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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현실교육비판, 그리고 이상적 교실
-소설‘풀꽃도 꽃이다’를 읽고
실로 귀하고 값진 소설을 만났다.
소설1,2권을 단 3일 동안 독파했다. 오늘날 걱정되는 교육현장의 묘사와 작가가 상상하는 이상적 교실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의 교단 47년, 우리 아이들과 제자들에게 잠재적으로 해악을 끼친 많은 일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교단 초년시절에는 열정에 떠밀려 학생들에게 가혹한 과제를 안겨주었고, 어느 정도 성숙한 중년기에는 수업방법의 유희에 놀아나기도 했고, 마지막 성숙기에는 제법 자기주도학습모형에 접근하며 동료들과 수업연구에 몰두하면서 자족자만에 빠졌던 게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최근 조정래 작가의 많은 글을 접하면서, 우리와 동년배이시면서도 그 탁월한 식견과 박식함에 감동하고 있다.
이번 책에서도 그렇다. 그는 분명 교육자가 아니었으되 교육자의 신념에 차 있으며 확고한 교직관을 가진 분이었다. 한국 교육의 지향점을 밝힌 작가의 염원에 우리 현장 교사들이 부응하여야 하겠다.
소설의 각 대목에서는 잘못 이해하면 오해하기 쉬운 대목도 보인다. 예를 들면 사교육문제가 모두의 책임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지나친 엄마들의 욕심으로 몰았고, 아버지들의 교육무관심과 가부장적 행태가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또한 사교육 현장의 어머니들에 대한 묘사가 지나쳐 모든 엄마들이 비뚤어진 교육열을 가진 게 아닐까 하는 우려와 함께, 남존여비 관행을 내비친 것(예: 여자애이고 하니까, 잘하면 좋지만 억지 부릴 건 없다는 식)같은 대목도 불편했다. 하나 더, 상위 수준에 도달할 수 없는 수많은 아이들까지 경쟁에 동원되기에 학생들이 불행하다는 지적에는 동의 하지만, 경쟁은 상위 학생들에게만 있으면 된다고 한 부분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다. 모든 학생들은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수준별로 자기 자신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경쟁없는 대안학교나 혁신학교의 모델이 최선으로 비치고, 일반학교는 교실 폭력과 지나친 학습 압력의 장으로 읽혀질 우려는 있으되, 소설의 주인공 강교민 선생의 교직 신념과 제자 사랑의 면면이 이상적 교실의 지향점을 제시해 주어 마음이 놓인다.
늦게나마 이 소설을 접하게 되어 다행이며 큰 소득이다. 이런 적나라한 교육현실 직시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두고두고 읽어보고자 다음 대목을 필사해 보았다.
<참교육의 실천가 강교민 선생님>
강교민은 아들 호준이가 오늘따라 더욱 사랑스러웠다. 고 2가 될 때까지 수학 1 과목을 빼놓고는 과외를 한 일이 없었다. 수학도 학원에 다니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아내가 살살 달래서 보냈던 것이다. 아내의 판단으로는 아무래도 수학 능력이 약하니까 초반에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내의 그런 판단은 주효했다. 수학 기본능력을 확보한 호준이는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수학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영어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아내와 함께 놀이하듯 배워나갔다. 아내는 지난날 영어교사였기 때문에 영어를 어떻게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교직생활을 통해서 사귀게 된 아내는 결혼하고도 맞벌이 교사를 했다. 그러다가 엄마가 되자 단호하게 교직을 버렸다. 아내는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외벌이 가정의 아이들보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이 훨씬 더 문제아가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신만 노력하는 현모가 되려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도 현부가 될 노력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자신은 아내의 그 요구에 기꺼이 응했다. 그건 어려울 것 하나도 없는 일이었다. 날마다 조금씩 짬을 내어 아들과 친하게 놀아주기였다. 그래서 아들이 젖먹이였을 때부터 안고 뒹굴고, 업고 뛰고 하며 아들이 한없이 깔깔 웃게 해주었다.
