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초 (伐草)
예로부너 매장문화가 발달한 우리 민족은 조상의 산소(山所 - 뫼의 경칭)에 관한 여러 가지 규범이 있는데, 벌초(伐草)도 그 중의 하나다. 벌초란 산소의 봉분(封墳 - 둥글고 수북한 뫼의 본체)의 잔디를 고르게 깎아 다듬는 걸 말하는데 "검초(檢草)"라고도 한다. 벌초는 음력 8월 초하룻날 하는 것이 원칙이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그날 못하는 경우에는 늦어도 8월 5일까지는 반드시 마쳐야 한다.
벌초하는 절차는 우선 봉분에 마구 자라고 있는 잔디가 아닌 잡초를 뽑아 없애고 난 다음에 웃자란 잔디를 박박 베어버리는 게 아니라 적당한 길이(키)로 고르게 다듬는 게다. 정성껏 공들여 꼼꼼하게 해야하므로 낯 질만 잘한다고 쉽게 해치워지는 게 아니다. 봉분이 끝나면 제절(階節 - 뫼 앞의 평평한 장소 - 뫼마당)과 봉분 주위 전체에 걸쳐 잡초를 뽑아 없애고 잔디를 짧게 깎아 고르게 다듬는다.
무덤의 별칭인 유택(幽宅)도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住宅)과 마찬가지 관념으로 가끔 손을 봐야 하는데, 벌초는 그 손보는 일 중의 한가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벌초는 꼭 일년에 한번뿐 아니라 성의 있는 자손은 몇 번이고 손을 보아 봉분과 제절을 아름다운 금잔디로 가꾸어 노면, 보기에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 자손들은 남들이 많이 칭찬을 하게 된다. 이와는 정 반대로 "처삼촌 벌초하듯"이란 말도 있다.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었든지 자기와는 별로 가까운 사이도 아닌 처삼촌(처의 사촌) 뫼의 벌초를 해주려니 힘을 들이지 않고 대충대충 해 치우는 걸 말하는 것으로, 무슨 일을 성의껏 하지 않고 건성으로 해치우는 걸 빗대서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벌초는 원칙적으로 자손들이 직접 해야 하는 것인데 부득이 한 경우에는 남에게 부탁해서 하는 수도 있으나, 그 경우에도 되도록 가까운 친척 중의 누구한테 부탁해서 한다. 벌초할 때가 되면 가느다란 새끼로 날을 보이지 않게 꼭꼭 감은 낯을 들고 시골길을 가는 사람을 가끔 본다. 이들은 조상의 산소가 있는 고향을 떠나서 타관객지에 가서 사는 사람이 조상 산소의 벌초를 해드리기 위하여 고향을 찾는 사람들이 집을 나설 때에 낯을 갈아 준비를 해가지고 오는 게다. 이처럼 벌초는 어떤 경우라도 반드시 자손이 손수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8월이 다 가도록 벌초를 안 하고 잡초가 우거진 뫼를 보면 묵뫼(자손이 없는 불쌍한 뫼) 라고 알거나, 만약에 내용을 아는 뫼라면 그 자손을 향해「조상 뫼의 벌초도 안 하는 괴이한 놈들」이라고 독하게 욕을 한다.
예외가 하나 있다. 조선왕조를 창건한 태조대왕의 건원능(建元陵)은 벌초를 안 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 모양이다. 태조대왕은 사후에 고향인 함흥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했는데, 그의 아들 태종이 조선왕조의 첫째 왕의 능침을 멀고먼 함흥에다 모실 수는 없다고 하여, 동구능에 왕능을 모시되 함흥의 억새풀을 떠다가 떼를 입혀 유언에 대신하는 동시에 함흥의 억새풀이 늘 살아있도록 1년에 한번만 벌초를 하게 하였다고 한다.
극히 드물게 있는 일이지만 무슨 일로 산소에 불이 나서 잔디가 모두 타버리는 수가 있는데, 그런 때에는 지체없이 짚으로 여물을 썰어다가 불탄 자리 전체에 고루 뿌린다. 그래서 자손이 조상께 죄송함을 사죄한다.
산소를 모신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봉분이 볼 수없이 작아졌다든가 그밖에 무슨 사연으로 심히 손상된 데가 있어 봉분을 고쳐 만들거나 떼를 새로 입히는 것을 사초(莎草)또는 개사초(改莎草) 라고 한다.
단지 봉분에 떼를 갈아 입히는 정도는 비교적 가볍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할 수 있지만, 봉분을 다시 만드는 경우는 적어도 2~3년 전에 계획을 세워 어렵게 이루는 한 집안의 큰일(大事)이다. 흔히는 윤달이 드는 해(윤년)의 어느 달이나 아이에 윤달에 날을 잡아서 한다. 누가 사초를 한다고 하면 친척은 물론 동네에서 집집마다 한 사람씩 나와서 울력으로 이루어지는 게 마치 초상 때와 흡사하다.
봉분(幽宅)에다 연장을 댈 때에는 반드시 길일(吉日)을 택해서 간단한 제물을 올리고 [이제부터 유택을 개수하고저 하오니 놀래지 마시고 겁내지 마옵소서(將封改莎 勿驚勿震)] 하고 영혼에게 고한 다음에 봉분을 헐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개사초가 끝난 다음에도 반드시 [유택의 개량이 끝났으니 앞으로 영원토록 평안하옵소서(改封幽宅 永世是寧)] 라고 혼령을 안심시키고 위안하고 하다. 이렇게 사초는 드물게 있는 한 가정의 큰일로서 이웃의 훈훈한 인심의 발로를 볼 수 있는 풍속으로 벌초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