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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 박사의 반쪽 복음에 반론한다!
이상구 박사가 재림마을 사랑과 순결님이 자신을 향해
쓴 글에 대한 답변을 재림마을에 올려 달라고 해서
어느 분이 올렸는데 이박사 주장에 대해 반론해 보겠습니다.
[이상구 박사 글]
저도 님께서 열거하신 모든 심판에 관한 말씀들을 받아드리며
님께서 오해하시는 대로 제가 심판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나 화잇이 주장한 '조사심판' 곧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완성하신 것이 아니라는 내용을 저는 거부하고 상세히 조사한 결과
'완전성화'를 이룬 자들만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점을 저는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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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사는 사랑과 순결님이 쓴 모든 심판에 대한 말씀을 받아들인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사랑과 순결님이 어떤 심판에 대해 언급했는지
사랑과 순결님이 재림마을에 올린 글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지면 관계상 일부분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과 순결님의 글]
성경에 분명하게 심판 날이 있다고 하는데
왜 조사심판이 없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이상구 의사처럼 예수를 믿고 구원의 확신을 가진 사람도
심판을 받겠다고 벧전 4장 17절에 나와 있는데요.
벧전 4장 17절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로마서 14장 10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후 5장 10절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
계시록 14장 7절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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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 박사는 자신은 위에 언급한 모든 성경절의 심판은 믿지만
화잇이 주장한 조사심판은 믿지 않는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위에 사랑과 순결님이 인용한 성경절들은 화잇 뿐 아니라 재림교회가
기본교리와 신조로 믿고 있는 조사심판에 대한 근거 성경절들인데
이상구 박사는 이 모든 성경절이 언급한 심판은 믿는다고 한 것입니다.
나는 이박사가 이렇게 막연하게 주장하지 말고 위 성경절들이 성도들이
받는 조사심판이 아니라면 무엇인지 설명을 해 보기를 요청합니다.
1.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하는 “우리(사도 베드로를 포함한)가
먼저” 받는 이 심판이 무슨 심판인가요?
2. “우리(사도 바울을 포함한)가 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혹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행한 대로
받게 된다고 하는 이 심판은 무슨 심판인가요?
3. 세천사 기별 중 첫째 천사가 말한 ‘심판하실 시간’은 언제이며
그 심판의 대상은 누구인가요?
어디 성경에 성도들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이것뿐이겠습니까?
성경 66권 전반에 걸쳐 이 심판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시고 그 앞에 책들을 펴 놓고
성도들이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성경의 기록들과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장에 비유로 말씀하신 예복을 입은 사람과
입지 않은 사람을 심사하여 분리하는 심판 등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심판인 것입니다.
이상구 박사는 줄기차게 이미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이 완성된
성도들은 조사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을 했기 때문에 위의
성경절들에서 말씀하는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각각 드러나 심판을 받는다고 한
이 성경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은 채 무조건
화잇이 주장하는 조사심판을 믿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입니다.
안식일 교회가 믿고 가르치는 조사심판 교리는 화잇이 꾸며 만든
허황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며 그 모든
증거들이 바로 사랑과 순결님이 인용한 성경 구절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다고 공언하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여 저들이
공언하는 그 믿음의 진실 여부를 심사하여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조사심판에 대한 수많은 성경적 근거들을 무조건
무시한 채 조사심판이 마치 화잇이 만들어 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아닌 하나님의 믿는다고 공언하는 성도들을 대상으로
심판을 하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여러 번 언급하셨습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13:47-50)
이 비유에서 나오는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는 믿는 자들과
불신자의 대조가 아닌 믿는 성도들 중의 ‘의인과 악인’의 구분입니다.
