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어부의 아내가 못 되었는지//이른 새벽 통통배로 바다에 나가/미열 같은 안개를 헤치고/바다 한가운데로 가서//막걸리 몇 잔으로 붉어진/얼굴 같은 해가/중천에 떠오를 때//푸른 이불을 펼쳐 놓은 파도 위에/벗은 몸으로 태양을 끌어들이고/짠 입맞춤으로 출렁이는/당신과 나/돛이 날리는 쪽으로/엎치락뒤치락//당신의 거친 숨소리에 붙들려/타는 갈증을 흥건히 적시는 한낮/멀리서 통통배 뜨는 소리가/박수처럼 들려오고//낚아 올린 바다 것들 회 쳐서/입가에 벌겋게 묻은 초장을/손으로 스윽 닦아 먹으며/벗은 당신의 근육이 입술보다 더 실룩이는 시간//아, 나는 어부의 아내//저녁 찬으로 꿈틀대는 생물들/한 바구니만 챙겨 두고/나머지 것들/바다에 힘껏 던져 주고야 마는
「별들의 구릉 어디쯤 낙타는 나를 기다리고」(2023, 걷는사람) 부분
“네가 게 맛을 알아?” 아니, 아니지. “당신이 남편과 배에서 일하는 처지를 알기나 해? 육지라면 적어도 화장실 갈 때나마 떨어져 있을 수 있지. 손바닥만 한 배 위에서 종일 붙어있어 봐봐. 애틋함 같은 건 일찌감치 물 건너간다고 소설가 모 씨도 그랬어. 짠 입맞춤으로 출렁이는 당신과 나? 놀고 있네.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 아니야. 게다가 저녁 찬거리만 챙기고 다 바다로 돌려주면 자식새끼는 뭐로 먹이고 입히고 키우나?”
산소만 먹고 사는 여자 얼굴 좀 보자는 싸모님들, 잠시만 참아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여러분 말씀이 지당하고 말고요. 하지만 시의 화자도 나름의 사정이 있답니다. 그녀는요, 동네 사람들 죄다 깨우며 아파트 복도가 노래방이라도 되는 줄 아는지 날이면 날마다 술 냄새 담배 냄새에 절어 퇴근하는 남편을 둔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정주부랍니다. “제발 술 드시거든 아래층 아저씨처럼 조용히 들어오세요”라는 당부가 그녀의 십팔번 잔소리지만, 남편이란 양반은 어젯밤도 고래고래 유행가 한 자락 뽑으며 갈지자로 퇴근한 눈칩니다. “높으신 회장님께 호리낭창 허리 꺾어 조아리고/접대하느라 골프채 휘둘러서 기운이 다 빠졌을 텐데” 술 마실 기운은 남았냐고요? 아닌 게 아니라 “나뭇가지처럼 뻗어나는 아이들과” 그의 “어깨 어디쯤 얌전히 앉아 계시는” 노모와, “버겁게 늘어나는 대출 통장”때문인지, 그의 힘은 모조리 “허기로 이어”(「모과나무」)지고 있답니다.
사실 건국 이래 지금처럼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 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처럼 불행한 적도 없지 않나요? 수직 낙하하듯 낮아진 출산율에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이 바로 그 증거잖아요. 그러니 그녀가 “밤마다 웃통만 벗으면/야성이 폭발하는 구릿빛 근육과/갈매기 날개에 그득하게 감춰둔/연애편지보다 진한 시를 꿰찬//어부의 아내를”, “그런 애인을” 꿈꾸는 게 정말이지 잘못은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