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총리는 진보개혁진영의 부유세 논쟁과 관련해 “맛을 먼저 보여주고 필요성을 느끼게끔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재단법인 광장(이사장 이해찬)이 발행하는 계간 <광장> 최신호에서 스웨덴의 사민당을 12년 동안 이끌었던 페르손 총리를 만나 ‘당신네들은 어떻게 증세를 해서 복지정책을 잘 펼치느냐’는 질문에 “먼저 증세를 주장하다 쫓겨나면 맛도 못 보여 주고 쫒겨난다”고 대답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계간 <광장>은 지난 19일 광장 사무실에서 유시민 국민참여당 참여정책연구원 원장,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2011년 복지국가를 말한다’는 주제로 신념 특별 좌담회를 가졌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복지정책을 위한 재원 마련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으나 구체적인 정책 충돌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타진하면서 진보개혁진영의 입장을 좁혀가는 첫 걸음으로 진행됐다. 조승수 대표는 부유세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유시민 원장, 정세균 최고위원은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이정희 대표는 “우리가 실제 재원을 마련하려고 할 때, 국민들의 수용성도 있지만 새로운 세목을 만들면 당연히 헌법재판소로 갈 것이라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는 선에서 입장을 정리했다.
사회를 맡은 이 전 총리는 과거 국정 경험과 세금폭탄론 공세로 실패했던 참여정부 정책 사례를 거론하며 진보개혁진영 복지 정책 토론의 가이드라인을 짚어주는 역할을 했다.
이 전 총리는 “참여정부는 소위 ‘세금폭탄론’ 때문에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었다”며 “재원 없는 복지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런데 우리가 세심하게 보아야 할 것은 증세를 주장하다가 쫓겨난 정권이 많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리는 이어 “재원은 우리가 염출할 수 있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다”며 “우리나라 재정은 중앙정부가 300조 원, 지방정부가 100조 원으로 약 400조 원 정도 된다”며 국정 경험에서의 정부 재정 상황을 설명해나갔다.
이 전 총리는 “그 중에서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를 빼면 약 300조 원이 편성재원이다”며 “이 300조 원의 세출예산에서 5% 정도에 해당하는 15조원~20조원은 구조조정이 가능한 재원”이라고 밝혔다.
“세제만 엄격 집행해도 30조원 생겨…우리수준 맞는 재원 찾아야”
이 전 총리는 “또 세출 구조 중에서 토목분야에 잘 못 쓰이고 있는 재원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착공위주로 편성된 재원이 문제”라며 “먼저 착공을 하고 비용을 계속 편성하는 방식은 결국 재원이 분산되기 때문에 효율적이지도 못하고 금융비용으로 소모되는 재원이 많다, 이런 부분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재원이 최소 15조 원에서 20조 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아울러 “우리는 수출 위주로 국가재정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다 보니까 수출과 관련된 감세제도, 세액공제들이 대단히 많다”며 “임시투자공제세액을 비롯해서 다 합치면 30조 원 정도 되는데, 그 중에서 불가피하게 유지하는 것도 있지만 일몰시켜도 되는 조세감면 조항도 있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그것만 해도 최소한 절반 가까이는 가능하다, 이런 문제가 바로 정책 방향과 의지의 문제인 것이다”며 “새로운 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있는 세제를 엄격하게 집행만 해도 세출에서 15조 원, 세입에서 15조 원 등 30조 원은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부자증세’라고 말하면 부자들에게는 공격적이 된다”며 “실제 개인 소득세는 증세할 여지가 많지 않지만 법인 소득세는 여유가 있다”고 감세된 법인세율 부분을 지적했다.
