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1.9.7.8. M.B.C.대.학.가.요.제.은.상.수.상.곡
이 노래가 지난 78년 MBC가 주최한 제2회 대학가요제를 통해 세상에 나왔던 당시 전남대 전자공학과 4학년이었던 김정식. 전남대에서 유난히 기타를 잘 치고 노래를 잘 불러 이름이 알려졌던 그는 내가 2학년이었을 때 다른 학교 4학년이었으니까 나보다 나이가 2년 정도 앞서겠다.
당시의 대학가요제는 젊은이들에게 엄청난 인기가 있었다. 이에 젊은이들을 겨냥한 해변가요제와 강변가요제가 열리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가요제 전성시대가 개막되면서 기성 가요계에서 듣지 못 했던 새로운 곡들이 봇물을 이루었다.
나는 78년 당시에는 이 노래를 알지 못 했다.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수상했지만 이 노래는 영 사운드의 상징인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이 신명을 자극하는 록 사운드와는 거리가 먼 서정적인 통기타 발라드 곡이었기에 비트가 강한 그룹사운드의 수상곡들과는 달리 FM 라디오에서도 자주 나오지 않는 곡에 속해 있었다. 이와는 달리 나 어떡해, 젊은 연인들, 그대로 그렇게, 바람과 구름,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내 단 하나의 소원, J에게, 젊음의 노트 등의 인기곡들은 날마다 FM 방송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흘러나왔다.
그 후 몇 년 뒤 서울에서 레코드샵을 하던 시기에 78 대학가요제 2장짜리 더블음반에서 이 노래를 처음 들었다. 그리고 이 노래에 금새 반하고 말았다. 통기타에 어울리는 서정적인 곡도 좋았지만 그 보다는 한 편의 서정시를 듣는 듯 한 노랫말에 매료되었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저 위의 세 사람 중에서 오른 쪽 붉은 티셔츠에 흰 바지를 입고 기타를 치며 화음을 넣고있는 노랑머리 학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70년대 후반에 저렇듯 머리를 노랗게 염색을 하고 다닐 정도면 그의 개성도 꽤나 독특한 사람이었으리라.
서울에 출판사 사무실이 있을 때였지? 15년도 더 된 오래 전, 한의사는 아니지만 돌아가신 한의사 부친 일을 오래 돕다보니 면허만 없을 뿐 한약에 도가 튼 성당 누님이 내 사무실에 방문했다가 이 노래를 들으며 일을 하는 나를 보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이거 정식이 노래 아냐?
=어머나 별 일이네. 누님이 이 노래를 알아요?
-알지. 김정식 로제리오. 갸가 대학가요제에서 불렀던 노래.
=마당발이라고 하더니 발은 넓으시네. 근데 김정식 로제가 그 사람입니까? 가톨릭 생활성가곡도 작곡해 성가가수로 유명한 로제리오가 이 사람이유?
-그렇다니까? 세례명은 로제리오인데 줄여서 로제라고 불러. 좀 전에 성당에서 갸랑 헤어지고 오는 길인데?
=다음에 만나면 여기 당신 노래를 죽어도 잊지 못 하는 중년 팬이 하나 있더라고 전해 주시구랴.
-아이고... 갸한데 그 말 하면 바로 달려올 건데. 다음 주에 또 오니까 그 때 내가 정식이 데려올게.
그리고 나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한의원집 누님 뒤로 웬 꾀죄죄한 남자가 하나 따라 들어왔다. 그 누님은 뒤 따라 들어온 노인(?)에게 말했다.
-어이 로제. 여기 사장님하고 인사해. 자네 30년 팬이래.
=그럼 이... 분이 작곡가 김정식..... 그 분인가요?
-반갑습니다. 김정식 로제입니다. 안나 누님이 꼭 갈 곳이 있다고 해서 들렀습니다.
=아, 네네.. 그런데 하도 오랜만에 뵈어서 그런지 대학가요제 때 노래하시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분 같아서요.
-하하.. 나이를 먹으면 얼굴도 변하죠. 사장님도 분명히 지금 20대의 얼굴은 아니잖아요. (이런 싸가지 하고는...ㅎ)
=암튼 반갑습니다. 우선 이리로 앉으시죠,
달변가인 그는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많은 생활성가곡을 만들고 부르며 피정지도를 하는 등 활동반경이 넓은 사람이었지만 그 김정식과 이 김정식이 동일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그는 수더분했지만 수다형이었고 대화 내용도 특별히 꾸미지 않은 서민적 스타일이었다. 그 후론 신림동에 오는 날이면 가끔 들려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도 마시다 갔고, 새로운 생활성가 음반이라며 CD를 몇 장씩 선물하고 갔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약속 노래를 부른 김용숙씨요. 잘 계시나요?
