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 업에 관하여
다음은 필자가 체험한 카르마, 업으로, 체험 한 결과 느낀 점이다. 정신은 체험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체험을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일상 삶에서 우리에게 닥아오는 어려움이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정신을 깨달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고 거기에서 비로소 정신을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한다. 필자를 비롯하여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오는 어려움에 대해서 정신을 파악하고 답을 찾을까가 질문이다.
필자의 여담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항상 궁금한 것이 있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도 그 죄를 받지않고, 오히려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더 어려움을 겪는다. 누구나 주위를 보면 해를 끼친 사람이 어려움을 겪지 않고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난 일을 자주 보았을 것이다. 물론 '불가에서는 죄를 지으면 깊은 바닷속, 높은 산위로 피해도 반드시 벌을 받는다'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은 계율, 진리로 삶의 이정표 역할은 하지만, 실제로 필자가 경험을 하지는 못해서 실감나게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도 이해 관계가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 나아가 볼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실제로 해보니 적성에 맞지 않아서 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런 체험을 진짜 하게 되었다. 결과는 참으로 놀랍다는 말밖에 다른 말은 할 수가 없다. 참 신기하고 놀라운 체험이었다. 이 일은 5, 6년을 걸쳐서 일어난 일이다. 필자는 평소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취미로 하는 합창단에 가입을 하고 꾸준히 다녔다. 그런데 그 합창단 단장이 단원이 어떤 건의를 하면 절대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동원해서 나가라고 공개적으로 말을 한다. 다음은 어떤 단원이 실제로 한 건의이다. 아직 합창단에 카톡이 없어서, 카톡을 만들어서 소통을 하자고 건의를 하자.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둘러싸고 그 단원을 나가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생각하기에 카톡을 만들면 여러가지 민원이 들어올 것이고, 그러면 자기(단장) 마음대로 못할 것이다. 요컨대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다는 것이구나'란 결론을 내렸다. 물론 지금도 그 합창단에는 카톡이 없다. 필자도 예전에 어떤 건의를 했지만, 묵살되었고 똑 같이 나가라는 말을 들은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그냥 계속 다니다가 도저히 참을 수없다는 어떤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고 현재는 다른 곳에 다닌다.
두 번째, 생활오케스트라가 가까이 있길래 필자가 가입하고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가 부는 악기, 리코더 인원이 부족하고 또 필자 실력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합창단 단장보고 같이 하자고 요청,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합창단 단장이 그동안 첼로를 해 온 모양이다. 그래서 현재 첼로를 하는데, 필자 생각에는 첼로 단원이 필자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 이것이 기본적인 인간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금도 변함없이 가지고 있다. '리코더보다는 첼로를 하므로 첼로를 하게 되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은, '필자를 무시하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후부터는 필자와 합창단단장이었던 첼로단원과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업 중에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첼로가 얼마나 중요한데 첼로를 무시하느냐'라면서 화를 크게 내었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지휘자인데,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니, 합창단단장이 필자가 말을 걸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대하니 무시한다고 생각한 모양, 적반하장으로 지휘자에게 나오지 않겠다고 했거나 나오기 불편하다고 한 모양이다. 통상 말하기를 지휘자에게 일러바친 것이다. 필자기 생각하기에 그렇게 무시한다는 느낌이 들면, 직접 와서 물어 볼일이지, 다른 사람을 시켜서 그러지 못하게 하는 방법. 그것도 지휘자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평소 이 합창단단장이 하는 수법이기는 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물론 필자가 먼저 오해를 풀수도 있었다. 하지만 합창단단장이 필자보다 나이가(15살 정도) 많이 어려서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
지휘자가 중립을 지켜야지 한 사람, 첼로 단원의 역성을 드는 것이 못마땅해서 필자는 생활오케스트라를 그만 두고 말았다. 계속 하고 싶었지만, 지휘자가 그렇게 말하는 데에 크게 실망을 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생활악기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계약만료로 그만 두고, 다른 지휘자가 왔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생활오케스트라에 나갔는데, 첼로를 보는 순간 짜증이 확 나서 나도 모르게 첼로를 째려보고 말았다.
생활오케스트라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단원들이 필자를 따돌리는 느낌, 생활오케스트라에서 나갔으면 하는 느낌이 피부에 닿을 정도로 느껴졌다. 예를 들어 카톡이 있는데도 가입을 시켜주지 않는 등이다. 가만히 생각해서, 첼로 단원이 다른 단원들에게 말을 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동안의 일들이 이해가 다 되었다. 그래서 카톡에다가 물론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고 '말을 하지 말라'고 글을 올렸다.
그 다음 날 일어난 일이다. 다가오는 5월 5일 어린이날 공연이 잡혔다고 발표가 되었다. 그래서 수업 중에 작은 소리로 리코더 소리를 마추어서 같이 불자고 오케스트라 부지휘자에게 말을 건넸다. 순간 오케스트라 부지휘자가 필자를 쨰려보면서 고함을 쳤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리를 크게 쳐서 필자는 깜짝 놀랐다. 이어서 지휘자도 한 마디 거들었다. 필자는 공연이 잡혀서 걱정이 되어서 말했을 뿐인데, 그래서 개인 카톡으로 이유를 물었다. 답이 오지 않아서 이틀간 시간을 주고 답을 달라고 재차 요청을 하였다. 그랬는데도 답이 오지 않아서 약속한 대로 카톡에다가 부지휘자에게 공개질의를 하였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했다고 생각한 부지휘자는 필자의 글에 충격을 받은 모양, 카톡을 나갔다. 그러자 거의 모든 단원들이 따라서 나갔고, 필자에게 오케스트라를 나가달라고 요청이 온 상태에 까지 이르렀다.
