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까지만 해도 안식일 교인이었던 뉴스타트 건강 강사인
이상구 박사가 지난 6월 10일 과학기술대학교에서 나와 가졌던
공개토론회에서 "화잇은 거짓 선지자다"라고 선언한 이후,
올 여름 미국에서 있었던 건강세미나 후 미주 몇 신문에
전면 광고를 내고 "안식일 교회를 떠나며"라고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그리고 그 신문 광고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상구 박사는
안식일 교회의 제칠일 안식일 준수에 자신도 깜빡 속았다는
설교와 강의를 한 후에 11월 25일 안식교 킬러를 자처하는
진용식 목사가 시무하는 안산상록교회에서 안식일 교회를 떠난
곽정환 목사의 사회로 간증 집회를 가졌다.
오후 2시 30분부터 시작된 이 집회에서 이상구 박사는 안식일
교회의 조사심판을 틈만 나면 비성서적인 이설로 비평을 했다.
이상구 박사는 탕자의 비유를 말하면서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 주었는데 가락지는 바로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표징인데 이것은 무조건적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 교회는 탕자가 돌아오면 아버지가 “너를 조사해 보고
착한 일을 얼마나 했는지 조사한 후에 용서 하마”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거짓말인가?
그동안 안식일 교회를 비평한 수많은 개신교 목사, 신학자들,
비평가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전혀 사실이 아닌 허위사실로
안식일 교회를 매도한 경우는 드물 정도이다.
안식일 교회를 이단이라고 하며 비평하는 저들은 안식일 교회를
밖에서만 보고 들어 어느 정도 허위사실로 안식일 교회를
비난하거나 비평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안식일 교인으로
35년 이상을 살아 온 이상구 박사가 이렇게 거짓된 주장으로
안식일 교회를 매도하는 것은 납득 불가능한 것임에 분명하다.
올해 봄까지만 해도 안식일 교회의 엘렌 지 화잇은 처음에는
조사심판에 대해 기록했지만 1888년에 회개하여 그 모든 오류를
수정했기 때문에(물론 그런 사실도 전혀 없었지만) 오히려 더 멋진
선지자가 되었다며 그에 대한 입증으로 책까지 출판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극찬을 아끼지 않던 이상구 박사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실물교훈에 화잇이 쓴 탕자의 비유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명명백백한 거짓말로 안식일 교회를 비난할 수 있는가?
이제 화잇 여사가 쓴 실물교훈의 탕자의 비유 중 일부를 인용하며
이상구 박사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지를 밝혀 보겠다.
“비유에는 탕자의 잘못을 견책하거나 조소하는 장면이 전혀 없다.
그 아들은 자기의 과거가 용서함을 받고 잊어버린바 되었으며
영원히 그의 죄가 도말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죄인에게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같이 도말하였으니”(사 44:22),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발견치 못하리니”(렘 50:20)라고 하신다.”(실물, 204-205)
안식일 교회가 선지자로 신뢰하는 화잇이 쓴 탕자의 비유를 언급한
윗글에서 어디에 “착한 일을 얼마나 했는지 조사해 보고 용서한다”는
내용이 있는가? 오히려 정반대의 내용이 아니던가?
화잇은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이렇게 묘사한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죄인을 기꺼이 받아주신다는, 이 얼마나
놀라운 보증인가! 독자들이여, 그대들은 자기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라.
그는 그대에게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사 44:22)고 초청하신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개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도 될 만큼 충분히
선한사람이 될 때까지 그리스도께 나갈 수 없다고 속삭이는
원수(마귀)의 말을 듣지 말라. 만일 그대가 그 때까지 기다린다면
그대는 결코 그리스도께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사단이 그대의
더러운 옷(품성)을 가리키며 그런 말을 할 때에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요 6:37)하는 예수의 약속을
암송하라. 원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버릴 수 있다고 말하라
일어나서 그대의 하늘 아버지께로 돌아가라.
그리하면 그는 멀리까지 나와서 그대를 영접하실 것이다.
만일 그대가 회개하고 그분을 향해 한 걸음만 내디딘다 해도
그분은 재빨리 무한하신 사랑의 팔로 그대를 안아 영접하실 것이다.
그분의 귀는 통회하는 자의 부르짖음을 듣기 위해 열려 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생각이 싹트는 그 순간에 그분은 그것을 아신다.
기도가 아무리 더듬거리고 눈물을 아무리 은밀하게 흘릴지라도
그분은 아시며,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아무리 미약할지라도
하나님의 성령이 마중 나가지 아니하시는 때는 없다.