그렇게 친하게 노는 것은 아이만 즐겁고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어른도 그지없이 기쁘고 행복이 용솟음쳤다. 아이가 커가면서 놀이도 변하고,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몸 부딪고 지내다보니 으레 있게 마련인 아빠와 아들 사이의 간격이 없어지고 마치 친구 사이처럼 못하는 얘기가 없었다. 아내는 그런 절친한 부자 관계를 몹시나 좋아했다. 아빠의 그런 역할이 아들을 건강한 남자로 키우는 최고의 특효약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 효과 때문이었는지 어떤지 아들은 정말 건강하고 쾌활하게 자라나면서 공부도 재미있어 하며 해나갔다. 그런 아들 옆에서 아내는 엄마들이 흔히 말하는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늘 함께 공부하는 태도를 취 했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자살을 기도한 유지원 학생의 글>
나는 오늘도 자살사이트에 들어갔다. 나는 이 시간이 무지 겁나고 무시무시하다. 날마다 죽고 싶은 사람들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글들은 그냥 글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도 나고 피 냄새도 난다. 그리고 귀신울음소리도 들린다. 그렇게 끔찍스러운데도 매일 안 들어오고는 견딜 수가 없다. 나도 죽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 들어오면 꽉 막히고 꽉 눌린 것 같은 답답함과 갑갑함이 좀 풀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캄캄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좀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 엄마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이 여기 있다. 여기 보이는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엄마는 죽어도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마음에 맞는 사람 몇을 구하게 되면 그 날이 내가 떠나는 날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글을 올리지 못했다. 문구는 와따로 멋지게 짜놓았는데 자판을 두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용기만 없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 한쪽에는 죽고 싶은 마음과 똑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다 . 그렇다 정말이지 죽고 싶은 만큼 살고 싶다. 내가 죽으려고 하는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무서운 독재자다. 히틀러처럼 인정사정없는 독재자다. 엄마는 나를 서울대학교에 넣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이다. 그래서 나를 꼼짝도 못 하게 묶어 놓고 눈만 뜨면, 공부! 공부! 공부!를 외치며 윽박지르고 몰아댄다.
엄마는 나를 보기만 하면 쉴 새 없이 하는 말이 공부다. 엄마는 공부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 같다. 빨리 빨리 공부해! 더 공부 해!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 해! 딴 생각 하지 말고 공부 해! 벌써 공부 다 했다구? 지금 공부하니? 공부밖에 믿을 게 없어. 공부 안하면 찌질이 쪼다 돼. 그러다 언제 공부할 거니!
똑같은 말이 너무 너무 지겹고 지긋지긋 해 이제 미쳐 버릴 것만 같다. 나는 그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말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듣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학년이 바뀌는 것에 따라 점점 심해져 갔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면서 훨씬 더 심해지자 나는 엄마가 내 엄마 같지 않았고 싫어지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덤벼들고 싶었고 마구 소리 질러대고 싶었고 무엇이든 내던져 박살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아빠는 무지 기운이 셌다. 그리고 언제나 엄마 편이라서 무서웠다. 아빠는 팔씨름을 할 때 둘째손가락과 셋째 손가락 두 개만으로 나를 가뜬히 이겨버렸다. 그런 주먹에 한대 얻어 걸리면 골로 갈 게 뻔한 일이다.
엄마가 그다음으로 신나서 하고 또 하는 말이 있었다. 어쨌든 서울대학교에 붙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길이 고속도로가 된다. 서울대학교만 나와 봐라 세상사람 모두가 기죽고 척척 알아준다. 서울대학교를 나와야 큰소리 떵떵 치며 부자로 편케 산다. 암, 무슨 수를 써서든 서울대학교를 나와야지. 그래야 쉽게 출세하고 큰 권세를 잡는다. 엄마가 이런 말을 하고 또 하면서 내가 갈 대학을 서울대학교 법대로 딱 정해 버린 것은 내가 중학교 1 학년 때였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한테 목조이며 빡세게 공부해야만 했다. 엄마는 판검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서울대를 나와 대기업에 근무하니까 돈벌이는 잘 하는데 너무 기업주 앞에서 기죽고 세상이 알아주는 권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넌 판검사가 되면 누구 앞에서나 뻐길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되고, 부잣집 딸들이 줄을 서니까 저절로 부자가 되니 얼마나 좋으냐는 거였다.
엄마 말은 아주 듣기 좋았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러나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나는 서울대학교를 갈 머리가 못 되었다. 그 중요한 것을 모르고 혼자 신나서 헛꿈을 꾸고 있었다.
