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웃음내시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왕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웃음 내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웃음 내시의 역할은 임금에게 우스운 이야기를 해주거나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줌으로써 스트레스와 근심을 날려버리도록 돕는 것이었다. 고단백, 고지방 음식에 운동량 절대 부족으로 자칫하면 울안에 갇힌 돼지가 되어버릴 임금을 위한 운동 트레이너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쾌활하게 웃을 때는 우리 몸의 650개 근육 중 231개가 움직인다고 하지 않는가.
조선조의 이 웃음 내시가 변천에 변천을 거듭하여 현대의 개그맨gagman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셈이다. 알고 보면 개그맨의 어원이 ''가그만(그 사람이구먼)‘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설도 있다는데…….사실, 우리 선조들만큼 해학과 풍자를 즐기고 웃음으로 삶의 고단함을 털어낼 줄 아는 멋스런 민족도 없었다. 판소리의 재치 있는 가사와 김삿갓의 유머 넘치는 글을 보라. 임진왜란 때 백사 이 항복은 임금의 수레를 뒤따라 피난 가던 급박한 상황에서도 우스갯소리를 한마디씩 던져 중신들을 웃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 민족은 그렇게 웃음을 즐길 줄 아는 여유와 재치가 가득한 민족이다. 오죽했으면 우리네 어르신들이 기가 막힌 일을 만났을 때 먼저 하시는 말씀이 “허, 참!”이겠는가. 너무 어이없고 기가막히지만 “허허, 참 나!” 하고서 일단 웃고 지나가는 것이다. “왜 사냐건 웃지요.”라는 시인 김상용의 관조적인 고백이 거기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들은 왜 창호지에 구멍을 뚫었는가?
조상들의 웃음 세계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소소한 실생활 속이라 할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결혼 풍속이다.
옛날 우리네 이웃들은 신랑신부가 신방 차린 첫날 밤, 문에 구멍을 뚫고 훔쳐보며 킥킥대기 일쑤였다. 아무리 웃을 일 쫓아다니는 호사가들이었다지만, 하필 신혼 첫날밤을 맞이하는 신랑신부를 놓고 그토록 짓궂게 굴었을까? 오랜만에 눈요기 거리가 생겨서? 아니면 자신들의 아련한 옛일을 추억하느라?생각해 보라. 모든 남자는 나이가 어리든 많든 일단 신랑이 되면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신혼 첫날부터 심리적 부담과 강박증에 사로잡힐 수 있고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백이면 백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그 둘은 중매로 인해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던가? 친밀감은 전혀 없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심리적 거리도 좁혀지지 않는 상태에서 느닷없는 육체적인 결합이 가져올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신부는 신부대로 무작정 달려드는 신랑에 의해 정신적 충격을 받기 십상이다. 이것이 성 기피증과 신혼 우울증, 더 나아가 불감증의 원인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잘 알았던 선조들은 킥킥대는 웃음으로 신혼부부를 치료했던 것이다. 아무리 간 큰 신랑이라도 밖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데 무슨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속으로는 ‘에이, 씨’를 외치며 잠시 행동을 중단할 수밖에. 이제 좀 조용하다 싶어 신부의 옷고름을 향해 달려들면 또다시 웃음소리가 들리고……. 이러기를 몇 번, 그 사이에 신부는 남성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 생리적 준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웬만큼 시간이 지나면 구경꾼들은 자리를 비켜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용케도 요즘 성 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식후 30분의 원리(빈속에 강한 약을 집어넣을 수 없듯, 30분 이상의 충분한 전희가 필요하다는 뜻)’와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이렇듯 선조들은 웃음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정의 긴장을 해소시켜주고, 여유를 심어주어 그 탄생을 도왔다. 이런 것을 일러 우리는 ‘사회적 지원 시스템’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런 지원 시스템이사라지고 난 요즘은, 신혼부부들이 서로에게 쉽게 상처를 입고 입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혼여행을 떠나 별거여행으로 마무리되는 일이 잦은 이때에, 우리 선조들의 여유와 웃음이 새삼 그리워진다.
‘까꿍’과 ‘오로로로’의 지혜
우리 민족의 해학성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코드는 아기 놀이에 있다.
예부터 아이를 데리고 가장 많이 하는 놀이 가운데 하나가 ‘곤지곤지 곤지야’다. 검지 하나를 다른 쪽 손바닥에 대고 자극시키는 이 행동은 그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손가락으로 손바닥에 모인 신경조직을 자극시킴으로써 두뇌 계발을 촉진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도리도리 젬젬’도 마찬가지다. 아기들에게 목 운동을 시켜주되, 그것을 놀이로 승화시켜 웃음을 선사한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아기의 몸과 두뇌를 계발시킬 때도 놀이라는 수단을 통해 웃음까지 자아냈다는 점에서 매우 현명하고 탁월했다.
실상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베이비토크(baby-talk ; 유아들의 언어)가 잘 발달된 나라도 없다. ‘에비’, ‘때찌’, ‘지지’, ‘어부바’……. 세상 어느 나라 말에 이런 게 있는가? 그 가운데 대표적인 베이비 토크는 ‘까꿍’이다.
엄마 등에 업힌 아기를 향해 이모가 등 뒤에서 까꿍 하면 아이는 고개를 돌리고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린다. 또 반대편에서 까꿍 하면,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웃는다. 아기들은 이 놀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존재한다’는 대상영속성 개념을 터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만큼 까무러치게 좋아하는 것이다. 아주 인지적이고 정서적인 선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까꿍은 까꿍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갑작스런 까꿍 소리에 혹시라도 아기가 놀랐을까, 마음을 안정시키는 신호음 ‘오로로로’를 보낸다. “오로로로~” 하는 신기한 소리가 나면 아기들은 ‘이건 또 뭔가’ 하고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시선을 맞춘다. 그렇게 눈맞춤, 즉 아이컨택(eye contact)이 일어나는 순간, 또다시 ‘까꿍’ 하고 소리치면 웃음이 재차 폭발된다. 이처럼 짧은 순간에도 긴장과 축척, 그리고 폭발이라는 유머의 원리가 절묘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선조들의 놀라운 지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