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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留聲機)란 소리를 머물게 하는 기계라는 의미로, 녹음된 소리를 재생할 수 있기에 축음기(蓄音機)라고도 부른다. 소리를 기록하려는 노력이 지속되면서, 19세기 후반 발명가인 에디슨에 의해서 ‘완성형 유성기’가 제작되었다. 이후 그것이 상품화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며, 원형의 음반을 사용하는 개량형 유성기가 등장함으로써 ‘진정한 음향기기로서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은 일본을 통해 조선에까지 전해졌고, 20세기 초반 일제 강점기 하에서 다양한 유성기 음반이 제작되어 팔렸다고 한다.
이 책은 오랫동안 유성기 음반을 수집하고 연구해 온 저자가 유성기 음반을 통한 한국의 음반문화사를 정리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특히 유성기 음반 가운데 우리의 전통음악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왔으며, 틈틈이 수집한 고음반이 2천여 장에 이른다고 밝히고 잇다. 전통음악에 대한 기록은 드물지 않지만, 음반은 당시에 불렀던 음악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하겠다. 국내에서는 1906년 유성기 음반이 한곡을 수록하는 SP(Standard Playing) 형식으로 최초로 취입되었으며, 1960년대 여러 곡을 하나의 음반에 수록할 수 있는 LP(Long Playing) 음반이 등장함으로써 서서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후 활용 가치가 떨어진 유성기 음반들은 버려지거나 소실되면서 사라져갔지만, 1960년대 국악을 연구했던 이보형 선생이 수집하여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 저자가 고음반을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그렇게 시작된 수집의 결과 2천여 장에 이르는 유성기 음바늘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단순히 수집에 그치지 않고 이보형 선생과 함께 ‘한국고음반연구회’를 설립하여, 관심이 있는 학자들과 함께 우리의 전통음악을 연구하는데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체 8백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부는 ‘유성기 음반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유성기의 발명과 그것이 조선으로 전래되고 우리 전통음악이 취입되는 과정을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서 밝혀내고 있다. ‘유성기 음반과 사회’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초기 음반의 제작 과정과 전통음악의 취입 과정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역할, 그리고 그것이 당시 사람들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혹은 일제 강점기 하의 검열 등에 대해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제3부에서는 ‘유성기 음반 시대의 음악’이라는 제목으로, 당시에 제작되었던 유성기 음반의 구체적인 목록을 통해 전통음악이 어떻게 유지되고 전승되었는지를 살피고 있다.
비록 지금은 음악도 스마트폰을 이용해 음원 사이트에서 스트리밍을 해서 듣는 시대가 되어, 대중들에게 음반 하나에 한 곡씩 녹음하는 유성기 음반은 골동품처럼 인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에게는 당시의 음악을 그대로 재생하여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없이 소중한 자료임에는 분명하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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