기도가 입술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마음의 소원이 알려지기도 전에
그리스도께로부터 온 은혜가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는 은혜를
만나기 위하여 나온다.
그대의 천부께서는 죄로 더럽혀진 옷을 그대에게서 벗기실 것이다.
스가랴서의 아름다운 비유적 예언 속에서 여호와의 천사 곁에 선
누추한 옷을 입은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죄인을 대표한다.
주께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슥 3:4, 5)히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똑같이 하나님께서 “구원의 옷“ (사 61:10)으로
그대를 입히실 것이고, 의의 겉옷으로 입히실 것이다”(실물, 205-206)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적인 하나님의 사랑이던가?
그런데 이러한 화잇 여사의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일 교회는
탕자가 돌아오면 “착한 일을 했는지 조사해 보고 용서하는 교회”라고
어떻게 그런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대중 앞에서 공공연히 할 수 있는가?
화잇 여사는 탕자의 비유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사 62:5),
“하나님 여호와가 …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 그리고 하늘과 땅은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하는 아버지의 기쁨의 노래에 맞추어
합창하게 될 것이다.”(실물, 207)
이것이 안식일 교회가 믿고 가르치는 탕자의 비유이다.
안식일 교회의 그 어떤 책자나 인쇄물이나 기본교리에서도 단 한번도
이상구 박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 왔는데
‘조사해 보고 용서한다’고 주장한 적도, 가르친 적도 믿은 적도 없다.
이상구 박사는 조사심판을 어떻게 해서든 이단적 사상으로 주장하고
개신교인들에게 자신이 안식일 교회에서 나온 것이 바로 이러한
안식일 교회의 비성서적 주장 때문이었음을 강변하지만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묘사하며 그것이 안식일 교회의 주장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적 비평을 떠나 범죄 행위에 해당되는 불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어제(11월 25일) 안산상록교회 집회에서도 이상구 박사는 “내가
만일 안식일 교회가 이러한 조사심판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인줄
알았다면 절대로 안식일 교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그가 안식일 교인이 되어 조사심판을
들은 지가 35년이니 그의 변명이 얼마나 무색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안식일 교회기 믿는 조사심판의 대상은 철저히 성도들이다.
그것은 안식일 교회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철저히 성경적이다.
성경은 너무도 많이, 자주 성도들이 심판 받을 것을 언명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5:10)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 14:10)
위와 같이 사도 바울은 자신을 포함한 하나님의 백성들(아버지 집으로
회개하고 돌아와 용서 받았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과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임을 확증했다.
성경은 심지어 죽은 자들도 심판 받을 것을 언급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심판을 받는데 책들이 펴 놓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생명책을 언급한 것으로 본다면 이것은 예수 믿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녹명된 성도들임이 확실하다.
요한계시록 뿐 아니라 구약의 예언서 다니엘서도 이 사실을 증언한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9-10)
다니엘서 7장에는 하나님의 보좌 곧 하늘의 장면이 소개 되면서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여 있음을 언급하면서 계시록 20장의
기록과 유사한 심판을 묘사하는데 중요한 것은 이 심판의 특성이
바로 책들을 펴 놓고 조사하면서 하는 심판이라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엄중한 사실이다.
이것을 안식일 교회는 ‘조사 심판’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이것은 철저히 성경에 기초한 용어인 것이다.
‘조사심판’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없다면서 그러므로 이것은 이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사실 조사심판은 개신교 대부분이
믿고 인정하는 ‘삼위일체’보다는 훨씬 더 성경적 개념이다.
책들을 펴 놓고 하는 심판이 조사 심판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상구 박사를 비롯한 조사심판이란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며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이미 받았고 죄가 영원히 도말 되어 우리가 영생을 이미 받았는데
무슨 놈의 조사가 필요하며 심판이 있느냐”고 강하게 반발한다.
그런데 이들의 이러한 주장이야 말로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기본적 개념조차 망각한 무지가 아닐 수 없다.
이상구 박사나 저들은 한결같이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저들 스스로의 공식을 고수하기 때문인데 성경은 결코, 단 한번도
그러한 주장을 지지하지 않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오히려 정반대의 사실을 성경은 너무도 많이, 자주 반복하여 경고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출 32:33)
예수를 믿어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의 이름도 범죄하면,
회개하지 않으면 지워 버릴 수 있다는 명명백백한 말씀이 아닌가?
