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7) 시에 쉽게 접근하는 요령 – ②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방법/ 시인 김영남
시에 쉽게 접근하는 요령
네이버 블로그 - 애플망고는 맛있다/ 구체적인 상상만이 구체적인 결과를 불러온다
②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방법
초보 시절에 일단 상상하는 요령을 알게 되면 어떤 소재를 고를 것인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상상력이 일정 수준에 달한 사람은 그 어떤 소재를 갖다 놓더라도 즉각 상상력을 기발하게 발휘할 수 있지만 초보 시절에는 막막하게만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이 담긴 소재, 언어들을 고르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공간이 존재하는 소재들을 고르는 게 상상하기 쉽습니다. 구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이고 추상적인 소재들은 수준급의 상상력 소유자가 아니면 상상의 단서를 잡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 미움, 과거, 미래, 종이 들의 이런 소재들로 시를 쓴다고 하면 그냥 숨이 콱콱 막힐 겁니다. 그러나 공간이 있는 것들 문, 벽, 창, 천장, 집 등으로 상상한다고 생각한다면 상상의 한결 쉬울 겁니다. 상상이란 기본적으로 이미지, 즉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고 그 그림은 공간이 있는 것이 평면적인 것보다 훨씬 그리기 쉽고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 구체적인 소재로 상상하자.
예를 들어 봅시다. 문을 가지고 상상한다면 현실의 문(사립문, 철문, 미닫이문, 파란 문, 빨간 문……), 추억의 문, 사랑의 문, 지식의 문 등 상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가령 그 추억의 문 하나로만 상상을 해보더라도 그 추억의 문에 문고리를 달아보고, 자물통도 달아보고, 발로 한 번 뻥 차보고, 파란 페인트, 아니 빨간 페인트도 칠해보고 온갖 상상을 다 해볼 수 있습니다.
또 집이란 소재로 해볼까요? 추억의 문처럼 의미적 공간 말고, 이번에는 실제적 공간으로 집, 즉 어느 초가집을 그려본다고 해 봅시다. 두 눈 딱 감고 어릴 적에 보았던 초가집 하나를 머릿속에 담고.
“그 집에 들어가려면 사립문을 밀어야 하고/ 문 왼쪽에는 나팔꽃 화단/ 오른쪽에는 토끼장이 딸린 닭장/ 거기에는 줄을 잡고 변을 보는 화장실이 있다/ …… 뒤란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앞마당에는 삽살개 한 마리/ …… 신발을 벗고 방문을 열면/ 팬티 차림의 한 어린이가/ 만화책을 보고 있다.”
이렇게 묘사해 놓고 제목을 ‘김영남의 집’으로 붙인다고 해 봅시다. 김영남의 어린 시절 집을 그린 훌륭한 시가 되지 않습니까?
㉯ 상상은 허구이고 가공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초가집을 그리는 데 자기가 실제로 본 초가집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상상이 당장 막힙니다. 상상은 기본적으로 허구이고 가공입니다. 즉 그 초가집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기억 속에서 모두 불러와 한번 그럴싸하게 둘러대는 겁니다. 즉 상상 속에서 초가집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참신한 그림이요, 참신한 이미지요, 참신한 시가 되는 겁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정리해 보면 초보 시절에는 가능한 한 공간이 존재하는 소재들을 골라 상상을 하여 시를 쓰도록 하고, 상상은 체험, 허구, 가공까지 드나들어야 합니다. 따라서 시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허구, 가공까지 동원해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는 걸 유념해 두기 바랍니다.
< ‘유쾌한 시학 강의(강은교, 이승하 외, 아인북스, 2015)’에서 옮겨 적음. (2020.09.0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7) 시에 쉽게 접근하는 요령 – ②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방법/ 시인 김영남|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