 사변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때는 참 돈이 귀할때였다)
또 외증조 할머니 방에는 언제나
그 먹을것 귀한시절에 나마까시, 과일, 과자, 사탕등.. 맛있는것이 많았고
끼니때 안채에서 나오는 반찬도 장조림, 굴비, 명란젓등 맛이 있었다.
찾아뵙는 사람들로 외증조 할머니 방은 늘 하하 호호 화기애애 했었다.
외할아버지도 저녁에 퇴근하셔 대문들어서면 우선 어머니인 외증조 할머님 방에 먼저들러
한 30분 큰 소리로 그날 있던일등 얘기해 드리고 웃겨 드리고는 안채로 들어가시곤 했었다
외증조 할머니는 또 목사님이랑 심방을 오시면 교회에 헌금을 넉넉히 보내셨다고 한다
명절이나 무슨 때가되면 사람을 시켜 교회에 헌금도 보내시고 목사님께도 잊지않고
귀한 음식을 보내셨다고 한다.
외증조할머니께서는 오랫동안 거동을 못하셨어도 언제나 요밑에 돈이 넉넉히 있으셔서 그랬는지
돌아가시는 날까지 외롭지 않게 지내셨던것 같다
오른쪽에서... 4번째 흰두루마기 입으신 분이 외증조 할머니의 작은아들 우리 외할아버지 시고,
6번째 까만 양복입으신분이 외할아버지 형님이신것 같다.
그리고 비석뒤에 서 계신 풍채좋은 신사분은 승동교회 목사님 이신것 같고...
외증조 할머니 장례에 전 부통령이신 함태영씨도 오셨다 했었는데
오른쪽에서 2번째 신사분 아니신지 모르겠다
왼쪽에 3번째 흰 치마저고리 입으신 분이 외증조 할머니께서 제일 사랑하시던 손녀 우리 친정엄마 이시다.
엄마가 2살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할머니이신 외증조 할머님께서 키우셨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께서 영국에 가셨을때 그곳 묘지를 보시고 외증조 할머니 묘를 저렇게 납작하게 모셔,
1954년 그때에는 생전처음보는 묘에 사람들이 신기해 했었다.
3) 옛날 내가 국민학교 다닐때 우리집 근처 언덕위에 집에 노망든 할아버지가 계셨었다
그 할아버지는 아침이면 아들한테 용돈을 타 갖고는 집근처 재래시장으로 가셨다.
그리고는 모자를 한개에 1000원(?)씩에 사갖고는 시장 한구석에서 500원(?)에 파시곤 하셨었다.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길에서 만나는 동네사람들이
"오늘 장사 잘 하셨어요?" 하고 인사를 하면
"응~ 모자들이 하나도 안남기도 다 팔렸어." 하고 의기양양 하셨다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할아버지 아들, 며느리가 참 무던하고 현명하셨던것 같다
치매할아버지 용돈을 매일 드려서 할아버지가 아침부터 시장에 가셔서 시장에서 사람들과 물건을 흥정해서
사고, 파느라 이야기하고 시장을 걷고.. 저녁에 돌아오시는... 참좋은 치매 치료법이었던것 같다
4) 어떤 집에서 며느리가 명절에 다녀가면서
시아버지 한테만 용돈을 두둑히 드렸다 한다
시어머니가 생활비 다 챙기고 시아버지 용돈도 주는데...
먹을것 입을것 아내가 다 챙겨줘도
돈이 있으면 손주들 한테도 용돈을 주어 할아버지 위신도 세울 수 있고
가끔 친구들한테 호기도 부릴 수 있고
할아버지에게 며느리가 준 돈은 행복을 줄 수도 있을것 같다
5) 몇년전 남편이 한국갔을때 세상떠난 친구의 부인을 조위금을 전할겸 해서 만났는데
남편친구가 노숙자와 친구해서 술도 마시고 했었다고.. 질색을 했다는데
남편친구가 인정이 많았을것 같기도 하고, 혹시 외로웠나 싶기도 하다
노숙자한테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자기 이야기도 했을것이고...
이런것도 용돈이 주머니에 넉넉해야 할 수 있을것 같다.
첫댓글 소개 하신 경우가 다 현명하게 사셨던 어르신들이십니다.
돈이 없었다면 또 그렇게 못하셨을 것이고,
용돈이나 먹을 간식거리도 넉넉하니 자손들이고 손님들이고
그 방에 들려서 소담도 하고 그려 셨겠지요.