이미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성도들 중 하나님께서 분별하셔서
‘악인을 의인들에게서 갈라내는 것’은 바로 조사하여 심판하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장에서 예수님이 친히 드신 혼인식장에서 예복을
입은 자와 입지 않은 자의 구분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성경에는
이렇게 성도들 중 알곡과 가라지, 슬기로운 처녀와 미려한 처녀,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 양과 염소 등 믿는 자 중에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 없는 자들을 가차 없이 심판하여 구원 받을
자들에게서 분리하고 걸러 내는 조사심판에 대한 말씀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이상구 박사는 이러한 성경적 조사심판에 대한 너무도 많은
성경적 사실들을 외면하고는 자신은 성경의 심판은 다 믿지만
화잇이 주장한 조사심판은 다음과 같은 사유로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 그러나 화잇이 주장한 '조사심판' 곧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완성하신 것이 아니라는 내용을 저는 거부하고,
2. 상세히 조사한 결과 '완전성화'를 이룬 자들만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점을 저는 거부합니다. (이상 이상구 박사 글 인용)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완성했다”는 말은 화잇 선지자가 성경에 없는
"조사심판"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에 반발하면서 이의를 제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성서적 표현으로 성경 어디에도 이러한 표현은 없을뿐더러
성경은 전반적으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의 완성과 완결은 주께서
다시 오시고 성도들이 구속 받은 이후임을 수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가장 많이 설파한 로마서조차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이 ‘행함’과 ‘순종’의 중요성을
성경 서론과 본론에 강조하면서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자들이 그 다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확실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과 마지막 장인 16장에서 이 편지의 서론과 결론은
“믿음과 순종”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롬 1:5)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롬 16:26)
이상구 박사는 로마서에서 언급한 ‘믿음과 순종’이라는 양면을
보지 못하고 ‘믿음’에만 올인 하면서 순종을 강조하는 재림교회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상구 박사가 ‘용서와 화목, 가라지와 알곡’이라는 주제로
최근에 한 설교중 로마서를 인용하며 주장하는 것을 유트브
동영상에서 그대로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상구 박사 주장]
롬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그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니”(다른 번역으로 보면 하나님과 화목 되었으니)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단순히
용서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 하느니라”(롬5:11)
자, ‘용서는 받았는데 과연 하나님이 화목해 주실까? 그것은 기다려 봐야
하겠네’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제가 말씀 드렸던 조사심판 사고방식입니다.
조사심판 교리는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정죄는 풀렸다 괘씸한 놈 벌은
줘야 되겠지만 벌만은 안주기로 했다 아직도 영생은 두고 봐야겠다
끝까지 철저히 조사해 봐야하겠다는 것이 조사심판인데 성경과 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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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구 박사가 재림교회의 조사심판을 이렇게 후안무치(厚顔無恥)하게
심히 왜곡시켜 전달하는 거짓말에 놀랄 뿐 아니라 어떻게 이런 거짓말로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지에 대해 의아할 뿐입니다.
우리 재림교회의 조사심판이 정말 이박사가 묘사한 저런 것입니까?
성경을 비틀어 곡해하는 거짓 기별자들과 무엇이 다릅니까?
이상구 박사는 그가 인용한 로마서 5장에서도 역시나 양면을 보지 못한 채
오직 한 쪽 면 만 보고 줄기차게 허황된 주장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가 인용한 로마서 5장 10절과 11절을 모두 다 인용해 보겠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롬 5:10-11)
이상구 박사는 위 성경절 중 롬5:10은 첫 문장만 인용하고 그 다음
문장은 살짝 빼놓고 지나가는 특유의 트릭(trick)을 쓰고 있습니다.
5장 10절 첫 문장의 “화목 되었은즉”과 11절의 “즐거워 하느니라”에
몰두한 나머지 그 중간 핵심인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는 철저히 외면하는 수법인 것입니다.
‘구원을 얻을 것’은 원어에 보면 “소데소메다”(σωθησόμεθα)로서
동사 직설법 미래형 수동태 1인칭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단어가 같은 로마서 5장 9절에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롬 5:9)의 “구원을 얻을 것이니”에서 나옵니다.
똑같은 “소데소메다”(σωθησόμεθα)인데 역시 미래형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은즉’은
과거형이고 이렇게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더욱 예수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미래형으로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에게 여전히 받을 구원이 남아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어가 아닌 한글로만 봐도 명명백백하게 나타나는 ‘받아야 할 구원’을
왜 이상구 박사는 철저히 외면한 채 “받은 구원”에만 집착할까요?
