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8) 시 창작 초기에 나타나는 고쳐야할 표현들 - ⑦ 사실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 시인 도종환
⑦ 사실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
시를 쓰다 보면 욕심이 나게 마련이다. 더 잘 표현하고 싶고 더 적절한 비유를 만들어 보고 싶고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상상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것을 찾아가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사실과 다르게 표현해 놓는 경우가 있다.
성장이라는 단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뒤져볼까
그 속 어딘가엔 분명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주선하는
장기라도 있을까
만남 우혈관과 헤어짐의 좌혈관의 혈액이 감미로운
리듬에 따라 춤을 추다가 혹
장애라도 일으켜 좌충우돌로 뒤범먹되진 않을까
―‘자라기 위한 수술 준비’
이 시는 우리가 성장하면서 겪는 고통의 원인이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데서 착안하여 성장과정과 관련한 정신적인 개념들을 육체의 일부분과 결합해보는 기발한 착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몸에 좌심방 우심실 이런 이름은 있어도 좌혈관 우혈관은 없다. 상상력의 자연스런 전개는 얼마든지 좋지만 부정확하거나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한 부류의 오류가 시 전체의 결정적인 결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본 시 중에 이런 부분도 마찬가지다.
피는 물 위를 기름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원심분리기 속에서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흩어져 간다.
피는 물 위를 정말 기름처럼 흐를까 물과 기름은 서로 겉돌지만 피와 물은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시지만 사실에 맞지 않게 표현해서는 안 될 것이다.
* 여기 예로 든 시를 쓴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 아직 시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_저자 주
< ‘시 창작 강의 노트, 나를 바꾸는 시 쓰기(유종화 엮음, 새로운눈, 2019)’에서 옮겨 적음. (2020.08.26.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8) 시 창작 초기에 나타나는 고쳐야할 표현들 - ⑦ 사실에 맞게 표현해야 한다/ 시인 도종환|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