서울대학교는 머리가 최상급인 애들만, 전두엽이 금수저인 애들만 갈 수 있는 대학이었다. 키가 좀 작아도, 달리기를 유난히 잘 하는 애가 있고, 말소리는 별로인데 노래를 기똥차게 잘 하는 애가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런 애들을 당 할 수는 없다. 공부도 그렇다. 공부가 그냥 저절로 되는 애들이 있다. 영어 단어를 정리해서 2번 3번 쓰지 않고 그냥 똑 바로 쳐다보고 있기만 해도 머리에 쏙쏙 들어가는 애들이 있다. 그런 애들이 머리 좋게 타고 나서 공부를 쉽게 잘하는 애들이다. 공부가 재미있어서 한다는 그런 애들은 한 반에 한두 명 정도씩 있다. 그 A급 애들이 서울대학교를 가는 것이다. 그 아래 영어 단어를 두 번 세 번 써봐야 머리에 들어가는 B급이 있고, 네 번 다섯 번 써야 하는 C급이 있고, 여섯 번, 일곱 번 써야 하는 D급이 있다.
나는 B급 정도일 뿐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걸 모른다. 내가 A급이라고 딱 믿고 있다. 그리고는 날마다 학원 뺑뺑이를 돌려댔다. 그러나 그건 아까운 돈만 없애는 헛수고고 바보짓이다. 내가 한숨도 안자고 매일 24시간씩 공부를 해도, 저절로 공부가 되는 A급의 애들은 영원히 따라갈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애들도 고액 과외를 빡세게 해대기 때문이다. 엄마는 그걸 모른다. 그 차이를 모르고 자기 아들이 머리 좋다고 생각 하고 서울대학교, 서울대학교만 외쳐댄다.
엄마한테 그 사실을 알려줄 수도 없다. 엄마는 믿지 않을 것이고 공부하기 싫으니까 쌩깐다고 드립다 구살이나 먹일 것이다.
그리고 판검사라는 것도 그렇다. 나는 그게 싫다. 엄마가 보여준 법전이라는 건 국어대사전만큼 크고 두꺼웠는데, 그 안에 가득 찬 법 들을 달달 외워야만 사법고시에 합격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가위눌린다. 질린다. 나는 외우는 게 완전 싫다. 그래서 꼬박꼬박 단어를 외워야 하는 영어도 짜증나고 성적도 잘 안 오르는 것이다.
엄마는 그런 것 하나도 모르면서 나한테는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엄마 마음대로 이것저것 다 정해 버린 것이다. 그게 말이 되냔 말이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아빠다. 무조 건 엄마 말에 좋아, 좋아 찬성을 해버리는 것이다. 좋지, 좋아 우리 아들이 서울대학교 나와서 판검사 나으리 되시면 가문의 영광되고, 이 아빠 체면 쫙 서고,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지. 그래 우리 아들 힘내서 열심히 해라. 아빠와 아들이 서울대학교 출신 동문이 되는 거, 그거 참 폼 나고 낯서는 일이다. 지원아 가문의 영광을 만들어라. 아빠가 술 취해 이렇게 외쳐댈 때면 더욱 죽고 싶어진다.
그런데 또 하나 신경질 나는 게 있다. 누나 얘기다. 딸은 이화여대 합격시켜 부잣집에 시집가 편히 살게 내 할 일 절반은 성공 시켰다. 너도 누나처럼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열심히 해. 서울대학교는 문제없으니까. 아빠 서울대학교, 아들 서울대학교! 이보다 더 보기 좋고 멋진 그림이 어딨냐? 넌 아빠 머리 다 닮았으니까 서울대학교 합격은 틀림없어. 엄마는 이런 말을 할 때 너무 신바람이 난다.
그러나 엄마는 이것도 잘못 알고 있다. 나는 아빠 머리를 닮은 게 아니라 보통 대학을 나온 엄마를 담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영어 단어를 두세 번씩 써야 하는 B급이 아닌가.
나는 판검사가 되기 싫은 대신 딱 되고 싶은 게 없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 다른 아이들도 거의 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직 중3일 뿐이다. 나는 기막히게 멋진 영화를 보면 영화감독이 되고 싶기도 하고, 전혀 미남으로 생기지 않고 평범한 얼굴인데 눈물 나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를 보면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고, 환장하게 갖고 싶은 멋진 자동차를 보고 있으면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고 싶기도 하고, 스릴이 기막힌 컴퓨터 게임에 취하다 보면 게임 설계자가 되고 싶지도 하고, 여행비를 벌어가며 세계 일주 여행을 한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보다 보면 그런 여행가가 되고 싶기도 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를 만큼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러나 엄마 앞에서는 그런 마음을 꽁꽁 숨겼다. 엄마가 알면 죽이려고 할 테니까.
