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으로 자신과 타인을 변화시키는 말”(이현수)
명언(名言)의 사전적 의미는 ‘이치에 들어맞는 훌륭한 말’이다. 《명언명구선》(名言名句選)의 저자 정현수(鄭玄秀)씨는 “건방 떨고 오만한 사람에게는 경청과 겸손을, 슬픔과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재기의 등불을 선사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좋은 명언이란 촌철살인(寸鐵殺人)이 촌철활인(寸鐵活人)으로 변하면서 자신과 타인을 변화시키는 말이다.
그렇다고 꼭 멋들어진 말일 필요는 없다. 가왕(歌王)으로 꼽히는 나훈아는 《월간조선》 오효진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밴드가 초죽음(초주검)이 되도록 연습한다”는 것이다. ‘초죽음(초주검)’과 ‘연습’의 행간 사이에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명언은 자신의 삶을 담고 있어야 한다. 나훈아의 말이다.
“저는 절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아주 보통 사람입니다. 지방에 공연을 가면 가수들이 거의 연습을 하지 않는답니다. 저는 밴드가 초죽음(초주검)이 되도록 연습을 합니다. 그러면 밴드들이 ‘다른 가수들은 악보만 갖다주고 그냥 무대에 올라갑니다. 그럼 그냥 하는데예’ 그래요. 그럼 나는 이럽니다. ‘이 사람들아 그런 가수들은 노래를 잘해서 그래도 되지만 나는 노래를 못하니까 연습을 해야지!’ 그러면 아무 소리도 못 해요. 이렇게 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하는 겁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몇 년 전 첼리스트 장한나를 만났더니 “연주란 스승의 토대 위에 집을 짓는 행위”라고 했다. 나훈아의 ‘초죽음(초주검) 연습’과 또 다른 버전이다. 그녀는 1994년 로스트로포비치 첼로 콩쿠르 최우수상을 타면서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로스트로포비치와 마이스키 등에게 사사했다. 흔히들 요즘 세태를 빗대 스승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스승만 한 나침반은 없는 법이다.
“연주란 스승의 토대 위에 집을 짓는 것”
첼리스트 장한나.
“연주란 스승의 토대 위에 집을 짓는 행위”
“스승이 지은 토대 위에 내가 집을 짓고 벽을 쌓으면 다음 세대가 지붕을 얹는 것이죠. 쇼스타코비치나 로스트로포비치는 첼로의 개척자였지만 저는 그분의 연주를 보고 배웠습니다. 진정 스승을 닮고 싶다면 스승을 딛고 일어설 줄 알아야 합니다.”
기자는 스승과 관련한 또 다른 명언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백순근(白淳根) 원장(서울대 교육학과)은 “스승이 안내하는 길은 신호등이 있는 길과 같다”고 말했다. 언뜻 평범한 말처럼 들리지만 스승을 믿고 따르면 신호등처럼 안전하게 목적지(꿈)에 다다를 수 있다는 얘기였다.
백 원장은 고1 때 만난 강흥일 국어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선생님은 첫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시를 다 외워 오라는 숙제를 냈다. 시 외는 일이 쉽지 않은데다 교과서 시를 죄다 외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백 원장은 “선생님이 학생에게 불필요한 일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라 믿었기에 열심히 외웠다.
일주일이 지나 돌아온 국어 수업시간. 선생님은 숙제검사를 하겠다며 학생 한 명씩 시를 외웠는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아예 한 편도 못 외웠고, 잘하면 겨우 한 편 정도에 그쳤다. 그가 교과서에 나오는 수십 편의 시를 모두 외자,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 자신도 매우 놀라는 듯했다.
“스승이 안내하는 길은 신호등이 있는 길과 같다”
강 선생님은 “다 외우는 학생이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외우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낸 숙제였다”고 했다. 아울러 “오랜 교사생활을 하면서 같은 숙제를 내줬지만 실제로 시를 다 외운 학생은 처음”이라며 흐뭇해했다. 백 원장의 말이다.
“그날 이후 저는 국어 과목을 좋아하게 됐고 시가 그러하듯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게 됐답니다. 혼자서 바른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고, 신호등이 없는 길을 건너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스승이 안내하는 길은 신호등이 있는 길과 같아요. 스승을 가슴에 품기 전에는, 또 스승을 믿고 따르기 전에는 공부 목표에 다가설 수 없어요.”
반면 소설가 헤밍웨이(1899~1961)는 “인생에 신호등이 없다”며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들에 신호등이 없다는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헤밍웨이는 자신의 삶에서 진정한 스승을 찾지 못했는지 모른다.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
故 장영희 교수.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
명언은 대결이어야 더 빛난다. 자신과 세상과의 불화(不和), 그리고 신과 죽음과의 싸움은 한계를 뛰어넘는 구도자의 모습과 닮았다. 이 과정에서 나온 ‘알갱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고개를 숙이게 만든다.
기자는 고(故) 장영희(張英嬉) 교수를 생전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를 한 기억이 있다. 인터뷰에서 듣게 된 가장 인상 깊은 말은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였다. 이 말은 2009년 9월 척추암 판정을 받고 3년간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북 칼럼을 접어야 했을 때 한 말이기도 하다.
장 교수는 생후 한 살 무렵부터 앓은 소아마비로 평생을 목발에 의지해야 했던 1급 장애인이었다. 심지어 유방암·척추암 판정을 받고 오래 투병을 했다. 병마(病魔) 속에서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고 세상을 긍정하며 어려움을 이겨냈다.
“몇 년 전 하버드대 방문 교수 자격으로 보스턴에 있을 때 우연히 유방암이 발견됐어요. 두 번 수술을 받고 귀국했을 때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어요. ‘음, 역시 장영희는 달라. 남들은 무서워 벌벌 떠는 암을 이렇게 초전박살 내다니…’하고요.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저는 믿습니다. 넘어질 때마다 저는 번번이 죽을 힘을 다해 다시 일어났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힘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섰던 그녀는 2009년 5월 9일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녀가 떠난 이튿날 다섯 번째 수필집이자 유작인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출간되었다. 다음은 책의 내용 중 일부다.
<…이 세상에서 나는 그다지 잘나가지도 또 못나가지도 않은 평균적인 삶을 살았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다지 길지도 않은 짧지도 않은 평균수명은 채우고 가리라. 종족 보존의 의무도 못 지켜 닮은 꼴 자식 하나도 남겨두지 못했는데, 악착같이 장영희의 흔적을 남기고 가리라.…>
故 김영태 시인.
“죽음은 재생을 위한 불가피한 침전,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이다”
2007년 7월 12일 세상을 떠난 시인 김영태(金榮泰) 선생은 생전 인터뷰에서 죽음을 ‘재생을 위한 불가피한 침전’이라며 이런 말을 남겼다.
“화상(畵像)이 눌인(訥人)인데 아무도 쳐다보는 이 없습니다. 이젠 가지고 갈 짐도 많지 않고, 다 버렸으니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죽음조차도 추하거나 어둡기만 한 것이 아닌, 재생을 위한 불가피한 침전,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별로 보고 싶습니다.”
기자와 만날 당시(2006년 5월) 그는 암 투병 중이었다. 평생 시와 그림, 춤 비평의 장르를 종횡무진하며 ‘사시사철 춤 보러 다니고’, ‘아름다움을 훔치던 사람’인 그도 어딘가 목소리가 떨리고 음색이 어두웠다. 그는 “난 이미 칠 벗겨진 사람이지만 주어진 운명을 색칠하다 간 칠장이로 남고 싶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