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추억
권 미 현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그때는 아픔 이었다.
나는 청송군 진보면 이촌동 진성 중학교 사택 외딴 산속에서 살았다. 서무과장 일과수학교사로 근무 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우리 가족은 학교 운동장 아래로 온갖 꽃들과 과일나무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한 아름다운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가기위해 서는 40분 이상을 걸어 다녀야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갈 때는 이촌 이라는 동네를 지나
우리 집으로 간다. 초등학교 4학년인 내가 그 길을 통과 할 때마다 나보다 한살이 위인 깡마르고 얼굴이 까만 한 작은 남자 아이가 나타났다. 길가에 있는 자기 집 대문 앞에 앉아내가 지나 갈 때마다 돌을 던졌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그 길을 마음 놓고 지나가질 못하고 애를 태우며 괴로워했다 매일 내가 지나가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나를 향해 돌을 던지는 그 남자 아이 때문에 운적이 한 두 번 이 아니다 학교를 파하고 가방 정리를 할 때부터 기쁨 보다는 또 그곳을 지나야 한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가끔 그 자리에 남자 아이가 없거나 내 아버지가 지나 갈 때 같이 갈수 있는 날에는 너무나 홀 가분 하고 날아 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길을 지나가는데 남자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며칠을 지나도록 그 남자 아이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며칠 후 또 그 자리에 남자 아이가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은 돌을 던지지 않고 착한 얼굴로 와 보라고 했다 가까이 가는 것이 싫었지만 안 가면 또 돌을 던질 것 같아 용기를 내어 가 보았다. 손가락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고 있다 그러면서 어쩌다가 손가락을 다쳤는지와 집안 사정 이야기를 어린 나에게 털어 놓았다 그 남자 아이 아버지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주지 않아 다녀 본 적이 없고 술주정뱅이에 늘 때린다고 자신의 슬픈 현실을 털어 놓았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고물 자전거에 손가락이 들어가 손가락 하나가 절단 되었다고 했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때리지 않고 맛있는 과자를 사 주셨다며 때리지 않고 맛있는 과자를 사 준다면 손가락 하나가 더 잘려 나가도 괜찮다 고 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끔찍하기도 하고 그 남자 아이가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2년간 나를 괴롭힌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듣기만 했는데 그날 이후로 그 남자 아이는 대문 앞에 있어도 돌을 던지지 않았다. 얼마 후 나는 학교 가까운 진안 동 으로 이사를 했고 그 남자 아이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가끔 끔찍했던 그 때가 떠 오른 다. 손가락 하나를 잃어버리고 청소년 시절을 제대로 보내기나 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힘들었던 것을 생각을 하니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얼른 지워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