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북두(泰山北斗)
泰 : 클 태. 山 : 뫼 산. 北 : 북녘 북. 斗 : 말 두.
태산이나 북두성. 예술의 경지가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어떤 분야의 대가로서 남들의 추앙을 받는 사람을 흔히 태두(泰斗)라고 하는데, 태두는 곧 태산북두(泰山北斗)의 줄인 말이다.
중국에 많은 산이 있지만 가장 잘 알려졌고 가장 귀중하게 대우받는 산이 바로 태산이다.
옛날 하(夏)나라의 본거지인 하남성(河南省) 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동서남북과 중앙에 다섯 개의 중요한 산을 설정하여 오악(五嶽, 五岳)이라고 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황제가 하늘에 제사 지낼 때 행차하는 산이 태산(泰山)이다.
산 가운데서 대표가 된 것은 오악 가운데서 머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두(北斗)는 일곱 개의 별로 되어 있어 흔히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고 부른다. 일곱 개의 별마다 각각 고유한 이름이 있다. 많고 많은 별 가운데서 북두칠성을 중시하는 것은 이 별이 제왕(帝王)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산북두라 하면, ‘우두머리’, ‘최고’, ‘가장 중요한 존재’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번에 근세 우리나라 한문학계(漢文學界)의 태두(泰斗) 연민(淵民) 이 가원(李家源) 선생이 84세로 서거한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제자와 후학들이 모여 창설한 연민학회(淵民學會)가 연세대학교에서 제5회 연민학(淵民學)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성황리에 마쳤다.
연민 선생과 동시대에 명성이 대단한 한학자(漢學者)들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연민 선생은 여타의 한학자들이나 교수와는 달랐다.
연민은 우리 민족이 낳은 걸출한 대학자다. 6세 때부터 한문공부를 시작하여 12세 때 사서(四書)를 다 외웠다.
그는 일생 동안 남긴 학술적인 저서가 100권도 넘는다.
한시 3000수, 한문 문장 2200여 편을 지었다. 그리고 한문으로 글을 짓는 데 있어서는 중국 사람들도 그렇게 빨리 짓지를 못한다.
23세 때까지 고향 안동(安東)에서 한문공부를 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명륜전문학교(明倫專門學校)에서 다시 학문으로서의 한문학 공부를 했다.
해방 이후 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 등지에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하였다.
중간에 대학원장, 국회의원 등의 제의가 들어왔지만, 한 번도 교수 이외에는 한눈판 적이 없었다.
평생 한적(漢籍) 4000권을 포함해서 모두 2만 권의 책을 모았고, 그 외도 퇴계(退溪), 완당(阮堂) 등 선현들의 필적이나 겸재(謙齋) 정선(鄭敾) 등의 그림을 모았는데, 1986년도에 모두 단국대학교(檀國大學校)에 기증하였다.
그 당시 감정 전문가들이 시가로 30억원의 가치로 평가하였다.
“민족의 문화유산을 잘 보관하여 여러 사람들이 보고 공부할 수 있게 하시오”라는 말씀이 소유자로서의 유일한 요구였다.
정년 퇴임한 지 30년, 서거한 지 10년 되었는데, 지금은 한문학과나 국문과 대학원생들조차도 연민 이가원을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요즈음 와서 우리나라의 학자들은 대부분이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에 앞 시대 선배학자들의 학통(學統)을 잘 계승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연민 선생의 학문적 업적이 잘 연구되고 정당하게 평가되어 역사상에 한 명의 대학자로 등록해야 하겠다.
다행히 2006년에 연세대학교에서 연민학(淵民學)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퇴계학(退溪學), 남명학(南冥學), 성호학(星湖學), 다산학(茶山學), 위당학(爲堂學) 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학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뜻 있는 분들은 연민학에 관심을 갖기 바란다.
= 받은 글 편집 =
漢陽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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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태풍의 영양으로 비, 바람부는 수요일날을 잘 보내셨는지요 음악소리와
교훈글을 읽으면서 머물다 갑니다 지금 남부지방은 태풍 영양으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습니다.
6호 태풍 카눈이 내일 한반도를 지나간다고 기상청은 예보 합니다 대비를 잘 하시고 피해없도록 준비를 잘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