-아, 용숙씨요? 그 분은 결혼해 지방에서 잘 살고 있죠.
=저는 혹시 로제씨의 부인이라도 되셨나 해서요.
-제 부인요? 하하하...ㅋㅋㅋㅋㅋㅋㅋ
그는 내 전화번호를 저장해 자기 팬클럽으로 추정되는 단톡방에 초대했지만 자기네 행사 안내나 무슨 모임에 참여하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무음처리에 대꾸도 안 하다가 나와버린지 몇 년이 지났는데 얼마 전 새 카톡이 와서는 성악가 송봉섭과 유튜브 마인드라디오(Mind Radio)로 소통하고 있음을 알려왔기에 거기에 들어가 대충 듣다가 추천과 구독만 꾹꾹 눌러주고 나왔다. 근데 이건 비밀이다.ㅎ
나는 작곡가 김정식을 좋아했다. 노래 '약속'에 담긴 그 서정적인 노랫말이 어떻게 그의 가슴을 열고 세상에 나왔는지 궁금했지만 올해로 가수 데뷔 42주년을 맞는 그의 생활성가를 듣고 있다보면 싱어송라이터인 그는 음악인인 동시에 상당한 사색가라는 사실에 거듭 감탄하곤 한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78 대학가요제 '약속' 동영상이 사회자 이수만의 불필요한 수다도 길고 해서 싹뚝 잘라버리고 자막도 새로 넣고 재편집을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동영상을 올린 후 글을 써서 올리고 보니 바로 동영상이 정지되어 있었다. MBC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본 동영상은 저작권 관계로 전송이 중단" 되었다고 먹통영상에 조그만 글씨로 나온다. 달리 궁금할 것도 없다. 동영상 파일명을 추적하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프로그램이 동영상 파일 제목을 감지해 자동으로 스트리밍을 중지시킨 것이다.
하지만 동영상이 없이는 이 글도 아무 의미가 없는지라 동영상 제목을 바꾸고 내 블로그에 올린 다음 거기서 링크를 걸어 이리로 끌어왔다.
조용한 밤, 가끔씩 그랫듯 오늘 밤에도 혼자 이 노래를 들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 때도 외로웠던 우리는
왜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외로운 것일까?
.....................................
약속 (김정식 작사 작곡)
어느 하늘 밑
잡초 무성한 언덕이어도 좋아
어느 하늘 밑
억세게 횡량한 들판이어도 좋아
공간 가득히 허무가 숨쉬고
그리고 하늘 밑 어디에라도
내 시선이 뻗어
그 무한의 거리가 까무러치도록 멀어서
혼자서만 외로워지는
그런 곳이면 좋아
거기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모르는 사람이 반가워지면 좋아
운명처럼 뻗은 레일 위를 걷다가
우연히 부딛는 그런 사람이면 좋아
혼자서만은 외로운 공간
약속 없이 만나는 그런 사람을 위해서
나는
나는
나는 약속하고 싶어
그런 사람과
그런 사랑을....
김정식 로제리오
■ 전남 장성에서 태어나 월평국교․광주동중․광주고를 거쳐 전남대 전자과 졸업
■ 1975 제4회 전남대 캠퍼스송 경연대회에서 자작곡「약속」으로 최우수상 수상
■ 1978 제2회 MBC대학가요제에서 자작곡「약속」으로 은상수상에 이어 자작곡「쏭바강의 추억(1979VOC대학가요제 금상)」「오! 나의 바람(1982 제6회 MBC대학가요제 동상 )」「내마음의 노래(1985 제9회 MBC대학가요제 입상)」등으로 수상
■ 가톨릭 어린이 창작성가 공모에서「참좋으신 예수님(1987 제1회 작곡부문 금상)」「바람이 들려준 노래(1987 제1회 작사부문 동상)」「나를 따르라(1988 제 2회 작사부문 금상)」「생명의 물(1989제44차 성체대회기념 동상)」「하느님을 사랑해(1990 제4회 작곡부문 금상)」등으로 수상
■ 1987 반예문 신부님과 함께 듣지 못하는 어린이를 돕기 위한「사랑의 보청기」 자선음반 「나의 친구에게(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부르는 노래)」출반
■ 1989~1990「파리 그레고리오 성가대」의 초청으로 파리 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했고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수차례의 연주회에 참가하였음
■ 1990. 5월 <한겨레신문>이 벌인 "겨레의 노래"찾기 공모선정 새노래 27곡에 자작곡 「내마음의 노래」「물레방아(이준섭 시)」「우리마음을 알아주세요(모희원 사)」등 3곡이 선정됨
■ 1987년 겨울부터 명동성당 앞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기 위한 거리 공연에 박준 토마스 형제를 도와 함께 해왔고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조건없이 달려가 아름다운 노래와 삶을 나누고 있음
■ 20여년 동안 가톨릭교회 공동체와 개신교회 공동체 및 교회 밖 단체의 요청으로 3,500 여 차례,캐나다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곳,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의 여러 곳, 호주와 뉴질랜드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80 여 차례의 초청 연주회 및 생활성가 피정을 가졌음.