어디 이것뿐인가? 성경은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는다고 선언한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 18:4)
아무리 의를 행했을지라도 범죄하면(회개하지 않으면) 그 모든 의가
기억되지도 않고 그는 멸망할 것을 성경은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 행한 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으리라”(겔 18:24)
이러한 말씀을 보면서도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며 구원의 확신이 구원의 보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의 비유에서 미려한 처녀, 악하고 게으른 종, 염소, 가라지,
못된 물고기 등의 부류는 불신자 그룹을 언급한 것이 결코 아니다.
저들은 한 결 같이 예수를 믿고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 성도들이다.
저들이 얼마나 구원의 확신이 있었는가 하면 그 비유들의 결론에서
주인에게, 신랑에게 버림을 받는 것이 확정된 이후에도 여전히
저들은 변함없는 마음으로 “주여 주여”를 연발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마 25:11)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마 25:2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마 25:44)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눅 13:25-26)
위의 말씀들에서 보는 것처럼 저들은 끝까지 예수 믿음을 공언했고
저들이 반드시 구원 받을 것을 확신했던 자들이 틀림이 없다.
문이 닫혀 구원의 기회가 박탈된 후에라도 끈질기게 “주여 주여”하며
예수님께 매어달릴 만큼 저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 이름으로 놀라운 일을 행한 자들의 경우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이것 보면 ‘주여 주여’하며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들일지라도 얼마든지
구원 받지 못하고 멸망에 처할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러한 말씀을 읽고 보면서도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저들의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고 선지자 노릇도
했지만 저들이 구원 받지 못한 것은 “불법을 행한 것”임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공언하는 믿음이 행함으로 증명되지 않을 때 저들의 구원의 확신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헛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철저히 아무리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공언할지라도
저들의 공언하고 확신하는 믿음에 합당한 열매, 행위, 순종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 믿음임을 확언하는 말씀과 비유와 권면이 수두룩하다.
그 중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간결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요 15:1-2)
예수님께 붙어 있는 성도일지라도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가 없다면
그것은 가차 없이 제해 버리신다고 친히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믿고 의롭다 함을 받았을지라도 다시 구습을 반복하고 범죄하면
그 후의 결과가 예수 믿기 이전보다 더 심할 것을 성경은 경고한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벧후 2:20-21)
이러한 말씀을 보면서도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믿는 것은
성경을 기초로한 기독 신앙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든 인본적
신앙이며 자기 아집으로 만든 허상일 뿐이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예를 통해서 예수 믿고 구원 받았으나
그 믿음에 합당한 열매가 없고 순종하지 않아 멸망한 경우를 설명한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 10: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홍해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나오는 신령한 물을 마시고도
광야에서 우상 숭배와 간음과 주를 시험함과 원망함으로
광야에서 멸망 당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고 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6)라고 하였다.
이 말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도 저들처럼 악을 행하면
멸망할 수 있다는 명명백백한 경고와 권면이 아닌가?
성경은 전반에 걸쳐서 변함없이 이러한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고 공언해도 열매가 없고 그 믿음이
행함과 순종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심판은 철저히 공언한
믿음의 열매인 “각각 행위를 따라”한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고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공언하는 성도들 중 누가 과연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빌 1:27)했는지, 누가 과연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눅 20:35)인지를
구별하고 구분하고 조사하는 것이 바로 조사심판의 핵심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재림은 성도들이 공언한 믿음의
열매인 “행한 대로” “일한 대로” 갚아 주는 때임을 말씀하고 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조사 심판은 성경 전반에 걸쳐 나타난 성경적 심판이다.
싸구려 은혜, 엉터리 값싼 구원론 인플레이션으로 개신교회가
구원의 소중함과 가치를 상실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있는
이러한 마지막 때에 진짜 성도를 가짜 성도들에게서 분리하고
갈라내어 하늘 곡간에 들이시기 위한 조사 심판의 놀라운 복음을 남
은 교회에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어제 이상구 박사를 소개한 안산상록교회 담임 진용식 목사가
자신이 이단에 빠진 자들을 상담하면서 개종하는 자들을 보면,
겉으로는 개종했다고 하는데 그 이단 사상이 속에 그대로
있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사이비라고 의미심장(?)한 멘트를 했다.
그러면서 이상구 박사는 속까지 개종한 사람이라고 추켜 세웠다.