내가 끔찍스럽게 무서운 건 중3인 지금도 숨 막히게 하는데 앞으로 고등학생이 되면 얼마나 더 심할까 하는 걱정이다. 생각만 해도 몸이 오그라들고 부들부들 떨린다. 나는 지금보다 더 심하게 당하면서 살아갈 자신이 없다. 지금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죽을 수밖에 없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나를 감시해 왔다. 딴 짓 하지 못 하게 하려고, 한 밤 중에 공부를 하다가 뒤가 이상해서 돌아보면 소리 없이 열린 문 사이에 엄마 얼굴이 끼어 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심하게 놀랐는지 모른다. 그럴 때 엄마의 얼굴은 엄마가 아니었다. 무슨 무서운 괴물 같기만 했다. 앞으로 엄마가 점점 더 무섭게 변해가면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러니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나는 죽어야 한다.
그러나 죽으려고 생각하면 이 나이에 죽는 게 너무 억울하기도 하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지도 못하고 죽는 게 정말 억울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 하게 살아보고 싶다. 그러나 독재자 엄마가 그걸 허락할 리 없다. 그러니까 죽어야 한다.
나는 죽는 게 무서워서, 살고 싶어서 오늘도 사이트에 내 글을 달지 못하고 물러난다. 나는 살고 싶다. 근데 엄마가 사자처럼, 악마처럼 무섭게 버티고 있다. 그러니 죽어야 한다. 나를 도와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아빠는 돈만 열심히 벌어 엄마한테 바치는 찌질이일 뿐이고 누나는 남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세상에 나 혼자 일 뿐이다.
<강교민 선생님의 국어 시간>
코스모스가 피면서 여름이 가고, 들국화가 피면서 가을이 왔다. 코스모스가 지면서 가을 이 깊었고, 들국화가 지면서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정의 무성했던 느티나무 잎들도 가을빛을 머금다가, 황금빛으로 물들다가 이제 서늘한 바람결을 타고 잎들이 분분히 낙엽지고 있었다.
깔깔하면서 청결한 느낌의 느티나무 단풍이 바람결을 타고 흩날리며 떨어지는 모습은 가을 정취의 절정이었다. 슬픔이기도 하고, 사무침이기도 하고, 서러움이기도 하고, 고적함이기도 하고, 그리움이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텅 빈 공허하기도 한 그 감정. 그건 깊은 사색의 길이고 자아 발견의 여로이기도 하다.
강교민은 창가에 뒷짐을 지고 서서 그 낙엽 흩날리는 정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이 만들어내는 침묵에 학생들도 조용히 창밖 멀리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가을 국어시간다운 고요가 교실에 가득했다.
-우리는 한평생 보름달을 몇 번이나 볼까? 우리는 한평생 저 낙엽 지는 길을 몇 번이나 걸어 볼 수 있을까? 오늘은 뒤에 나오는 시 공부를 앞 당겨서 한다. 모두 아무 것도 갖지 말고 저 운동장으로 나간다.
강교민은 나직하게 말하고는 앞장섰다. 학생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자아, 벤치 모자라니까 아무 데나, 낙엽 위에 그대로 앉아. 꼭 벤치에 앉으려고 하는 인간은 가장 운치 없는 위인이다.
낙엽 지는 느티나무 아래서 강교민이 웃음 어린 얼굴로 학생들에게 말했다. 벤치 자리를 다투던 네댓 명의 아이들이 재빠르게 흩어졌다.