■ 1998 년부터 2002년 봄까지 가톨릭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사랑의 노래 찬미의 노래」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10시에 방송되는「김정식이 전하는 맑은 이야기」를 진행하였음
■ 1989 생활성가 악보집「김정식 로제리오 생활성가」펴냄
■ 1982 구미 신평성당 건립기금을 위한「이해인 수녀의 시로 만든 송가」출반(현재 절판)
■ 1984 소리모아 김종률 김원중과 함께 옵니버스「예향의 젊은 선율」출반(현재 절판)
■ 1985 생활성가 모음「기도의 응답」출반(현재 절판)
■김정식 로제리오의 노래가 실린 음반 소개 생활성가1집「그대 잊지 않으리(1987)」2집「평화의 노래(1989)」 3집「예수 내 작은 기쁨(1990)」4집「하느님을 사랑해(1992)」5집「예수를 따르는길(1993)」6집「당신을 사랑해요(1994)」7집「해바라기 노래(어린이 노래1998)」8집「이슬처럼(권오순 추모노래비1998)」「하얀성탄(성탄노래/성바오로미디어1990)」「태양의 찬가(성가연주곡/성바오로미디어1991)」「주예수 바라보라(성가연주곡/성바오로 미디어 1992)」등을 CD와 카셋트 및 레코드로 출반했으며,계속해서 유아노래,생활성가 연주곡, 생활노래, 예술가요 등을 준비하고 있음
■문의 및 연락처 <가톨릭생활성가찬미회>서울 강서구 화곡8동 338-5 김정식 로제리오 (02) 2693-2029
첫댓글 화로불에 구운 노릇노릇 잘 익은 고구마를 한 입 베어물 때의 느낌이라 할까
글이 참 맛갈스럽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깊은 페이소스가 담겨서일까, 아니면 추억이 곰삭아서일까
겨울로 접어드는, 적당히 외로운 계절에 읽기 좋은 이야기 -
감정이 들뜨는 봄에는 이런 글이 쓰여지질 않을 것 같습니다.
외롭다는 것은 창조의 모티브일지도.
하느님도 외로워서 나무며 꽃이며 나비를 창조했거니-
우리는 그래서 한 여자를 사랑하기도 했겠거니 -
그래서 최 대표님은 아직도 키타줄을 튕기며 허공을 응시했을지도
잘 익은 고구마 맛이라고 하셔서 괜스레 우쭐한 마음에 다시 읽어보니......
속속들이 익었다기 보다는 설익은 곳이 군데군데.. 그냥 창피합니다.
저는 픽션재주가 전혀 없어 넌픽션만 쓰다 보니 재미가 떨어짐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천지창조를 하신 것도 외로움에 근원이 있다는 말씀을 들으니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 해보았던 제가 바로 꼬리를 내리게 되는군요.ㅎ
새 봄에 이별의 글이나 한 겨울에 축제의 글이 맞지 않듯
글도 계절을 타는지라 그 계절에 맞는 글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쉘 실버스타인의 "이 빠진 동그라미" 우화가 떠오르는군요...
김정식 로제님을 홍보해주셔서 그분이 고맙게 생각하시겠네요 사람과의 관계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때 깊어지는가 봐요 약속이란 노래가사처럼 젊은날의 사랑은 모험적이고 낭만적...나이들어 돌아보면 사랑의 추억은 추억일뿐... 곁에 남아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진정한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겠지요 대학가요제 설명과 곡 감사히 잘 들었어요 최샘
글쎄요. 그도 팬클럽이 있는 분이라 고맙게 생각할지 시큰둥하게 여길지 모르겠네요.
김정식의 프로필은 이해를 돕기 위해 나중에 첨가했는데
왠지 홍보성 느낌이 있어 지울까 생각 중입니다.
모험적이고 낭만적인 사랑도 젊음만이 가지는 용기일 수 있겠지만
사랑은 사랑만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사랑의 조건을 그들도 나이가 들면 알게 될 수도...
노래에 자막을 넣으니 노랫말 이해가 수월하셨나 모르겠네요.
잘 들으셨다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