치매 시아버지께 용돈 넉넉하게 드려서 반토막의 모자 장사를 하시게
해서 시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파느라 또 손님들과 이야기 하고,
다 팔아서 성취감 있고, 정말로 좋은 치매 치료법이다 싶습니다.
좋은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저희 부부도 나이들어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돈에 얽힌 어른들 얘기는 전혀 모르고 살았어요.
제 증조할머니께서는 100세 넘게 사셨어요.
어린 저를 무릎에 앉히시고 노란 작은 인삼이 그려진 카랴멜박스를 제게 주셨었지요.
인삼이 그려진 박스속에 카랴멜에는 작은 얇은막으로 쌓여있었고 참 맛이 좋았어요.
과자도 증조할머니께서 제게 사서 주셨으니 돈을 가지시고 게셨나 봅니다.
제 할아버지는 이상한 할아버지셨어요.
맛있는 고급과자를 벽장속에 감춰두시고 혼자만 잡수셨어요.
제 친할아버지께서는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시고 교회 장로님이셨는데,
어찌나 어린 제게 그렇게 이가 나빠진다고 하시면서 아무것도 안주셨는지...
돈이 있고 없고 문제가 아니고,차갑게 기억되는 친할아버지십니다.
제가 할머니가 되고 보니, 손주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어 집니다.
저희가 가지고 있던 야마하피아노를 손주들에게 주고,
큰딸이 안받으려고 했지만 손주들 피아노 레슨비도 매달 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자식들에게 줄것이 있어서 보람을 느낍니다.
누구에게 손안벌리고 살수 있는것에 감사하지요.
나이들어도 누군가에게 뭐라도 줄수 있다면 좋은 일 같아요.
맞는 말씀이세요.
나이들수록 입은 닫고,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지요.
저희엄마도 에반이한테 주는 재미로
뜯긴다 고 표현하시면서도,늘 돈을 찾아다 놓으셨어요..
그렇습니다 돈이 있어야 하더군요
저희 어머니 뇌졸증으로 13년 누어 계셨고
어머니 돌아가신 3개월만에 고관절 다치시고 3년을 고생 하시다가
작년 1월에 돌아가셧지요
아버지 어머니 16년을 병 간호와 요양원 생활에 서울에서 집 한채 팔아서까지 다 들어 갔습니다
다행이도 아들이 돈이 있어서 감당 했지요
제가 블로그 활동도 잘 못하고
친정 아버지 병간호와 요양원으로 3년을 보내었지요
며느리가 친정어머니 13년을 했으니 너무 안스러워 친정 아버지는 제가 돌봐 드렸지요
청이님의 글을 보노라니
제 지난날이 떠오르는군요
장례식 때 모인 가족얘기를 알게되니
청이님의 집안 가족들이 모두 참 휼륭하신 분이신듯 하군요.
당시 상황에서는 어려웠던 신교육과 신식 사고와
여유로움등등...
한살 적은 이모님과 청이님의 어릴적 얼굴에서
지금의 얼굴모습에 그대로 비슷하게 남아있는것 같아 보여서
참 신기해 하며 보고 있답니다.
치매 걸린 할아버지 얘기는
재미있게 표현을 하셔서 웃음이 빵~
신나고 즐겁게 사시는데 치매가 아니라
어쩜 현명한 방법인듯 합니다.
주머니에 돈이 있고 맘의 여유가 있으시니
어쩜 베풀려고 그러시는지도 모르죠.
정말 구구절절 맞는 말씀 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돈이 필요하다는...
저도 나이가 들어가니
참 요긴하게 쓰이는게 돈 인듯 합니다.
여유가 있음에도 연장자가 주머니 여는것이 인색하면
성품이 어떠하든지 좀 야박하단 생각에
제가 제일 나이 많은 곳에 함께 하거나 할땐
지갑을 꼭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제가...^^
사람의 맘은 좀 간사해 지긴 해서
매번 늘 그러할땐 좀 ...ㅎㅎㅎ
허지만 저는
남편에게는 늘 많이 쓰라고 합니다.
후배 직원들 하고 함께 지내고 일상에 활력이 샘솟아 기쁘다고 하니
또 다시 거금(?)의 월급도 들어오는데
맘껏 쓰고 기분내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