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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혼 남성 독자 여러분들의 대다수는 이 글에 소개되는 3개 부류의 남편 가운데 하나에 속할 것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이른바 '파쇼' 남편도 있습니다. 그러나 매우 드물다는 것이 통념입니다. 이같은 세태에 잘 적응하는 현명한 남편이 되려면 우선 본인이 다음 세가지 카테고리의 남편중 어디에 속하는지부터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잘 파악하신 후에 그 분야에서 프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가정의 행복을 위한 지름길입니다. 에외에 속하신 분들은 계속 '마이 웨이(my way)'를 잘하시기 바랍니다. '소비자가 만드는 신문의 케케 묵은 재래식 신문 제작 문법을 과감하게 깨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테마 사랑방'에 올라 온 글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수정없이 게재합니다(편집자).
공처가(恐妻家), 광처가(狂妻家) 그리고 경처가(驚妻家)!!!
1. 개설(槪說)
일본 요코하마 국립대학 (橫捠國立大學)의 노부로 히데키(昇秀 樹) 교수는 그의 『공처가의 사회적 인식과 인류학적 고찰』(橫捠國立大學 出版部. 1974년刊) 이라는 저서에서 공처가에 대해서 세계 최초로 체계적인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수 본인도 공처가 임을 고백하며, 공처가 이기에 행복하다고 그의 책 에필로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공처가가 무엇을 의미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긴 설명보다는 노부로 히데키(昇秀 樹) 교수의 저서의 내용중 일부를 소개하며 공처가에 대한 설명을 대신 합니다.
아내를 아끼는 남편을 애처가(愛妻家), 아내에게 눌려 사는 남편을 공처가(恐妻家)라고 하지만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본인은 애처가와 공처가를 구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애처가는 집안일을 취미로 하고, 공처가는 의무로 한다 거나, 휴일날 자신의 양말을 빨면서 아내의 양말까지 빨아주면 애처가요, 아내의 양말을 빨면서 자신의 양말을 같이 빨면 공처가라는 식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의 요즘 남편들은 양처가(兩妻家)에 가깝습니다. 상황에 따라 때론 애처가, 때론 공처가로 변신하기 때문입니다.
2. 공처가(恐妻家)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남편들의 가정내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즉 한국남성들의 공처가적 기질이 서글프게도? 점차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최근에 모 여성단체에서 공처가에 관한 표어 모집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응모작중에 수상작만 간단히 소개해 보겠습니다.
(공처가 표어 수상작)
# 금상: 나는 아내를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형)
# 은상: 나는 아내만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합니다. (데카르트형)
# 동상: 아내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 전에 내가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할것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케네디형)
# 장려상: 아내의 아내에 의한 오로지 아내를 위한 남편이 되겠습니다. (링컨형)
# 특별상: 니들이 아내를 알어? (CF신구형)
# 공로상: 나에게 아내가 없다는 것은 저를 두번 죽이는 거예용! (개그맨형)
# 본오빠상: 아내가 그대를 구박 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마라! (푸슈킨형)
2. 광처가(狂妻家)
광처가라 하면 공처가란 단어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한밤의 뚱딴지 같은 신조어인가 하는 생각이 들것입니다. 무릇 광처가란 한자 그대로 “미칠광” 자에 “마누라 처”를 쓰지만 처를 광적으로 사랑해서 처에 미친 사람이란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광처가란 처에게 매일 맞고 살다가 가끔 도가 지나친 마눌님의 구타에 정신이 헷가닥한 남편들이 미쳐버린 상태를 칭하는 단어입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광처가란 한마디로 공처가에서 외부충격에 의해 유전학적으로 돌연변이 되어 진화한것으로 보면 됩니다.
광처가에 관한 이런 야그도 있습니다.
한 공처가가 다른 공처가 친구집에 놀러 갔습니다. 마침 그 공처가 친구가 앞치마를 빨고 있었습니다. 자신도 매일 마눌님 빤스를 빨며사는 공처가는 친구 공처가를 놀릴려고 『한심하군 이친구! 마누라 앞치마나 빨고 있으니』 이말을 듣고 빨래를 하고 있던 공처가 친구가 버럭 화를 냈습니다. 『말 조심하게 이사람아! 어디 내가 마누라 앞치마나 빨 사람으로 보이나? 이건 내거야! 내꺼!』----------
그런데 이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공처가 입니까 아니면 광처가 입니까. 혹은 당신의 남편을 공처가로 만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광처가로 만들고 있습니까.
3. 경처가(驚妻家)
광처가에서 발전된 다음 단계가 경처가입니다. 단어 그대로 마눌님과 눈만 마주쳐도 경기(驚氣)가 들어 발발 떠는 단계에 이른, 공처가에서 두번째 단계로 진화된 아주 불쌍한 유형입니다. 이단계에 이른 공처가들은 거의 피해망상증에 의해 눈에 초점이 쪼까 흐리멍텅한 눈빛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변의 남자들이 마눌님의 전화만 받아도 식은 땀을 흘리며 누렇게 뜬 낯짝을 보이거나, 공처가 당사자가 집에서 마눌님의 취침전 샤워소리만 들어도 세상이 누리끼리한 상태로 보이면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상태에 이르게 되면 이 중증의 경처가 단계에 이르렀음이 틀림 없습니다.
4. 맺는말
우리는 흔히 타인을 공처가 운운하며 놀리지만, 사실은 자신이 공처가나 광처가 아니 경처가의 단계에 이른 자신의 행태를 그렇게 함으로써 감추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꼭 공처가, 광처가 그리고 경처가가 나뿐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정생활을 유지하는데에는 서로 다른 환경속에 최소 20여년이상 따로 살아왔기에 그에따른 남녀의 갈등이 필연적이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화목하게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약간 양보하는 삶의 지혜도 필요합니다. 여기에 공처가와 광처가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본오빠가 공처가, 광처가들을 찬미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무엇보다 한국현실에서는 애처가(愛妻家)가 가장 이상적인 남편의 형태임에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공처가(恐妻家), 광처가(狂妻家) 그리고 경처가(驚妻家)!!!
첫댓글 조금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면
가정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귀한 자료 잘 접했습니다.
이복희 시인님의 정성에 탄복합니다.ㅎㅎ
윗 글 읽어 볼수록 재밌네요.
'아내가 그대를 구박 할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하지마라! (푸슈킨형)'
러시아의 시인 푸시킨이 살아있다면, 슬며시 미소지을 듯 합니다.
좋은 글 가슴에 담아 봅니다.
감사합니다.
아이고 전 시인 아닙니다. 수필만 씁니다. 시는 문외한이지요. 읽기는 합니다만.
안 그래도 패러디 글이 혼자 보기 아까워 올렸어요.
나비 효과까지는 아니라도 선생님 올려주신 공처가 이야기가
그렇듯 재미난 글까지 보게 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