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하루라도 군주가 없어서는 안 되는 법이오.
지금 선군 송목공의 아드님인 공자 풍이 정나라에 망명해 계십니다.
백성들도 송목공의 은덕을 잊지 못하고 있소이다.
우리는 마땅히 공자 풍을 모셔다가 새 주공으로 받들어야 할 것이오."
이제 모든 권력은 화독(華督)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모든 대부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화독(華督)은 사자를 정나라로 보냈다.
그 동안의 일을 정장공에게 알린 후, 공자 풍의 귀환을 요청했다.
정장공은 그 동안 원수처럼 지내던 송상공이 변을 당해 죽고
자신이 돌보던 공자 풍이 군위에 오를 것이라는 말에 크게 기뻐했다.
"이제 정나라와 송나라의 사이가 가까워지겠구나.“
정장공(鄭莊公)의 소감이었다.
이 말은 곧 정나라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공자 풍이 이 말뜻을 어찌 알아듣지 못하겠는가.
그는 정장공(鄭莊公) 앞에 엎드려 절을 올리며 눈물로써 맹세했다.
"보잘것 없는 목숨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군후께서 보살펴주신 덕분입니다.
이제 다행히 본국으로 돌아가 조상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이 은혜를 잊지 않고 대대로 정나라를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마침내 공자 풍은 11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송나라로 돌아와 군위에 올랐다.
이 사람이 바로 송장공(宋莊公)이다.
송장공(宋莊公)은 화독의 공이 큰 것을 인정하고
그를 국상(國相)으로 삼아 병권과 내정을 모두 맡기었다.
화독은 자신의 행동이 떳떳치 못한 것임을 알았던 것일까.
그는 재상에 오르자마자 송나라 대대로 내려오던 보물인 '고의 대정'을 비롯한 많은 보화를
주변 여러나라에 뇌물로 보냄으로써 송장공(宋莊公)과 자신의 지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이때의 일을 두고 후세의 사가들이 어찌 붓을 들지 않았을 것인가.
<춘추좌씨전>은 송상공 시해의 주모자인 화독(華督)을 다음과 같이 비꼬았다.
화독은 '고의 대정'을 노(魯)나라에 뇌물로 바치고, 또 제(齊), 진(陳), 정(鄭)나라에도 모두 뇌물을 보냈다.
이리하여 인정을 받고 송나라 재상이 되었다.
'고의 대정'이란 고 땅에 전해오는 발이 세 개 달린 커다란 솥으로, 은 왕조때 제작된 보물이다.
그런 귀중한 보물을 뇌물로 받침으로써 자신의 행실을 감추려 했던 화독(華督)의 사람됨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다른 사관은 뇌물을 받은 나라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춘추시대엔 임금을 몰아내고 죽이는 것이 예사였다.
일 년 사이에 노, 송나라에서 해괴한 일이 연이어 일어남으로써 그것이 비롯되었다.
모든 나라가 뇌물을 받지만 않았어도,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망친 불충한 자들이 어찌 기승을 부릴 수 있었겠는가.
임금을 죽이고 나라를 망치다
- 난신적자(亂臣賊子)라는 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또 어떤 이는 공자 풍을 없애려 한 송상공의 속좁음을 비꼬기도 했다.
송목공이 송상공에게 나라를 전한 것은 밝고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그런데도 송상공이 공자 풍을 시기하여 정나라와 원수가 된 것은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마침내는 신하 손에 죽고 공자 풍이 군위에 올랐으니,
구천에 가서 무슨 낯으로 아비와 형을 대할 것인가.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