일이 이 상황에 이르자, 필자는 그동안의 일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첼로단원이 싫은 이유가 무엇일까. 겉으로 드러난 것은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 자신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그 이유를 살펴서 해결하지 않고, 지휘자나 실세 등등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대상을 제거하는 방법, 보통사람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방법이다. 더불어 단지 의견을 낸 것뿐, 의견은 누구나 낼 수있는데, 그렇다고 나가라고 다른 사람을 동원해서 협박한다는 것도 누구나 할 수있는 방법이 아니다. 또 겉으로는 모른 척, 내색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서 상대를 제거하는 방법, 소위 뒤통수를 치는 방법은 뒷골목에서나 하는 방법이다. 짐작하기에 첼로단원이 이런 경우를 많이 당했을 듯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했을 경우 그런 방법을 쓰면 쓸수록 그런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 예민해 져서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연히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모든 문제는 거의 대부분 내가 원인을 제공한다. '내 탓이다'.
그래서 생활오케스트라를 그만 두겠다고 마음정리를 하고 가만히 살펴보았더니, 실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첼로 단원의 기운, 에너지가 어두웠고 습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답답한 기운도 그 여자를 감싸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오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한 대응의 기운이 그 여자를 감싼 때문인 듯하다. 나아가 첼로단원의 에너지가 그러므로 첼로단원이 가는 곳은 그렇게 어둡고 침침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것이 필자가 그 단원이 싫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문제는 이 기운을 스스로 알기도 어려울 것이며, 또 나아가 이 기운을 없애는 것 또한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이다. 먼저 말하면 불가에서 말하는 참회의 절을 아주 많이 해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를 돌아보고 점검하였다. 필자는 따돌리는 기운을 느껴도 그냥 무심히 지나치거나 크게 유념하지 않는다. 만약 확실하면 대응은 하지만, 먼저 어떤 일을 작업하거나 할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이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 일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복수하는 일 등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영혼이 하는 일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일이다. 문제는 영혼은, 이런 일에 매몰되어서 자신은 자신이 하는 일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들어 첼로 단원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복수를 하는 행동, 느낌, 사고가 첼로 단원의 영혼이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영혼이 하면서도 영혼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다. 만약 영혼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안다면, 그렇게 하지말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영혼의 바탕체인 아스트랄체가 그렇게 변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영혼이 하는 행동, 느낌, 생각에 따라서 나의 아스트랄체의 기운, 에너지가 그렇게 변한다.
우리가 서로 다른 장소에 가면 서로 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예를 들어 열심히 공부하는 학교 교실이나, 어떤 클럽(다소 퇴폐적인 곳)에서 서로 다른 에너지를 느낄 수가 있다. 이 에너지가 아스트랄체이다. 아스트랄체는 구름처럼 인간을 감싸고 있으면서 인간을 안팎으로 드나든다. 아스트랄체는 영혼의 바탕체로, 영혼이 하는 일은 아스트랄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행동 , 느낌, 생각에 따라서 아스트랄체의 기운이 변하는 것이다. 교실과 클럽의 느낌이 서로 다르듯이 사람도 그와 같다. 하지만 느끼기는 어렵다. 느낄려면 인간의 고차적 기관이 먼저 발달해야 한다. 아스트랄체가 변해서 저차자아에서 고차자아(정신자아)가 된다. 따라서 영혼력이 향상될려면 아스트랄체가 발달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을 감싸는 아스트랄체의 기운이 변하고 변한 기운에 따라서 영혼이 영향을 받는 것이 업 카르마이다. 아스트랄체는 주위를 드나들므로 주위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첼로 단원이 가는 곳은 항상 그런 기운에 감싸이고, 결과 어둡고 침체되는 것이다. 결론은 아스트랄체가 그렇게 형성된 것은 그동안 저지른 자신의 업인 것이다. 필자가 다시 오케스트라에 나가면서 힘이 빠지고 재미가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새로 온 지휘자 선생님의 기운을 보았다. 그랬더니 그러지 않아서 지휘자 선생님의 기운에만 연결해서 지내고자 마음을 먹은 것도 기억이 났다. 발전하는 기운, 창조적 기운은 밝고 가볍고 긍정적이다. 이렇게 한 단체의 장, 교사의 기운이 단체를 감싸므로 단체의 장의 기운은 매우 중요하다
결론은 내게 닥아오는 어려움은 꼭 그만큼 어려운 만큼 뭔가를 깨닫기 위해서 닥아온다는 것이다. 받아들여서 어려움이 주는 의미, 정신을 파악해야 한다. 물론 당연하게 그 당시 질문에 대한 답을 줘도 내가 파악할 수준이 안되면, 그 수준이 될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내 잠재의식, 무의식에서 끊임 없이 그 답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를 조금 과장하면 일상 사 모두가 정신에 대한 의미이다. 여기에서 답을 구하면 그 어려움이 눈 녹듯이 사라져 피해의식이라든가 절망감도 남지 않는다. 자신의 아스트랄체가 가벼워져서, 그런 기운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만약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면 파악하지 못했을 정신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필자의 아스트랄체에도 그런 감정체(?)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미워하는 감정', '왜 그렇니, 제발 좀 변해라', '그건 아니지 않니'하는 감정체가 덩어리를 이루어서 뭉쳐있다. 이 감정체가 계속해서 필자를 자극, 그런 상항으로 몰고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신세계에서는 그 여자가 곧 나이기 때문에 결국은 내가 나에게 화를 내기 때문에 그렇다. 이 감정체를 바꿀려면 만드는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일도 집착을 하지말고 무심하게 지나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리고 그런 감정에서 필자는 필자의 영혼을 얼른 분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