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51) 시에 쉽게 접근하는 요령 – ⑥ 효과적인 제목을 붙이는 방법/ 시인 김영남
시에 쉽게 접근하는 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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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효과적인 제목을 붙이는 방법
시의 제목을 제대로 붙이려면 그 기법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제목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한 편의 시가 성립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고, 또 독자들이 이 시를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제목이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주변에 이 문제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해 그동안 시 창작에 응용한 사람이 의외로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하여 내가 처음으로 의견을 제시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같은 제목을 붙이더라도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제목이 되고, 더욱 생산적인 제목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 방법을 연구하여 그동안 작품에 실제로 구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효과적인 제목 붙이는 법, 세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화장실에 관한 내용으로 시를 써 놓고 제목을 화장실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이 방법은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많은 사람이 쓰고 있습니다. 더욱이 시뿐만 아니라, 소설, 논문, 일반 문서에까지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 제일 고전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시에서는 이 방법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시의 역기능으로 작용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많은 시의 대부분이 제목을 화장실로 해놓고 화장실에 관한 내용으로 시를 쓰거나, 서울역 해놓고 서울역에 관하여 온갖 수사와 기교를 동원해 시를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독자들은(이미 나보다 더 많은 화장실과 서울역에 대한 정보가 많을 것임) 그 시를 쓴 사람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저 그렇고 그런 내용의 화장실과 서울역에 관한 시를 읽으려 하지 않고 쉽게 외면하려고 합니다. 작가는 열심히 최고로 좋은 시를 썼다고 여기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작가 혼자만의 생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화장실에 관한 내용의 시를 쓰고 제목을 화장실로 붙여 효과적인 제목이 되려면, 다음의 요건에 해당해야 합니다. 즉, 그 화장실이 우리가 전에 거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특별한 모습의 화장실이거나, 아니면 그 화장실에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새롭게 의미가 창조된 화장실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내용이어야 비로소 그 시를 읽을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시로 성공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김춘수의 「꽃」, 김수영의 「풀」,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내가 불러줄 때 내게로 와 핀 꽃을 본 적이 있습니까?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풀을 본 적이 있습니까, 사평역이란 시를 보기 전에 사평역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만약 사평역을 목포역이라고 제목을 붙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때도 이 시의 감동이 사평역만큼 올까요?
그러므로 화장실에 관한 내용으로 시를 쓰고 화장실 제목이 효과적으로 되려면 위와 같이 우리가 전에 거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특별한 화장실이거나, 아니면 그 화장실에 특별한 사연이 있거나 새로운 의미가 창조된 화장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독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때 효과적인 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 내용 중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문장, 핵심 문장을 제목으로 올리되 전체 내용을 아우를 수 있도록 약간 변용해서 붙이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내가 즐겨 사용했던 방법으로 내 시집 『정동진역』을 읽어보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이 방법을 개발하게 된 배경은 평소 광고 카피와 신문 기사의 해드라인을 유심히 살피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즉 기사와 광고 카피의 해드라인은 시로 본다면 제목에 해당하는데 이걸 잘 뽑느냐 잘 못 뽑느냐에 따라 그 기사 또는 광고의 첫인상뿐만 아니라 여운까지 전혀 다르다는 데에 착안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해드라인이 그 카피, 그사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내용이라는 것도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시에 적용해봤더니 제대로 맞아떨어졌습니다. 이때 붙이는 제목의 형식은 서술형이 되기 쉽고, 내용은 시 전체를 장악할 수 있도록 약간 변용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세 번째, 시 내용 중 가장 근간이 되는 내용의 속성을 가진 전혀 엉뚱한 것으로 제목을 붙이는 방법입니다. 위의 내용으로 설명하자면 화장실 내용으로 시를 쓴 뒤에 제목을 ‘김영남’으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시의 내용과 제목을 연관 지어 설명하자면 ‘김영남은 화장실이다’라는 시를 쓴 것이 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어떤 글을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서 그럴까하게 묘사해놓고 제목을 ‘아름다운 섬’으로 붙이는 경우입니다.
만약 아름다운 여자에 대해 쭉 이야기해 놓고 제목을 ‘아름다운 여자’로 붙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이 글이 아름다운 여자를 설명한 글이지 어떻게 시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제목을 ‘아름다운 섬’이라고 붙인다면 생각해 보세요. 그 순간 메타포가 형성되어 시로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제목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시가 되고 안 되기도 합니다. 이 방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 시는 1999년 현대문학 신인 작품상 당선작이고 아주 하찮은 여울을 하나 묘사해 놓고 제목을 엉뚱하게 붙여 성공한 시입니다. 만약 제목을 ‘×××여울’로 붙였을 경우 시가 될 수 있는지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그 여울에는
밀어, 꼬치동자개, 버들매치, 버들치, 배가사리, 감돌고기, 가는 돌고기, 점물개, 참마자, 송사리, 갈문망둑, 눈동자개, 연준모치, 버들개, 모래주사, 새미, 누치, 횐수마자, 납자루, 열목어, 꺽저기, 수수마구리지, 금강모치, 돌상어, 왜매치, 꺽지, 쌀마구리, 점줄종개, 돌마자. 둑중개, 왕종개, 버들가지, 꾸구리, 모샘치, 어름치, 돌고기, 부안종개, 자가리시 등이 살았다.
나는 가끔 물살이 빠른 그곳에 발을 담근다.
― 강순, 「사춘기」
< ‘유쾌한 시학 강의(강은교, 이승하 외, 아인북스, 2015)’에서 옮겨 적음. (2020.09.08.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51) 시에 쉽게 접근하는 요령 – ⑥ 효과적인 제목을 붙이는 방법/ 시인 김영남|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