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고속도로 미개통으로 수인산업도로를 이용한 수원의 출퇴근!
늘 교통대란으로 대형화물차 사이를 비집고, 때로는 혼잡을 피하기 위하여 농로 찾아 운전 하던 때가 비일비재하였다.
영동고속도로 개통 소식이 큰 반가움이였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시 교통 혼잡은 여전하다.
이 지옥 같은 출퇴근에서 해방되었다는 큰 기쁨!
인천전화국과 부평전화국 근무 경력에 이어 내 고향 위치한 주안전화국으로 발령이 큰 기대와 시간의 자유를 얻게된 기쁨으로 작은 마음이 요동쳐 온다.
첫 발령되던 날! 강재수 지부장이 정문에 나와 선배님 오심을 크게 환영한다고 환대한다.
잠시 첫 발령 사무실 들러 전입신고 후, 강지부장과 회담을 갖는다.
앞으로 배당될 우리사주!
이에 따라 사주조합 결성과 각 지역국에서 선출될 사주조합 대의원이 있을 것이라 귀뜸해 주며, 강지부장에게 지부활동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대신 사주조합대의원으로 나를 지지해 줄것을 조건으로 제시하였다. 그 제시안은 검토 없이 즉시 수용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6개월 지난 후 예측한대로 사주조합 대의원 선출이 있었다.
나의 꿈은 노동운동을 떠나, 틈틈이 노량진 고시원에서 2년동안 조야로 수강하였던 경영학 지식을 사주대표로써 적극 경영개입을 원하였지만, 강지부장의 배신으로 좌절 되었다.
6개월의 짧은 시간으로 백령도 전화국 및 신석분국과 주안본국 직원들에게 나를 인지 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하였고, 강지부장과 회사측 간부들의 경쟁 출마자에게 지원은 나의 꿈을 산산 조각으로 날려버렸다.
나는 그날을 기점으로 강재수 지부장 자리를 내가 앉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것이 나와 약속한 신뢰를 배신한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즉시 조직 작업에 착수하여 휴가 내고, 주말을 사이에 낀 가족여행을 핑자한 백령도를 방문하였다.
토요일 오후 관사에 체류중인 직원들을 불러내어 장산곶 보이는 해변에서 삼겹살 파티를 주선한다.
한두잔 이슬로 외로운 고도의 섬 근무를 위로하며, 현재의 노동조합이 조합원을 위한 노동운동이 아닌 권위적 활동을 문제점으로 부각시킴으로 동질감을 형성 시키는데 성공한다.
동기부여론을 잘 적용시킨 결과였다.
당시 본사 제도국의 문영일 국장 주관으로 신인사 제도(안)이 인재개발대전연수원에서 공청회로 준비 되어 가고있을 때였다.
김종성국장의 면담에서 공청회 참석을 자원하고, 며칠후 참석하여 자료와 주제자 토론 내용을 충분히 인식하였다
허울 좋은 신인사 제도(안)!
퇴근 후 직원들과 어울림 보다는 즉시 귀가하여, 내가 바라는 인사안을 구상하고, 기획 편집작업에 들어갔다.
우선은 회사측의 신안사제도(안)은 2개 직군(기술직군 과 행정직군 분류)을 존속 시키고 24개 직렬을 세분화하여 승진제한과 보직제한을 구체화(기능직렬과 일반직렬) 시킨부분을 이조시대 쌍놈과 양반의 회귀논란으로 비유시켜 맹비난을하였다.
통신시장의 경쟁화 시대에 걸맞지 않게 각 직원들의 미래 성장비젼을 저해하는 점을 크게 부각시키고, 왜정시대 세습되어 온 기능과 일반 분류로 발생된 유사직렬 통폐합 필요성과 개인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성장 반영시킬 인사제도(사회적 성장욕구 충족)의 필요성을 주제로 한 인사기획안을 137page 분량으로 체계화 시켜, 주안국장에게 검토 분석을 의뢰하였다.
3일이 지난 후 국장실에서 면담 자리가 형성되었다.
