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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인비가 저술한 <역사의 연구>는 전체 12권으로 구성된 거질의 역사서이며, ‘도전과 응전’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역사를 조망하고 있다. 특히 그의 역사관은 하나의 문명을 발생과 성장 그리고 몰락과 해체라는 일련의 과정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식에 대해 그동안 적지 않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하나의 문명은 엘리트 지도자의 지도 아래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응함으로써 등장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새로운 환경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기를 멈추었을 때 쇠퇴한다는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역사서가 국가 혹은 민족 단위로 기술되는 것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 책은 <역사의 연구> 가운데 전쟁 관련 내용만을 따로 뽑아 발췌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전체 9장으로 구성된 내용은 긴밀한 구성이 아닌 일견 서로 독립된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완성된 저술에서 특정 주제만을 발췌했기 때문에 드러나는 특징이라 하겠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여기에 ‘발췌된 내용은 원래의 문맥에서 벗어나 있으며, 전쟁은 원 저작의 중심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 주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책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힘만을 믿고 전쟁에 치달을 때 어떠한 문명도 붕괴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를 비롯한 이 책에서 소개된 문명들은 주로 ‘군사주의’로 인해 패망에 이른 역사의 전개 과정을 다루고 있다. 군사주의의 채택으로 인해 어느 순간 강력한 힘을 자랑하게 되지만, 그것을 유지하지 못하고 끝내 붕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토인비의 역사관에 의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류 역사에서 ‘문명 붕괴의 가장 흔한 원인은 군사주의’에 있다고 강조한다. 즉 ‘군사주의는 한 지역 사회를 형성하는 국가들을 파괴적인 공멸의 싸움으로 내몰아 서로 충돌하게 함으로써 문명을 붕괴시킨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하나의 전쟁 기술은 모든 평화의 기술을 희생시키며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군사강국이었던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와 페르시아를 장악했던 아시리아, 그리고 징키스칸의 후예인 티무르 왕국의 예를 통해서 그들이 선택한 전쟁과 그로 인해서 점차 문명의 붕괴에 이르는 과정이 비교적 상세히 서술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비극적 결말을 이끄는 요인은 ‘승리의 중독’에 있다고 강조한다. 즉 대부분의 문명이 승리의 경험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힘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끝내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전쟁이 옳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예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벌어지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무역 갈등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갈등이 확대될수록 당사국들뿐만 아니라, 그 영향이 전 세계로 확산된다는 것도 당사자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길게 보지 못하고 단지 눈앞에 놓여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상대방과의 갈등을 확산시키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힘과 힘의 대결은 결국 어느 하나가 파괴되는 결과를 보고서야 끝날 것이며, 어느 한쪽의 파멸은 상대방에게도 결코 유리한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진단이라고 하겠다.
작금에 벌어지는 상황은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군사주의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힘의 과시는 결국 ‘문명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바로 토인비가 던지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바로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삶을 돌아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나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왔지만, 군사주의를 숭상하던 몇몇 문명의 구체적인 면모와 붕괴 과정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고 여겨진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계기로 훗날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를 완독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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