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30)
- 핏줄
어미 잃은 칠대독자 ‘해걸’
열여덟에 청상된 옥실댁이
젖동냥 해가며 정성껏 키워
해걸이 열세살 되던 해
금강산에 다녀오겠다며
옥실댁과 함께 천리길 떠나
유 대감은 밤이나 낮이나 한숨이 떠날 때가 없다. 손이 귀한 집안의 칠대독자 손자놈이 한여름에 앓아누운 것이다.
발열에 구토에 하리(이질)까지 겹쳐 밥은 못 먹고 물만 들이켜니 네살 먹은 손자놈 해걸은 꼬챙이가 되었다. 용하다는 의원을 다 불러 보이고 이 약 저 약 먹여봐도 차도가 없더니 한달여 만에 겨우 열이 내리고 목숨을 건졌다.
어린 손자가 사경을 헤매다가 살아났으면 잔치라도 벌여야 할 판에 유 대감 댁은 또다시 눈물바다를 이뤘다. 병상에서 일어난 해걸이 다리를 저는 것이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살결은 백옥 같고 눈은 별처럼 반짝이는 해걸이 오른 다리를 저는 모습에 유 대감의 두눈은 눈물로 마를 날이 없었다. 어질고 인물 좋던 며느리가 해산하다가 이승을 하직해 제 어미 품에 한번 안겨보지도 못하고 유모 품에서 자란 손자가 저리 되다니! 지어미와 그렇게도 금슬 좋던 해걸 아비는 과거에 급제했지만 어미 없는 어린 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져 일부러 임지를 먼 곳으로 잡았다.
열여덟에 청상과부가 되어 친정살이하고 있는 아랫동네 옥실댁이 유모가 되어 지극정성으로 해걸을 키웠다. 젖이 모자라면 몇십리 길도 멀다 않고 해걸이를 업고 가 젖동냥을 했다.
해걸은 다섯살이 되자 건넛마을 서당에 다니게 되었다. 머리가 영특해 천자문을 한달 만에 떼더니 사자소학을 두달 만에 떼 훈장을 놀라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시퍼렇게 눈에 멍이 들어왔다. 유 대감이 연유를 묻자 장난치다가 학동 팔꿈치에 받혔다고 했다. 어느 날은 코피가 터져서 돌아오기도 했다. 하루는 무릎이 까지고 옷이 흙투성이가 된 채 돌아와 유 대감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옥실댁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다음 날부터 옥실댁이 해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당에 따라나섰다. 또래 학동들이 훈장만 보이지 않으면 절름발이라고 놀려대자 해걸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싸움판이 벌어지는 걸 보고 옥실댁이 상대편 학동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리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덟살이 되자 해걸은 서당을 빼먹고 뒷산에서 온종일 구름만 쳐다보고 집에 오는 날이 잦아지며 훈장의 회초리를 맞고 유 대감의 회초리도 맞았다.
열세살이 되던 해 봄날, 해걸은 음식과 술병을 들고 제 어미 산소에 가서 절을 하고 돌아와 유 대감 앞에 꿇어앉아 큰절을 올렸다. “할아버지, 금강산에 한번 다녀오고 싶습니다.” 유 대감은 그날 밤 곰곰이 생각했다. ‘그 다리로 천리길을 다녀오면 자신감이 생기겠지. 목젖이 튀어나온 걸 보니 우리 해걸이도 어른이 된 거야.’
이튿날 해걸은 단봇짐 하나 메고 집을 나섰다. 옥실댁이 동행을 했다. 유 대감은 혼자 온갖 상념에 젖는다. 봄비가 주룩주룩 내려도 걱정, 바람이 불어도 걱정…. 그러다가 땅의 기운을 받으며 답청을 하는 해걸을 상상하며 빙긋이 웃기도 했다.
한달이 지난 어느 날, 유 대감이 손자 돌아올 날만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옥실댁이 혼자 돌아왔다. 봄비에 늘어난 열두폭 계곡에서 발을 헛디딘 해걸이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 시신도 못 찾았다는 옥실댁 이야기를 듣고 유 대감은 기절했다. 넋이 나간 옥실댁은 그 길로 유 대감 집을 나갔다.
일년이 지난 초여름 어느 날 새벽, 집 밖에서 나는 소리에 유 대감이 대문을 열고 나가자 강보에 싸인 아기가 울고 있고, 멀리 여승의 뒷모습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유 대감은 고추 달린 아기를 안자마자 핏줄의 따뜻함을 느꼈다. 눈이며 인중이며 이마며 해걸을 빼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