15일의 짧은 시간을 이용한 인사 기획안에 감탄하며, 국장은 혼자 투쟁의 위험을 강조하며,. 본인은 모르는 것으로 해 달라는 부탁과 세규합의 투쟁을 묵인하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조직의 새로운 동력 제공은 합당한 이슈와 공작적인 방법이있다.
즉시 누구나 보면 공감 할 내용의 이슈를 문장을 작성하여, TIOS(Telegram Inword Out system)을 이용하여 각국으로 전송시켰다.
전송 즉시 문의가 쇄도되고, 인사혁신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2,400여명이 동참의 뜻을 밝혀왔다.
전국의 체계적이 조직 결성을 위하여 각 사업 본부별 회장단 구성지침을 하달하고, 자진 운영비 후원을 지원 받는 방법으로 쉽게 20여일만에 전국 조직이 결성되었다. 이에 따라 전국회장단 첫 회의늘 광화문 모 식당에서 비밀리에 소집하고 전략을 논한다.
다음 날, 전국회장단을 대동하여 본사 제도국을 방문하고, 내가 작성하였던 인사기획안을 문영일 국장에게 제시했다.
꼼꼼히 읽어보는 문영일 국장의 표정은 수없이 일그러진다.
다 읽은 다음 본인이 추진하던 신인사제도(안)을 백지화 시킬것을 제안하며, 더 이상 확대하지 말고 이자리에서 종지부해 줄것을 부탁한다.
당일 계획은 제도국 방문 후 부사장과 사장 면담 순으로 추진할 계획이였다.
이로써 신인사제도안을 한번의 추진으로 백지화 시키고, 이 일과 연계한 노동운동계 실 진입을 위한 본격 설계를 한다.
후일 내 인사기획안이 참고 되어, 현 KT인사안으로 발전되었다.
어느 날, 사전 약속 없이 동창이였던 이xx대리가 집을 방문하였다.
숭의가든에 함께 꼭 참석하자는 제안이다.
참석 할 이유 없다 거절하니, 우리 동문 30여명이 모여 기다리고 있다고 성화이다.
할 수 없이 뒤따라 나섰다.
모여있던 30여명 동문들이 모두 심각한 표정이다.
총무과장이였던 조선배...회계과장이였던 송선배.. 후배 과장등...
그중 송선배가 대표하여 결집된 뜻이라고 나에게 전한다.
지부장 입후보를 포기해 줘야만이 동문들의 피해가 없고, 안정성이 확보 될 수 있으니 절대 입후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불응시 절대 우리 동문은 대동단결하여 강재수 현) 지부장을 지지하고, 강재수에게투표하겠다는 압박이였다.
순간 회사에서 노동운동권 진입을 방해하고, 우려하던 부분들이 동문까지 확대되어 압박해 옴을 느낄수 있었다.
국에 발령되어 최소 15~20년 정도는 직원간 인간 관계성을 유지성립시켜 놓아야 지부장 당선이 될지 말지한 그 때의 분위기에서 이곳 전입 경력이 불과 1년의 무모한 도전에 많은 망설임에서 동문들의 이러한 압박은 나에게 큰 타격이 될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와의 협상 제안을 먼저 배신한 인물을 두고 관망 할 때는 지났다.
두 발로 뛰기 시작하였고, 승기의 분위기는 차츰 성숙되어 그 감이 잡혀갔다.
주안본국과 신석분국의 개표 결과 압승!
그러나 강재수는 백령도 전화국에서 몰표를 기대하며, 역전의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나의 사전활동을 인지못한 강재수의 기대에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백령전화국 개표 결과가 곧 접수되었다.
조합원 43명 전원 투표에 43표 모두 노창호에게 표결! 북한의 투표도 아니였는데, 있을수 없는100% 지지였다.
회사의 극한 개입과 공작에 불구한 대승이였다.
이어, 인천소지역 명예산업안전관리감독관 초대 협의회장과 KTTU중앙위원회 의안심의워원직으로 노동운동 영향 범위를 확대해 가던중 나의 제2막 인생 길을 만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