-여기 있는 시들은 돌아가면서 한 편씩 낭송한다. 시는 읊는 것이다. 소리 내어 몇 번씩 읽으면서 그 의미가 마음에 젖어들고, 읊을수록 더 의미가 더욱 깊게 마음에 새로 마음에 아로새겨지고, 문득문득 무의식중에 읊조리게 되는 시, 그리고 평생 마음에 간직 하게 되는 시, 그런 시가 좋은 시고 명시다. 여기 있는 시들은 그런 시라고 생각 해 선생님이 고른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은 그냥 제쳐 놓으면 된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여러분 자유니까. 시낭송은 무슨 법칙이나 요령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느낌 자기의 감정 자기의 기분대로 읽으면 된다. 그런데 자꾸 읽다보면 시인의 감성과 일치하는 어느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게 시 감상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때의 기쁨이 곧 문학의 감동인 것이다. 그리고 시낭송을 잘 하는 사람들의 낭송을 듣다 보면 새롭게 감동하는 때가 적지 않다. 그건 그 낭송가의 감정이 시인의 감정과 합일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 중에서도 그런 낭송자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그건 낭송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한 특권이다. 자아, 그럼 선생님이 먼저 한 편을 낭송하도록 하겠다. (시 낭송)
낙엽은 서늘한 바람결을 타고 쉴 새 없이 흩어져 날리고, 그 고운 잎들의 현란한 난무 사이사이로 시는 흐르고, 예리한 감수성이 번뜩이는 열여덟 청춘들은 시심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
강교민은 A4 용지 묶음을 맨 앞의 학생에게 건냈다. 그 학생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읽기 시작했다. 그다음 학생이 조지훈의 ‘승무’를 읽어 나갔다. 여름 내내 무성한 잎들로 크고 큰 원형의 그늘을 드리워 쉼터를 만들어 주었던 느티나무는 이제 꽃 못지않은 아름다운 낙엽들을 한없이 뿌려주며 깊은 사색의 마당을 꾸며 주고 있었다.
그다음 학생이 소월의 ‘진달래 꽃’을 이별의 슬픈 감정이 넘쳐 나도록 열렬하게 낭송에 나가고 있었다.
강교민은 살얼음을 걷듯 느티나무 원줄기 쪽으로 살금살금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한 아이가 편한 소파에 몸을 부린 듯 느티나무에 기대 잠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토론 수업의 정석>
-자아, 오늘은 지난 시간에 예고한 대로, 세종대왕께서 만약 한글을 창제 하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하는 점에 대한 토론 수업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이 자유롭게 자기들 의견을 제시하고, 그 의견에 대한 반대의견도 활발하게 제시하여 다양한 생각들이 여러분의 사고력과 논리력을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국어 선생이 수업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 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잠시 침묵하다가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이 손으로 지정하며 발언권을 주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그 복잡 하고 어려운 한문을 배우느라고 골 빠개지는 고생들 하고 있을 것입니다.
-예, 아주 정확하게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이 학생의 발언에서는 꼭 고쳐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친구들끼리 사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별 문제가 안 되겠지만 이런 공식 석상에서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는 비속어, 즉 ‘골이 빠개지는’같은 말은 써서는 안 됩니다. 그 것은 자기 자신의 인품과 교양을 낮추는 것인 동시에 듣는 사람들의 인격까지 모독 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실수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으므로 여러분 모두가 기억하기 바랍니다.
선생님이 언어순화에 대한 지도를 했다.
-예, 한문 공부하느라 애는 애대로 먹으면서, 중국 사람들한테 아주 무시당했을 것입니다. 자기 글자도 없는 것 들이라고 말입니다.
-예, 그 지적 또한 아주 좋습니다.
선생님이 또 호평을 해주었다.
-예, 그뿐만이 아니라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전체를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소리를 해댈 수도 있습니다. 동북공정을 해서 우리의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까지도 자기네 중국 역사라고 억지소리를 해대는 것을 보십시오.
-예, 아주 기발한 상상력입니다. 동북 공정을 이해하고 있고, 그것을 이 문제에 연결시켜 생각을 확대하는 것은 아주 창의적인 발상입니다.
선생님이 높은 평가를 해주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한문을 썼더라면 중국과 훨씬 더 가까워져서 경제발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런 가능성도 생각 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 현실과 직결되는 그런 상상도 의미 있습니다.
선생님은 생각마다 긍정적 요소를 찾아내려 하고 있었다.
-우리의 한글이 없이 지금까지 한문으로 써 왔다면 우리는 당당하게 독립국가라고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옛날에 중국에 조공을 바쳤던 때처럼 속국 비슷한 취급을 당하는…, 그러니까 뭐랄까, 저어…, 전부는 아니고 반쪽이나, 그 반쪽이 식민지 같은 상태…, 제가 무식해서 그런 걸 뭐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는데…, 무슨 식민지 같은 취급을 당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비참한 상태를 완전히 벗어나 당당한 독립 국가로 폼 잡게 해준 것이 한글이고, 그런 한글을 만들어주신 세종대왕님의 위대한 업적에 우리는 두고두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아, 오늘의 최고의 논리적 의견입니다. 우리 다 같이 유지원군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 줍시다.