사도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더욱 넘치는 은혜’를
많이 강조하였으나 바로 이어지는 6장에서는 첫 구절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롬 6:1)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예수님의 피를 믿어 의롭다 함을 받은 은혜를 입은
성도들의 삶은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는 새생명 가운데 행하는
삶이며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롬 6:12)것을 엄중히 명하고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5)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론은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 6:22)고 말씀하는데 여기서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는 말씀에서처럼,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은 입으로만 공언하는
신앙이 아닌 ‘행하여’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는 것’이고 이러한
삶의 마지막이 곧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공언하는 모든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여 과연 저들이 공언한
믿음에 합당한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의 여부를 공의로우시며 한치도
틀릴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확인하는 절차가 바로 안식일 교회가
믿는 조사심판의 핵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그의 피로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가
죄 짓지 않는 삶을 통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고 여전히 우리를
다스리는 죄의 권세인 모든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는 때 곧 다시는
죄가 없고 죄의 기억조차도 영구히 도말되어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는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온전히 이루신 "속죄"의 완성인 것입니다.
이상구 박사는 로마서에서 반복하여 강조하고 결론적으로 말씀하는
예수의 피를 믿고 의롭게 된 자의 거룩한 삶, 죄와 싸워 이기는 삶,
죄 짖지 않는 삶을 강조하는 로마서의 핵심을 철저히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반쪽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6월 10일 과학기술대학교에서 나와 가진 공개토론회에서 마지막
청중들의 질의 시간에 이상구 박사의 광팬으로 제일 앞자리에 앉은
한 여집사님이 나에게 “나는 안식일에 교회 가지 않고 이제 등산을
가는데 참된 안식을 누린다”고 소리 지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던
그 모습이 아직도 내 눈에 아른거립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라는 하나님의 십계명의 말씀이
교회 안 가고 등산 가는 것으로, 예배 안 드리고 놀러 가는 것으로
둔갑을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반쪽
복음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상구 박사는 수 없이 ‘구원의 확신’을 강조하면서 재림교회는
이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게 한다며 그것이 재림교회를 떠난
이유 중 하나라고 강변하지만, ‘구원의 확신’은 이상구 박사 뿐
아니라 구원파 사람들을 비롯하여 칼빈주의 예정론을 믿는 다수의
장로교인들 심지어 박명호파나 개혁파나 사이비 이단들일수록
더욱 강력한 구원의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은 만인이 아는 바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정말 구원을 줄까요? 천천만만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확실하게 말씀하셨고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 7:22)라고
구원의 확신이 철철 넘쳐나는 많은 자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말씀하심으로 행함과 열매로 증명되지 않는 믿음의 허구성과
행함으로 입증되지 않은 구원의 확신이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은
사상누각(砂上樓閣)임을 명명백백히 밝혀 주셨습니다.
이상구 박사는 걸핏하면 하나님은 사랑이라면서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와 은혜만을 강조하는데 이것 역시 반쪽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철저히 양면으로 우리에게 제시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5-7)
여호와 하나님은 첫째,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와 진실이 많으시고 악과 과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우리 하나님은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시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 대까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성품이십니다.
이 양면을 보지 못하고 그 중 하나에만 치중하면 방종주의 내지는
율법주의자가 되는 것이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하나님의 품성 뿐 아니라 우리를 향한 복음 역시 철저히 이렇게
양면으로 나타나는데 이상구 박사의 경우는 철저히 한쪽 면만을
보고 강조하는 반쪽 복음만 알고 강조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6:22)와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12:14)가 성경이 한 번도 변함없이
말씀하고 있는 참된 복음이며 온전한 복음의 결론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히 12:14-16)고 강조하면서 이어서 후에 울며 구했으나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한 에서의 망령됨을 예로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받은 구원'은 경험했으나 '받을 구원'에는 실패할 자들이
많다는 것을 수없이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장은
오직 믿음으로 안식에 이른자들이 여호수아가
주지 못한 영원한 안식에 이르지 못할 자들이 있음을 경고하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을 통해 애굽에서 나왔으나
우상숭배와 간음과 주를 시험함과 원망으로 멸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례를 들어 설명하며 이러한
일이
말세를 만난 우리들을 위해 경계로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의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이것은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는
말씀과도 맥을 같이하는 균형 잡힌 성경의 복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의 균형 잡힌 양면이 성경복음의 본질인 것입니다.