그는 “먼저 이명박 정부가 낮춘 법인세율을 높여야 한다, 법인세율을 낮추는 것은 기업이 여러 나라에서 경쟁하려면 세제가 좋아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논리에 따른 것이다”며 “실제 이명박 정부에서 법인세, 종부세를 전부 합쳐서 연간 19조 원을 낮췄다. 그런데 법인세를 낮췄다고 해서 기업들이 투자를 많이 하나? 대기업들은 유보금을 더 많이 쌓아놓고 있다”고 MB정부 정책 실패를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또 “지금 우리 국방비가 245억 불로 GDP의 2.8%를 쓰고 있다. 독일, 프랑스는 GDP의 1.3%밖에 안 된다”며 “남북한 대립구조 때문에 60년째 쓰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평화체제를 구축하면 100억 불 정도의 군비 감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아울러 “교통시설특별회계의 경우도 10조 원 이상을 쓰고 있다. 이건 휘발유세를 중심으로 마련되고 있는데, 무한정 도로를 확장하는 것처럼 이 돈이, 돈을 쓰기 위한 사업에 많이 낭비되고 있다”며 “이처럼 세출구조조정을 통해서도 보편적 복지를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규모는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전 총리는 “현재 우리경제수준에서 필요로 하는 보편적 복지의 수준에 맞는 재원을 찾아야 한다, 현재 수준에서는 2008년도에 잘못한 조세제도를 복구하고 세출을 구조조정하고 1년에 3~4% 성장하는 경제규모에 맞추어 신규 세원을 확보하고 배분해 나가야 한다”며 “지금 정부는 제대로 실시를 안 하는데 참여정부 때에는 예산 총액을 부분별로 관리하는 예산실링제를 했었다. 그렇게 해나가면 현재 재원으로도 상당 수준을 채워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편적 복지 담론으로 당당히 보수세력 맞서자”
이 전 총리는 복지 논쟁과 관련 “복지는 국민부담하고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복지의 수요와 당면 요구를 인정하면서도 거기에서 선호와 경중, 완급을 어떻게 가릴 것인가가 핵심”이라며 “지속가능하지 않으면, 말하자면 중간에 포기하면 굉장한 공격을 받게 된다. 현실성, 지속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중요점을 지적했다.
이 전 총리는 또 야권 연대와 관련해 “현재의 재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분야, 가장 시급한 분야를 공유해야 나중에 연정을 할 적에 연대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며 “지금까지는 말로 연대를 했지만 구체적인 정책으로 확인하는 연대를 해야 한다, 정책 연대를 통해서 충분히 토의하고 경중과 완급을 가리는 합의절차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전 총리는 또 “이제는 권리로서 복지가 나온다, 그것이 정의다. 20%가 80%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고 그 20%까지를 포함한 기본적 권리”라며 “보편적 가치로써의 복지,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을 담지해 주는 기본적인 가치로써의 복지. 이런 부분들을 금년도에 당당하게 담론으로 정립해서 그걸 가지고 보수세력하고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거듭 “복지수요의 선후, 완급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복지수요가 여러 가지 부문에서 다양하게 나오는데, 현재 시점에서 국민들이 요구하는 가장 긴급한 수요가 뭐냐, 그리고 그것을 어느 정도의 완급으로 다룰 것이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며 “선후, 경중이 가려져야 그 다음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한 합의가 없이 나열식으로 나오니까 혼돈이 생기는 것이다”고 현재 진보진영내 복지 논쟁의 혼선을 지적했다.
이 전 총리는 “유럽의 진보정당들은 당 대회때 마다 강령을 조정한다. 기본 강령수준에서 주장하는 것과 당면과제 차원에서 제시하는 과제들을 정기적으로 정리해 나간다”며 “가령 증세문제는 강령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유지해 나간다. 당면과제는 선거를 앞두고 현실화시킨다”고 유럽의 정책 연대 사례를 소개했다.
이 전 총리는 “우리는 아직 원칙과 당면과제 사이의 조율 경험이 일천하고 일관되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우리도 계속 협의하고 서로 확인하면서 정리를 해 나가야 한다, 그 속에서 신뢰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노력을 일관성을 갖고 함께 해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보편적 공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공동 세미나를 개최하면 어떨까. 스웨덴, 독일과 같이 그동안 복지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나라들의 페르손 총리처럼 정책을 집행하고 이론을 뒷받침해주었던 분들을 공동으로 초청하면 어떨까”라며 “이분들과 함께 우리 사회의 새로운 발전 전망, 공동체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국제학술세미나를 추진하는 방안을 생각해보자”고 야4당 패널들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