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간지 게재 시
돌/ 한민복 / 조선일보
돌
함민복(1962~ )
매끈한 강돌이 있다
돌의 나이테는 돌 바깥에 있다
돌의 나이테는 닳아 없어진 만큼 있다
돌의 나이테 속에 돌이 있다
점점 시야가 흐려진다
"강돌에는 흘러간 물의 물살이 기록되어 있다. 빠르고 센 물살은 동의 얼굴을 매끈하게 만들었다. 나무는 나이를
알 수 있는 둥근 테를 몸 속에 만들지만, 돌은 나이테를 겉면에 새긴다. 작아진, 더욱 매끈해진 돌일수록 나이가 많
다. 점점 몸집이 작아지고 겉쪽이 반드럽게 되면서 돌은 고령에 이른다.
돌의 나이테는 무었일까? 시 '돌에'를 읽어보면 시인은 '돌에는/ 세필 가랑비/ 바람의 획/ 육필의 눈보라/ 세월
친 청이끼// 덧씌운 문장 없다/ 돌엔/ 부드러운 것들이 이미 써놓은/ 탄탄한 문장 가득하니' 라고 썼다. 아마도 돌
의 나이테 문양은 이들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닳아 없어짐의 기록, 그것이 돌의 나이테다. 낡고 줄어든 돌은 모질고 거친 세파를, 풍상을 보여준다. 돌에는 눈
이 점점 멀어진, 늙어 시력이 나빠진 사람이 살고 있다." 문태준 시인의 글이다.
*출처 조선일보 가슴으로 읽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