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 속에서
인간들에 밟히며
잠을 깬다.
숲속에서 바다가 잠을 깨듯이
젊고 튼튼한 상수리 나무가
서 있는 것을 본다.
남의 속도 모르는 새들이
금빛 깃을 치고 있다.
(김춘수의 '처용' 전문, 시집 <처용>에서)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향가 '처용가'에 배경이 되는 처용의 상황을 알아야만 한다. 울산 지역의 바닷가로 순행했던 헌강왕이 짙은 안개 속에서 어려움을 겪자, 동해 용왕이 신력을 발휘해 그 안개를 걷어낸다. 동해 용왕의 부탁을 받고 왕은 용왕의 아들인 처용을 경주로 데리고 가서, 결혼도 시키고 벼슬도 내려준다.
하지만 이방인이었던 처용은 경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도성 곳곳을 다니며 떠돌게 된다. 어느 날 밤에 집으로 돌아온 처용은 자신의 방에서 아내가 다른 남자와 동침을 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고, 조용히 물러나와 '처용가'를 부른다. 그러자 처용의 태도에 감복한 아내와 동침했던 남자가 자신이 역신(전염병)임을 밝히고, 이후로는 처용의 모습만 보아도 접근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물러난다.
이와 같은 줄거리의 <삼국유사>의 '처용가 헌강왕조'에 나타난 이러한 기록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여기서 처용의 정체를 지방 호족(실력자)의 아들이나, 당시 국제 무역항이었던 울산에 정착했던 이슬람 상인이라는 학설 등 구구한 논의들이 미해결인 채로 남아있다. 처용의 정체를 밝히는 것도 의미가 있겠으나, 나로서는 이 기록을 볼 때마다 처용과 그 아내의 관계가 더 궁금해지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처용의 아내는 원치 않는 결혼을 했으며, 적령기에 접어든 만큼 이미 약혼자(혹은 애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란 작자는 밤마다 도성을 헤매면서 밤늦게나 집으로 돌아오는 상황이 지속되었을 것이다. 이미 그들 부부 사이에 결혼이 전제가 되는 상호간의 사랑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와 다른 남자가 동침하는 것을 보고도 처용이 조용히 물러날 수 있엇던 것이라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겠다. 훗날 사람들은 처용의 행동을 미화해, 아내의 상대를 역신으로 바꾸고 처용을 전염병을 퇴치하는 무당으로 만든 것이라 여겨진다.(향가 '처용가'에 대한 해석은 <옛 노래의 숲을 거닐다>에서 자세히 분석했다) 고려시대까지 전승된 처용설화는 고려가요 '처용가'로 확대되어, 전형적인 무당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어쨌든 처용은 당시 신라 사회의 이방인이었다. 이 작품은 이방인으로서의 처용의 형상을 시의 화자로 삼아, 현대시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하겠다. '인간들 속에서 / 인간들에 밟히며 / 잠을' 깨는 화자의 형상은 철저히 소외된 처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숲속의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는 처용으로 상징되는 화자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라 이해된다. 그리고 바다는 처용이 떠나온 고향의 모습이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거대한 마음을 상징하는 시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한 인간 군상들 속에서 경주의 권력층들에게 소외당하고 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건강하게 버티어 나가는 처용의 형상을 '바다가 잠을 깨듯이' 튼튼하게 서있는 상수리나무로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상수리나무는 안중에 두지 않고, 숲 속의 새들은 그저 부리로 자신들의 금빛 깃을 다듬고 있을 뿐이다. 인간들은 물론 새들에게조차 소외된 처용의 처지를 짐작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여전히 '젊고 튼튼한 상수리나무'로 비유된 화자는 자신의 자리에 굳건히 서 있을 것이다.
흔히 김춘수의 시를 '무의미의 시'라고 평가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시어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있어 자의적인 면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 역시 향가 '처용가'를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고 여겨진다. 이 시에 대한 설명도 역시 내 개인적인 해석일 따름이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