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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린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표지의 구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달리기를 즐기는 저자의 달리기 예찬론이라고 하겠다. 모두 42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그에 관한 다양한 생각들을 풀어내고 있다. 물론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모두 ‘달리기’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일관된 흐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저자가 42개의 주제로 목차를 꾸린 것은 42.195Km라는 마라톤의 코스를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저자는 첫 번째 항목에서 '달리기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그것은 삶의 한 상태'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언제부턴가 주위에서 마라톤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대개 주말에 개최되는 전국 각지의 마라톤 대회에 참석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처음에는 5Km 정도의 짧은 거리로 시작해서 점차 거리를 늘려가고, 마침내 완주에 목표를 두게 되엇다고 말하였다.그리고 참가를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실력과 함께 몇 번의 완주가 가능해지면, 완주 코스를 3시간 안에 주파하는 '서브 쓰리'를 이루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로 설정된다. 무릎이 부실한 나로서는 마라톤이 아닌 달리기조차도 조심스럽지만, 마라톤에 빠진 사람들은 대회 자체를 즐기고 달리는 것이 좋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저자 역시 아마추어 마라톤 주자로서 달리기를 즐기고, 그 결과 이 책을 집필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달리기는 자기를 넘어섬과 동시에 자기 안에 존재하기 위한 시도-유혹'이라고 정의하며, 저자는 '이 모험은 형이하학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책의 부제도 '형이하학적 성찰'이라고 달았을 터인데, 달리는 그 순간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 자체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지식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마라톤 코스의 길이가 정해진 이유에 대한 내용이었다. 1908년 런던 올림픽 당시 올림픽 코스였던 윈저 성 앞으로부터 올림픽 경기장까지의 거리가 42.195Km였기 때문에 이후에는 이 길이에 맞추어 마라톤 코스가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다양한 글감들을 소재로 취해서 각 항목의 에세이로 구성하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 그리고 니체와 푸코와 같은 철학자들의 명언을 소재로 하여 글쓰기에 관한 생각들을 풀어내기도 하고,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장면을 빌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마라톤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육상 경기에 참여했던 선수들의 일화를 예로 들어, 달리기를 통한 사회적 의미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목차에 제시된 각각의 항목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동일한 소재를 활용해서 자유롭게 펼쳐내는 저자의 '달리기 철학'만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달리기가 본질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세계는 우리의 발 아래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는 있어야 하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으며, 끝없이 달아나며, 찾아야 하는 다른 곳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기에, 저자에게 달리기의 존재 의미가 설정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달리기가 아닌 또 다른 취미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 말을 변형하여 자신만의 의미를 설정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마지막 항목에서 '달리기는 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며, '자기 자신에게 이기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지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반문을 던지며 매듭을 짓고 있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의 내용을 '하찮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달리기를 통한 자기성찰의 과정은 물론 그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 책은 달리기에 관한 저자의 생각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필 수 있는 기회였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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