이상구 박사의 반쪽 복음은 이러한 복음의 결론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요 15: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조사심판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자들 중에 누가 과연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를 맺었는지를 살펴서 열매 없는 자들을 제해
버리시고, 참된 성도들에게서 분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작업입니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심판하시나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가진 참된 성도들은
슬기로운 처녀, 착하고 충성된 종, 양, 알곡, 좋은 물고기 등으로 확증되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되는 것임으로 이 심판은 복음인 것입니다.
이상구 박사는 흠이 없는 백성들만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것에 기겁하며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신다”에 올인 하지만 그러한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구원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3)고 말씀하고 있다는
성경과 복음의 양면을 함께 보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조차도 철저하게 복음의 양면을 제시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로마서는
처음 시작부터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롬 2:6-8)는 복음의 양면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3)라고 로마서의 핵심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
느냐”(약 2:14)면서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 2:24)고 하신 야고보서의 복음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상구 박사는 이러한 복음서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품에 흠이 없는 자들을 조사심판을 통해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조사심판에 기겁하며 이것으로 인해 안식일 교회를 떠난다고 하신
이상구 박사는 사도 베드로가 말한 다음의 말씀을 유념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3-14)
첫댓글 법은 모세를 통하여 선포되었고 남은것은 법에 따라 조사하여 비교하고 법의 처분을 내리는 것이 남았으니 의인들은 당연히 법의 처벌을 면제하는 법적 과정이 있고 악인들은 법의 처벌을 집행하는 과정이 있는 것이지요. 십자가에서 죄가 도말되었다고하나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신 것이요 임시적인 것이지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그리하신 것이 아니니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법적인 공식절차를 통해서 최종 추인하는 법관같은 지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조사심판과 하늘성소에서의 봉사가 다 끝나기까지 확정된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상구 박사는 십자가에서 다 끝났다고 하는데 대체 뭐가 다 끝났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십자가에서 죄가 다 도말되고 미래에 지을 죄까지 다 자동 속죄된다면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만하면 자동적으로 성령에 충만해서 다시는 죄를 안지을 몸이 되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그 반대로 죄를 합리화하고 있는것을 보면 저들은 다 거짓말쟁이요 볼장 다본 자들이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결심자 이박사가 자주 애용하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다 이루었다"는 말씀을 오해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창세전에 죽임 당하신 어린양으로 인간이 범죄하면 인간을 위해
어린양으로 오셔서 죽으실 것을 평화의 의논을 통해 결정하셨고
구약 4천년 동안 예언하신 그대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범죄한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을 위한 속죄를
다 이루셨다는 말씀을 이상구 박사는 '십자가로 구원을 완성했다'로
둔갑 시켜서 이미 다 끝났는데 왜 심판을 하느냐는 식인 것이지요.
성경의 양면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는 곡해 현상인 것입니다.
이상구 박사나 개신교 지도자들이나 재림교 지도자들이나 많은 분들이 그리스도인의 완성을 꿈꾸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정신적 육체적 영적으로 완전한 그리스도인을 만들기 위한 꿈 같은게 있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 방법론에 있어서 많은 분들이 무지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 방법론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성령충만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할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교리적인 면과 현실적이고 실생활적인 면 두가지가 있는데 이 두가지 면에서 최고봉에 올라 지식에 통달해야 가능해질 것입니다.
일요일 개신교회에서는 교리적인 면에서조차 잘못되었고 이상구 박사도 그런 길로 가고 있으며 실생활적인 면이라면 건강사업인데 이상구 박사는 그것에서도 한참 부족한 형편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건축 하십니다.
십자가 사건은 교회의 머리가 완성된 사건 입니다. (모퉁잇돌, 머릿돌)
십자가 사건때부터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때까지 3000년간 이 모퉁잇돌 위에 교회가 건축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