선생님을 따라 학생들 전체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유서 아닌 유서를 그렇게 길게 썼던 유지원은 그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생들의 열렬한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유지원의 앞뒤에 앉은 아이들이 홈런 타자에게 보내는 축하처럼 유지원의 머리에 꿀밤을 먹여댔다. 선생님은 아이들의 그런 장난을 바라보며 꾸짖지 않고 행복 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여러분 아까 지원 군이 이름 붙이지 못했던, 무슨 식민지 같은 취급을 당하는 것, 그것에 대해 어떤 명칭이 있어야 하는데,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이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천천히 눈길을 돌렸다. 학생들은 깊은 침묵으로 잠겨 들었다.
-그건 영토를 빼앗긴 것은 아니고 문자를 통해 정신을 빼앗기는 상태니까 그걸 문화식민지라고 하는 겁니다. 문 화 식 민 지.
선생님은 학생들의 머릿속에 새겨 넣듯이 한 자, 한 자씩 또박또박 발음했다.
<대치동 학원가의 야간 풍경>
대치동 학원가에 놀란 외국인 네 사람이 있었다. 하버드대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교육 실태를 탐방하며 한국에 온 것이었다.
-우리는 여기 대치동을 비롯한 학원가를 둘러보고 나서 그동안 풀지 못했던 큰 수수께끼를 풀었다. 그게 무엇이냐면 우리 하버드대학교에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이 하나같이 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밖에 나오지 않았던 이유다. 수업 시간에는 꼬박꼬박 나오는데 그 외에는 운동도 하지 않고, 동료들과 담소도 하지 않고, 봉사활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그들은 교재들을 외우느라고 사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우리는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왜냐 하면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해도 책을 다 외울 수는 없는 일이고 그건 지극히 어리석은 공부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책은 첫째 전체를 읽어 내용을 파악 하고, 둘째는 왜 그렇게 썼는가를 분석해 보고 ,셋째 나는 어떻게 쓸 수 있는가를 구성해 보는 것으로 바른 독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유학생들은 무조건 외우려고 드니 공부효과는 떨어지고 동료들과 담소를 안 하니 회화 실력은 늘지 않고, 책에 대한 평가나 독후감 받은 것을 쓰지 않으니 석 박사 논문 쓰기가 어려워져 70퍼센트 이상 학위 취득에 실패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 그들이 왜 그랬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주입과 암기는 한국 교육의 핵심이고 그들은 거기에 완전히 습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암기법은 한국 교육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래에도 직결된 문제라 생각한다. 한국은 일본식 암기교육으로 일본과 똑같이 선진국들의 기술을 모방해 가며 급속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이 그렇듯 한국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 돌파구는 서양식의 토론 교육을 동해 창의력을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한국은 그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이런 경고를 남기고 간지 3년이 되었지만 학원가는 불변의 암기교육으로 줄기차게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밤 10시가 되자 크고 작은 건물들은 일제히 학생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미끈미끈한 자가용들이 큰 길 양쪽에 늘어서기 시작했다. 서로 다붙듯이 촘촘하게 섰는데도 자리가 모자라 두 줄로 겹쳐 세우기 시작했다. 학원에서 나온 학생들이 민첩하게 자기네 차를 찾아 타고 떠나고, 떠나고 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교통순경이 요란하게 호루라기를 불어댔다. 그는 교통 단속을 나온 것이 아니었다. 분명 주차위반을 한 차들이 수백 대인데도 딱지를 떼지 않고 차량이 빨리 빠지도록 교통정리를 해주고 있었다. 고마우신 민주 경찰의 모습이었다. 수많은 차들이 도착 하고 떠나는 번잡 속에서 대치동의 밤은 활기차고 휘황하기만 했다.
(2017.4.1.)
첫댓글 엊그제 신문에 만족도 높은 직업 순위 10위가 발표 됐더군요. 순위 1위 판사가 되기위해선 강교민교사의 참교육에 공감하며 박수를 보내지만 대치동 학원가에서 치열하게 사교육을 시키는 엄마들도 이해가 되지요. 풀꽃도 꽃으로 사랑 받듯이 우리 자녀가 모두 행복하게 사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