사실은 이상구 박사는 그렇게 소개한 진용식 목사가 "안식교 5대 오류"
라는 책을 쓸 때 4번째 이단설로 주장한 음식물 문제는 여전히
그 속까지 안식일 교인이고 특별히 장로교회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영혼 지옥설을 믿지 않고 영혼불멸을 부정하는 안식일 교회 사상이
그 속에 가득한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성급하게 판단한 것 같다.
어쨌든 진용식 목사 주장에 따르면 신천지 등 이단에서
개종했다고는 하지만 신천지 사상을 그대로 가진
사이비들이 섞여 있다는 것인데 바로 그것이다!!!!!!
교회 안에도 오직 예수 믿음으로 구원 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영생을
얻고 구원을 얻었다는 구원의 확신을 부르짖지만 정작 저들 안에는
전혀 그 예수 믿음으로 말미암은 열매와 순종과 행함이 없는 가짜
성도들이 있는데 이를 진짜와 분리하고 구별하는 것이 바로 조사심판이다.
예수님도 지적한 겉만 무성하고 뻔드르한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
헤아릴 수 없이 섞여 있는 것이며 저들이 바로 알곡 사이의 가라지들이다.
조사심판은 바로 이러한 가라지들을 알곡들에서 철저히 분리하는 복음이다.
왜 이러한 조사심판을 이설이라고 하고 반복음적이라고 하고 이단이라고
하는지 저들은 스스로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어제 있었던 이상구 박사 간증 세미나에서 이박사가
안식일 교회를 비평한 이 문제는 내일(11월 27일 화요일)
저녁 7시에 명광교회에서 상세히 반증하면서 다룰 것이다.
유트브를 통해 생중계 할 것이다.
첫댓글 일요일교회에 가서 아무리 북치고 장구치고 떠들어도 그바닥이 원래 더럽고 지저분하고 추한 곳이라 쓰레기 더미에 쓰레기 한삽이 더해진것과 같을뿐 별게 아닙니다. 이일로 인해서 일요일교인들중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길에 고정되겠지요. 그러나 재림성도들에게는 알곡과 가라지가 분리되는 일이 일어날 뿐입니다. 이상구 박사는 무슨 큰일을 하는게 아니라 다만 일요일교회의 교인들로 하여금 멸망의 길에 고정되게 하는 죄를 짓고 있는겁니다.
조사심판은 당연한 법적 절차로서 진행되어야 하는 필수과정이지요. 성도들의 죄를 조사하여 그것을 최종 도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죄의 법적 도말이 없으면 율법의 정죄에서의 법적인 해제도 없는것이고 구원은 공식해결되지 않은 영원한 미제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조사심판을 나쁜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사람을 조사해서 잘못된놈 골라내어 멸망시킨다 이리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멸망받을 죄인의 입장에서 보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자기는 구원받을수 없는 멸망의 자식임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죄가 도말되고 성령의 충만을 입어 정결케 되어야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나와 백성을 만나러 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기를 고대하는 백성이라면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고백하여 다 도말되게 하고 성령의 충만을 입어 죄에서 벗어남으로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당기는 거룩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박사는 미련하게도 세상의 온갖 잡교리로 얼룩진 일요일교회에 가서 간증이랍시고 떠들었는데 세상 사람들로부터 개독교라고 욕먹고 있는 그런곳에 가서 이미 실패한 이상구 건강법을 더해봤자 그것은 그나물에 그밥이라 아무 혁신적인 일도 일으키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멸망받을 자들로 멸망의 길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될뿐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우매한 짓입니다.
안산 상록교회 진용식 목사는 강제 개종교육을 하면서 사례비를 받고 가정파탄을 일으키며 기타 금품을 수수하는 짓들을 하여 인권운동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자 그들을 고소하였으나 무죄판결이 내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상구 박사가 그런자가 시무하는 교회에 가서 간증이랍시고 떠들었으니 그가 이렇게 불의한 자들과 함께함은 하나님께 큰 모욕입니다.
알러지 의사 그만두고 뉴스타트 장사 시작했다. 뉴스타트 장사 메뉴가 바닥나자 성경을 이상하게 풀어 메뉴맛을 보탰다. 그래서 한동안 장사가 괜찮았다. 장사가 잘 된다는 소문 때문에 주변에 비슷한 가게가 줄지어 들어섰다. 이제 장사가 안되니 희한한 메뉴를 만들어 여기저기 다니면서 시식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계발한 메뉴는 잡탕에 맹탕이다. 장사가 끝에 온 것이 틀림없다. 아무리 나팔을 불어도 춤추는 자가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